정신건강의학과를 찾다.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늘었다. 한번 시작된 부정적인 생각은 검은 실타래처럼 내 몸을 꽉 옭아매기 시작했다. 생각을 떨쳐내려고 고개를 가로젓기도 하고 혼잣말로 타일러도 보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나만 괴로웠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고 초등학생이 되고 육아 스트레스가 새로운 불안요소가 되자 더는 견딜 길이 없었다.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 나이의 아이라면 한 번쯤 할 수 있는 장난도 살얼음 같은 나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 틈으로 불안과 짜증, 걱정과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이는 내 눈빛만 변해도, 한두 번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아도 불안한 눈길로 내게 다가와 눈을 휘며 웃어 보였다.
"엄마, 나 괜찮아요. 화내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즈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예약이 쉽지 않았고, 예약을 했음에도 대기가 길었다. 진료를 기다리는데 데스크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예약문의 전화였다. 간호사는 날짜를 잡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네, XXX 씨 0월 0일 0시 예약되었습니다. "
"전화번호는 010-XXX-XXX 맞으시죠?"
"네 어떤 점이 불편하신가요?"
"그럼 진료 오셔서 말씀해 주세요."
카랑카랑한 간호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예약전화도 저렇게 청중들에게 공개됐겠구나 싶었다. 이름 전화번호 심지어 나는 어떤 증상으로 상담받고 싶은지까지 모두 얘기했었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똑똑 노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내부는 예상보다 작았고 진료실 책상을 가운데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이씨, 안녕하세요."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가 모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네,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고는 한참을 정말 내가 안녕한 지 생각했다.
아니요. 저는 안녕하지 않아요.
요즘은 부유하는 수초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요. 하루 대부분 무기력해요.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요.
하지 못한 해야 할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쉬는 게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하루를 채우고 있어요.
그나마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무기력의 감옥에서 흘러나올 수 있어요.
엄마가 돌아가셨고, 시간이 흘렀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엄마의 인생이 불쌍하고 안타까운데, 내 삶이 엄마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결국은 나도 엄마처럼 쓸쓸하게 죽을 거 같아요.
삶의 끝은 다 그런 걸까요?
숨을 거두던 순간 엄마의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눈에 맺힌 눈물은 고통의 흔적이었을까요? 미련이었을까요? 안타까움이었을까요. 사랑이었을까요.
나도 그렇게 죽게 되겠죠.
가끔 말문이 막혔고 또 가끔 댐이 툭 터지듯 내밀한 이야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많은 말들을,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다 담고 지냈을까 싶었다. 참 벅찬 이야기인데 그걸 또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나왔다. 울었고, 후련했고,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