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9살 엄마 08화

너의 가방

그것은 미지의 블랙홀

by 솔이

하교한 아이는 가방을 벗어 던져두고 놀이터로 나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교문을 통과해 하교했다는 알람이 온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했고, 친구들과 놀겠다며 튕겨져 나갔다. 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아이의 뒷모습은 마치 발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경쾌했다.


나는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의 검은 가방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이라 그런가 뭔가 어둠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통을 꺼내 씻으려고 가방의 지퍼를 여는 순간, 알 수 없는 습기가 기분 나쁘게 올라왔다.


'설마 또 물통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물통을 꺼내고 손으로 안쪽을 더듬었다. 다행히 가방은 젖지 않았다. 그렇지, 그런 불상사가 한 달에 2번이나 일어나는 건 너무 과한 일이다. 안도하며 가방을 닫으려는데 그것들이 보였다.


필통에서 빠져나와 굴러다니는 연필과 지우개, 색연필 그리고 ㄱ자로 꺾인 15cm 스텐 자를. 스텐 자가 ㄱ자로 꺾여 있었다. 왜? 도대체 왜? 머리 위에 뜬 물음표를 지우고 가방의 내용물을 모두 꺼냈다.


프린트물을 곱게 넣어 오라고 챙겨준 L자 클리어 파일은 이름이 무색하게 제 기능을 잃고 사선으로 반이 접혀있었다.


'너도 참 주인을 잘~ 만나 고생이 많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울까 봐 챙겨준 바람막이 외투는 종이가 구겨진 듯 둥글게 말려 책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단원평가 시험지는 비대칭으로 두 번 접혀있었고, 그 외 활동지는 사선으로 여러 번 접혀 가방 바닥에 짓눌려있었다. 가방을 거꾸로 잡고 털었더니 필통에서 떨어진 지우개 가루와 종이조각 그 밖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지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 오늘 다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줘야겠구나. 필기도구는 필통에 넣고 프린트 물은 파일에 넣어 가져오고, 겉옷은 잘 접어 가방에 넣도록.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미 여러 번 알려줬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알려줬고, 주말마다 다시 알려줬고 학기가 바뀌고 2학년이 될 때도 가르쳐줬다. 왜 달라지지 않을까.


정말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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