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거대한 경쟁력이다.
산책하는 도중 이랑의 <평범한 사람>을 들었다. 곡 중간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일기장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어요.’ 자신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나의 어린 시절 또한 그렇다. 어린 시절 내 일기장 속 문장의 절반은 항상 물음표로 끝나곤 했다. 손목이 아픈 게 싫어 일기를 즐겨 쓰지는 않았지만. 일기장 앞에 연필을 쥐고 앉아서는, 무슨 내용을 쓸까 고민하던 저학년의 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았다. 끝은 대부분 ‘참 재미있었다’ 등으로 끝나는 게 부지기수였지만 왜 오로라는 우리 집 위에서 안 보이는지, 왜 강아지랑 대화를 할 수 없는지, 왜 외계인은 우리 앞에 안 나타나는지 따위의 것들이 일기장의 주된 소재였다. 그 나이의 나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그 궁금들은 내 일기장 속에서 나름의 형태로 결론을 맺곤 했다. 해결되는 것들도 있고, 추측으로 두루뭉술하게 끝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소통 능력을 갖추게 되면 공포의 ‘왜춘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왜 지금은 공룡이 없어?’ ‘오래전에 멸종했단다.’ ‘왜?’ ‘너무 추워서 공룡들이 다 꽁꽁 얼어버렸대.’ ‘왜?’ …… 그 아이들의 ‘왜?’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사유의 위대한 첫 시작이고 인류가 발전해온 원동력이다. 그 순수한 ‘왜?’ 가 점점 쌓였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한 본능적 존재에서 벗어난 고차원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절대 끝나지 않는 ‘왜?’의 굴레란, 가장 순수한 시절에 인간에게 찾아오는 첫 번째 학문적 욕망이다.
인간이란 그렇다. 우리는 그렇다. 사유하는 동물이자 이유를 찾아냈던 동물이다. 언어라는 것이 문자를 만들어 주었고, 그 문자는 방대한 지혜들을 지식의 축적으로 바꿔주었다. 그 지식의 축적은 문명을 만들었고, 그 문명은 여러 차례 혁명을 거듭해가며 이제는 반대로 각자의 손안에 또 다른 문명을 선물해주었다. 사유하는 힘은 인간이라는 보잘것없는 동물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대를 거듭해가며 독이 든 버섯을 멀리하거나, 그 독에 내성을 가지거나, 하는 등의 싸움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환경 변화에 맞춰 신체를 진화시키는 방식으로만 적응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생태계의 비대칭 전력이 되었다.
사유하는 힘이 우리들을 생태계의 비대칭전력으로 만들어준 셈이다. ‘왜?’ 라는 질문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힘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매번 ‘왜?‘라는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과 ‘그냥’ 따르는 사람의 차이는 꽤 유의미하다. (왜냐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라는 것이, 단순히 기존 방식이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나 의문을 표출하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유를 알고 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의 차이를 논한 말이지, 매사에 팔짱을 끼고 딴지를 걸으라는 말이 아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태도뿐만이 아니라 능률과 효율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스티브 잡스는 업무에 앞서서 기존 방식에 대해 왜 그렇게 해왔는지, 다른 방식은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 등등에 질문을 던지고,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철학과 마인드 셋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왜’ 였다. 그가 가진 ‘왜’에 대한 물음은 애플을 단순한 컴퓨터 회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그 물음의 존재가 바로, 애플이 현시대 전자기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