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는 원래 그래
프랑스에서 햇빛이 쨍한 날은 무조건 필요한 선글라스
멋이 아니라 거의 생존이다.
평소에 안경을 끼는 나는 선글라스에 안경 도수를 넣어야 했다.
안경과 선글라스를 파는 전문점에서 이것 저것 써보고
최고 힙한 하얀색 하트 선글라스부터 심플 베이직 스테디 셀러 블랙 선글라스 까지 써본 나는
언제나 착용해도 유행을 타지 않을 무난한 갈색 뿔테 선글라스 하나를 골랐다.
한국에서 가져온 안경 도수 처방전을 보여주고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손님을 잘 응대했던 직원이 내 도수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선글라스는 일주일 이내에 나온다고 했고,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한채 매장을 나섰다.
모든게 느린 프랑스에서 3일만에 선글라스가 나왔다는 메일을 받았다.
왠일이야. 라는 생각을 한채 매장으로 들어섰다.
내가 선글라스를 맞출 때와 다른 직원이 있었다.
내 이름을 말하고 내 선글라스를 받아 착용해 봤지만 나는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보였다. 그건 분명 내 도수가 아니였다.
나는 앞이 전혀 안보이고 내 도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별로 일 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직원은
처음 써봐서 그렇고 며칠 내로 적응이 될 것이니 며칠 써보고 그때도 안보이면 다시 매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니. 안경이. 내 도수가. 적응이 되고 안될 것이 무엇인가.
내가 파리에 온지 며칠 안됬다면 알겠다고 하고 정말 며칠 뒤에 다시 가져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냥 그녀는 일을 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내 도수 처방전이 컴퓨터에 입력된 것을 확인해도 되겠냐고 했다.
확인하면서 나는 바로 알아냈다. 좌우가 바뀌었음을...
양쪽 도수가 많이 달라 짝눈이었던 나의 도수를 정확히 반대로 바꿔서 입력했던 것이다.
안경점에서...그것도 손님인 내가...왜 안보였는지 알아낸 것이다.
그닥 당황한 기색도 없이 양쪽 선글라스의 알만 바뀌어 끼면 문제없다는 식이었다.
그건 자기가 한게 아니라 주문을 받을 때 직원이 잘 못했다는 말만 했다.
쇼핑몰 다른 곳에 들렀다가 한 15분 뒤에 다시 올 수 있겠냐고 물어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15분 뒤에 다시 갔다.
그 직원은 여전히 선글라스 알을 빼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고 10분 뒤에 다시 와 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10분 뒤에 다시 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집이 근처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럼 다 되면 연락을 줄테니 다시 나올 수 있겠냐고 했다.
나는 깊이 빡쳤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편이고 자주 지나는 곳이니 또 금방 오면 된다는 합리화를 하며 알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섰다.
그러고는 며칠 후에 선글라스가 완성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다시 매장을 찾았다.
처음 도수를 잘 못 입력한 그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은 나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 중에 하나가 미안하다. 이다.
나의 그간의 깊은 빡침은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그걸 듣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래도 그 직원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므로 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하고 완성된 선글라스를 써봤다.
그러나 여전히 이상하게 안보였다. 그냥 처음부터 뭔가 잘 못된 것 같았다.
여전히 안보인다고 하자 그 직원은 그럼 그냥 아얘 알과 테까지 모두 새로운 걸로 내 도수로 정확히 만들어 줄테니 며칠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는 다시 매장을 나왔다.
나는 도수를 넣은 선글라스 하나를 받기위해 그때까지 그 매장에 정확히 다섯번을 갔다.
정말 이번에도 또 잘못 나오면 완전 화를내며 아얘 환불 해버리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후에 또다시 완성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채 매장으로 갔다.
그 직원이 내가 가자 바로 알아보고 선글라스를 꺼내왔다.
새 선글라스를 써봤다. 과연?
보인다. 정말 잘 보인다. 내 도수가 맞다.
나는 기뻤다. 이젠 잘 보인다고 하니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나는 손님 누구에게나 주는 에코백과 하리보 젤리를 받았다.
여섯번을 방문해서 받은 나의 선글라스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지만 이제 정말 제대로 된게 나와서 기쁜 이 마음
그나마 미안하다고 해서 이 정도도 참은거야...라는 생각
이제 다시는 저 매장에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맞추지 않을꺼야. 라는 다짐
복잡 미묘하지만 후련하기도 한 마음으로
나는 새 선그라스를 쓰고 에펠탑을 보며 집으로 걸어왔다.
정말이지 앞이 잘 보였다.
아니 도대체 여긴 왜이래?
Paris는 원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