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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Aug 08. 2018

삶, 척

강원도 삼척

 척하면서 살고 있다. 괜찮은 척 하면서. 오롯이 나인 적이 있었나. 나는 항상 시선과 기대가 무거웠다. 내 마음의 가난함을 알고도 날 품어줄 이는 몇이나 될까. 척하며 살기 위해 덧댄 가식은 하나씩 삶의 무게가 된다. 사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 혼자 있을 땐 웃지 않는다. 사람이 없어 외롭다. 솔직한 마음 털어 놓을 풍경 하나 찾기 위해, 알지 못하는 마을로 떠나고 싶었다.     


 무거운 나의 삶을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있다. 부족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위선으로 머리가 아파올 때, 그는 위로의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이 살던 삼척에서는, 세 가지 척을 하지 않는다면서.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있는 척, 못나도 잘난 척.

 흔히 달고 사는 장식들이다. 나도 그 마을에 가면 가벼워질 수 있을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삼척이라는 공간을 상상해보았다. 산으로 둘러싸여 예로부터 찾는 이가 드물었다는 바닷가의 작은 항구. 그리고 자신의 삶에 떳떳한 얼굴들이 그려졌다. 그런 마을이라면 숨어들 만하지 않은가. 그런 마을이라면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될 테니.       


몰라도 아는 척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 짐작하지 않고 함께 여행길에 나서준 그가 고마웠다. 섣부른 아는 척이 상처로 남을 때가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여행길 위에서 하나씩 물어오는 동행이 내겐 힘이 되었다. 동해를 지나 삼척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바다가 보인다. 멀리서 파도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도시에 살다보면 서로의 삶이 자주 내려다보인다. 실례가 될까, 창가에서 고개를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시선의 닿음은 곧 긴장이다. 피하기 바쁘다. 빌딩 앞 담장의 부재가 소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담은 마음속에 지어졌다. 이젠 담장 너머가 궁금하지 않다. 아는 체 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가로수 높이의 집들이 늘어선 삼척 시내가 정겹다. 개잎갈나무로 사계절이 푸른 도로는 바다로 향한다. 가리어지지 않은 산과 물로 자연스레 눈길이 흘렀다. 야트막한 마을에는 삶에 대한 존중과 아늑함이 자리한다. 항상 친절한 도시는 어쩐지 무섭다. 때로는 차갑고 어떨 땐 따뜻한. 삼척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터미널 건너편부터 이어지는 작은 소란에 달력을 보니 오늘이 장날이었다. 삼척의 도계엔 4일과 9일, 중앙시장에는 2일과 7일에 장이 열린다. 부산한 몸짓에 도처에 시장이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봄기운을 한껏 품은 나물 냄새가 피어오르고, 또 한 구석에는 바닷물에 젖은 미역향이 스미는 묘한 시장이다. 장터의 물건에는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가격을 아는 이는 오직 이 물건의 가치를 가꾼 사람 하나다. 그가 아는 것 역시 그 물건을 가꿔온 시간 하나다. 가림 없이 바닥에 펼쳐놓은 상인들의 삶이 이어진다. 어쩌면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지켜왔을, 단 하나만은 깊숙이 알고 있다는, 복잡한 세상에 대한 거부.     



 삼척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 있긴 하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오래된 성당이다. 종종 이렇게 타지에서 성당을 찾곤 한다. 무리 속에 홀로 이방인일 때 젖어오는 감정이 고독이다. 모두가 이방인일 땐 오히려 긴장의 끈이 풀린다. 억지로 이어온 관계가 없는 공간, 포장할 필요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각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앉아, 모두가 이방인이 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성내동 성당은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마을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아끼는 사람을 향해 기도를 띄웠으리라. 쌓여가는 소망 위에 나도 한 마디를 보탰다. 모든 옷을 벗어도 나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당신도 그러하기를.     



없어도 있는 척     


 옆에 있는 이에게 가장 큰 애정을 느끼는 때는, 그가 가장 부끄럽고 은밀한 순간을 공유할 때였다. 솔직한 언어에는 온기와 힘이 실린다. 화려함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찰나다. 오히려 가진 게 많지 않다는 고백이 나를 무너뜨리곤 했다. 없어도 있는 척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랑받기 위함이겠으나, 거짓은 사람을 밀어낼 때가 더 많다.      


 노란 구름, 파란 꽃밭, 초록 바다, 하얀 솔밭으로 이어지는 5월의 삼척이다. 유채꽃과 솔밭, 뭉쳐 오르는 구름과 맑은 바다가 아득히 먼 점에서 뒤섞인다. 바닷가에 유채꽃이 피어나는 맹방해변을 지나치면 곧 장호항이다. 삼척 바다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마침 바다 위를 지나는 케이블카가 장호항과 용화항을 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두 대에 올라탄 사람들이 바다 위로 고요히 오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우리도 함께 오르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은 장호항에 추억 하나쯤 심어두고 사는가 보다. 나와 같이 바다 위를 건너고 있는 사람도 어릴 적 부모님과 장호를 찾아 오징어 회를 먹곤 했다고. 오늘은 그 맛을 그리워한다. 함께 오른 사람들은 이처럼 풍경에 기대어 용기를 낸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공기를 데웠다. 저마다 투명함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결국 여행을 기억에 남기는 것은 이런 대화다.      



 케이블카는 등대 위를 지난다. 희고, 붉은 등대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다. 등대는 둘만 있으면 배를 오라고 혹은 가라고 할 수 있다. 항로의 좌우도 신호할 수 있다. 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단 한 명만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많은 것이 필요 없겠구나, 생각했다. 세상에 딱 둘이면 행복하다. 꼭 둘이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솔직한 나와 당신.     



 케이블카는 다른 해변에 다다르고 있다. 바닥의 유리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장호와 용화 해변의 물은 맑기로 유명하다. 투명해서 아름답다. 그 외의 어떠한 덧댐도 없다. 없어서 맑고, 빈자리가 있어 사람을 머물게 하는 바다는 있는 척하지 않는다.      



못나도 잘난 척     


 재미난 이름을 가진 해변이 있다. 이름처럼 아담한 감은 있으나, 삼척 주민들이 사랑하는 이 바닷가의 이름은 ‘작은 후진 해변’이다. 이름에서 떠오르는 것과 다르게, 후진 해변의 풍경은 완벽한 바다에 가깝다. 어차피 내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바다는 늘 이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몇 사람 들어서면 잔잔해질 것만 같은 맑고 작은 이 물가에 앉았다. 파도가 기어오르는 들쭉날쭉한 해안선은 일부러 그린 듯 무늬를 남기지만, 한편으로 여기엔 아무런 규칙도 없다. 생긴 대로 밀려오는 바닷물이 보기 좋다. 생각해보면 예쁜 바닷가나 못난 해변은 따로 없었다. 그저 파도와 땅의 만남만이 있다.      



 밥때가 되자 삼척항을 찾았다. 제법 나이 든 항구의 언덕에 빼곡 들어선 마을만이 어릴 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20년은 넘었다는 식당에서 칼칼한 곰치국을 한 모금 넘긴다. 뜨끈한 국물과 함께 마음도 녹는다. 함께 수저를 든 사람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자기도 내려놓지 못하는 척이 있다면서. 못난 척 하고 산단다. 타인에게 상처받기 싫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아픈 습관이 생겼다고. 그조차 자신이 못난 탓이라며 속으로 운단다. 어느 날 보니 정말 못난 사람이 되었더란다. 해가 진다. 한 모금 더 삼킨다.     


 못나고 잘난 사람은 없다. 모난 사람만 있다. 서로의 모서리가 들어맞아 애정을 갖게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뾰족한 구석도 딱 맞게 품어주는 사람이 있다. 같이 있어 못나지 않다.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이다. 장터는 까맣고 밤공기는 서늘하다. 둘만 남았다. 둘의 뒷모습은 못나지도 모나지도 않다.     



 심야버스의 구석 자리, 파도소리는 오른쪽 귀를 스친다. 

 나는 또 다시 척하며 살겠으나  

 척하지 않아도 품어주는 한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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