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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Sep 26. 2015

매순간이 생일

완도 생일도에서 만난 아이들


해가 지는 생일도에서


 밤이 되면서 파도 소리는 더욱 짙어졌다. 바다를 켜는 가로등만이 밤과 지면의 경계를 알려줬다. 별보다는 건물의 불빛에 익숙했지만, 별빛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과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밤과 소금기 가득한 바람. 생일도에 도착한 첫날 밤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생일도로 향하는 배


 배에 올라 어딘가로 향하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선미 뒤로 퍼지는 하얀 물결은 늘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딱 그 곡선이다. 생일도는 완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제법 바깥에 있는 편이다. 미역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배들이 옆으로 지나간다. 30분가량이 지났을까, 많은 섬들 사이로 생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생일도의 아담한 항구와 케이크 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생일도라는 이름에 맞추어 케이크가 섬 입구에 서있으니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그 순수한 발상에 우리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지내기 위해 생일도로 향했던 나는 도착하자마자  공부방으로 향했다. 마침 수업이 끝난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한 두 방울 내리던 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첫 만남이 쑥스러워서였는지 우리들은 서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서있다. 사람 사이의 선을 넘어서는 것은 도시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선을 밟고 한 아이가 불쑥 들어와 맑은 미소를 건넸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순수하다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아이들, 그리고 진심을 보이는 아이들과 친해지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용출리 몽돌 해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모두 즐거웠지만 용출리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은 지금도 내 감각을 생생하게 한다. 섬의 여느 해변과 달리 이 해안에는 조약돌이 깔려있다. 몇몇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예쁘게 생긴 돌멩이가 있다며 주워와 내게 내밀어 보였다. 동글동글한 모양이 서로 비슷해 보여도 색과 모양이 달라 하나씩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파도가 만지고 지나가면 윤이 도는 검은 자갈부터, 분홍빛을 머금은 하얀 조약돌까지 어느 하나 못나 보이는 것이 없다. 우리는 바닷물에 더위를 식히고 물이 차면 볕에 달궈진 조약돌 위에 몸을 눕혔다. 저마다의 사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이들은 마치 해변의 작은 조약돌들을 닮아 있다.


해변에서 놀다 잠든 아이


 젖은 몸을 말리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트럭 뒤에 올라탔다. 해변 도로를 달리는 내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어느 새 물기를 말려 주었다.  트럭 뒤에서 스쳐 지나간 풍경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부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바닷바람의 감촉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선명하게 새겨진다. 생일도에서의 시간도 그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순간순간의 기억을 모두 잡아둘 순 없었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의 미소와 행복했던 우리의 모습은 더욱 또렷하게 남겨졌다. 


내게 편지를 전해준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바라본 생일도의 전경, 푸른 하늘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노을,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들. 작은 섬이지만 그 모습을 담기에는 어떠한 글도 표현도 좁다. 아이들과 나눈 시간도 마찬가지다. 섬을 떠나던 날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준비한 편지는 어떠한 말을 담아도 부족함이 느껴졌다. 일주일간 아이들이 나에게 전해준 말 하나 동작 하나는 어떤 선물보다 특별했다. 배는 바다로 점점 나아가고 멀어져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생일도 옆에는 금일도라는 큰 섬이 있다. 평일도라고도 불리는 이 섬의 이름 때문에 섬 사람들 간에는 “평일도 생일, 금일도 생일”이라는 농담을 한단다. 우스갯소리라지만 평일이든 아니면 당장 오늘이든, 생일도와 생일도의 아이들을 만나는 날은 누군가의 생일처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 안도현이 세상에 패배한 사람들에게, 또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섬이라는 공간을 권했듯, 삶의 특별한 의미를 찾는 당신을 이곳으로 부르고 싶다. 삶이란 무엇이다 명확히 답할 수는 없지만, 생일도라는 이름 그대로 매일 새로이 태어나는 이곳에선 삶의 의미 중 하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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