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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Mar 07. 2020

그날, 일곱.

Seven sisters cliffs

 한 사람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 요 며칠의 나는 밤마다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익숙한 품만을 찾는 이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더 많은 인연을 찾고 더 멀리 보라 요구한다. 나의 삶은 마치 한 줄의 파도와 같아서 멀리 나아가는가 하면 다시 제자리를 향해 부서진다. 새로운 세상은 두렵고, 낯선 만남의 느낌은 날카롭다. 느릿하게 땅에 닿으며 만나는 인연과 기회들을 놓기 어려웠다. 삶의 마지막은 먼 바다 위가 아닌 온기를 머금은 모래에 엎드리는 장면이라 믿는다.      



 좀 더 큰 풍경을 보면 나의 생각도 넓은 시야에 담길까.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발을 딛자마자 익숙한 얼굴을 먼저 찾는다. 발소리가 잦아드는 런던의 밤이다. 나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이를 만났다. 그가 자주 들른다는 도심의 펍에 들러 타지에서의 삶을 듣는다. 나라면 감당치 못했을 경험과 시간들이 있었다. 여전히 멋진 사람이었다. 취기로 물드는 표정과 고민을 본 그는 내게 여행지를 추천했다.      



 바다 앞의 하얀 절벽, 그리고 가는 길엔 반드시 새로운 동행들을 만나게 된단다. 처음 보는 풍경일 것이라 자신하는 그의 표정. 나와는 다른 바다, 다른 파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침대 맡에 손목시계를 풀고 오랜만에 빠듯한 일정을 계획했다. 차편을 알아보며, 그 사이 만날 새로운 인연을 상상해본다. 시차에 적응을 못해서, 또는 약간의 긴장 탓에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고 엎드려 잠을 청한다. 펍에서 들은 음악을 찾아 이어폰을 꽂는다. 붉은색 이층 버스가 숙소 앞 도로를 오가고, 자전거를 탄 이들이 출근길에 오르는 낯선 도시의 새벽. 때 묻은 가죽 시계를 손목에 다시 두르고 길을 나선다.                                                        

 삶의 마지막은 먼 바다 위가 아닌
온기를 머금은 모래에 엎드리는 장면이라 믿는다.


동행이 생기는 풍경     


 기차역 앞에는 벌써 청년들이 모여 함께 표를 구입하고 있었다. 몇몇이 모여 표를 사면 비용이 조금 저렴해지고, 머리를 맞댈 동행이 생긴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렇게 딱 일곱이 모였다. 한두 살 정도 차이가 나는 또래들이었다. 나처럼 여행을 막 시작한 사람, 그리고 이곳이 마지막 여행지인 사람, 앞으로 여행 중에 종종 마주칠 사람까지.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친구도 있었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서로를 알고 하루를 함께한다.      



 역에서 내려 샌드위치를 하나씩 물고, 처음 보는 과자도 하나씩 나눠 먹으며 브라이튼을 구경했다.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소도시였다. 겨우 정류장을 찾아 이르렀을 때 쯤 보이는 버스에 서둘러 뛰어올랐다. 여행도 쉴 틈 없이 해온 우리는 차창에 기대어 부족한 잠을 채운다. 가끔씩 바다에 비친 햇빛에 잠에서 깨면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각자만이 아는 작은 단서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을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길을 고민하게 한다. 가족을 걱정하게 한다.     



 일행이 많아지면 왠지 지도를 게을리 보게 된다. 잠결에 어설프게 정류장 이름을 듣고 일곱 명이 모두 버스에서 내렸다.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도 웃음이 났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발걸음의 고된 감각도 무디게 한다. 초원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를 땐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바람을 맞으며 걷는 오르막길, 또래들이 전하는 웃음에는 특유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날 우리 옆을 지나는 사람 중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건너편 언덕 위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둘씩 짝지어 언덕을 내려가는 이들은 인사를 건네 왔다. 무조건 동행이 생길 것이란 그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누군가와 꼭 나누고픈 하늘과 언덕, 그리고 바다가 보였다. 하루를 채우는 만남이 반드시 삶 전체를 잇는 만남일 필요는 없다. 짧은 인연과 스치는 인사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하루를 채우는 만남이 반드시 삶 전체를 잇는 만남일 필요는 없다.
짧은 인연과 스치는 인사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한 줄의 파도     


 ‘세븐 시스터즈’란 이름은 일곱 개의 큰 언덕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 한다. 하얀 색의 절벽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졌다. 석회질의 절벽은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한 해에도 30cm씩 뒤로 밀려난다. 바다에 부딪치며 드러난 속살에는 또렷한 지층의 경계가 나타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흘러간 시간이 드러나는 셈이다. 한 해도 빠짐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우연한 매일의 닿음이 지금의 풍경을 만들었다.        



 언덕을 넘을 때마다 다음 고개에서 넘실대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깊이와 넓이가 가늠이 되질 않아 평면 같아 보이는 바다 위에서 갈매기만이 초점의 기준이 되었다. 양과 소들이 거니는 초원 위엔 잔디가 빼곡하다. 바다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잔디도 언덕의 곡선을 따라 바싹 엎드린다. 우리도 함께 앉고 또 누웠다. 이제야 서로의 이름을 듣고, 하얀 돌을 주워 언덕 위에 수놓았다. 지나는 여행객들과 사진기를 주고받으며 이날 우리 일곱의 모습을 담았다. 곧 땅에 다다를 파도 같은 인연에도 오늘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     



 바닷바람을 따라 자란 나무의 가지는 바다를 닮았다. 언덕의 능선을 향해 누운 나무 위로 구불구불한 결을 그렸을 수많은 바람을 상상한다. 단단한 줄기도 공기의 흐름에 오랜 시간 몸을 맡기면 그 결을 잊을 수 없게 된다. 이곳까지 함께 오른 친구 중 몇은 바닷가에서 자랐다. 절벽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자란 이 나무처럼 다른 결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가는 물과 사람들을 보며 자란 이들은.      



 여행 중에 만나는 인연들을 즐기는 편이라 했다. 뜻깊은 만남이나 깨달음을 주는 마주침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흘러가는 만남 속에서 위로를 얻고 또 건넬 뿐이다. 바다에는 항상 다른 흐름이 있고 흔적 없이 흩어지는 조각들이 많다. 그럼에도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엔 의미가 있다.      



한 줄의 파도와 같은 보통의 삶 속에선, 육지에 이를 때까지 함께할 수면 위의 조각들에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처음 파도를 만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파도의 성분은 바로 지금 물위에 흩어지는 노을과 아래로 지나는 물길과 거꾸로 부는 바람이다. 무엇하나 건질 수 없다. 짧은 마주침의 가치는 기억이 아니라 지나침에 있다.      



 온몸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일곱의 얼굴 위로도 해가 지고 있다. 그날의 일곱 중엔 바로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고, 연인이 된 이들이 있고, 마지막까지 이름을 듣지 못한 이도 있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 벤치에 앉아 그날의 파도와 구름을 흘려보내는 남자를 보았다.


파도의 성분은 바로 지금 물위에 흩어지는 노을과 아래로 지나는 물길과
거꾸로 부는 바람이다. 무엇하나 건질 수 없다. 짧은 마주침의 가치는
기억이 아니라 지나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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