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와 나의 꿈 이야기
꿈을 팔지 말 걸 그랬나. 간만의 좋은 꿈을 동전과 바꿨다. 여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 취업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내게는 들뜨는 일도, 기분 나쁜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서 꿈을 팔았다. 제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목포에 가고 있다. 거쳐 가는 도시였기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 다시 꿈을 잡아보려 눈을 붙일 무렵, 마지막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잠을 깨운다.
목포항에 둘러싸인 바다는 조용했다. 언제부턴가 여행은 갇힌 물처럼 잔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 뛰는 순간이 아니라 안정을 찾기 위해 떠난다. 떠남과 설렘이 같은 말로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낯선 도시의 풍경마저 다른 구석이 없어 보인다. 오늘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꿈을 쥐고 있었더라면.
항구 바로 옆의 숙소를 잡았다. 주변의 주택가와 항구 사이엔 어시장이 자리해, 삶 깊숙이 밀려들어온 파란이 전해진다. 붉은 생선 위로 소금이 말라붙고, 날개달린 것들이 바닷바람에 쫓겨 다닌다. 집집마다 비슷한 건어물이 걸려있으니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길도 제법 복잡해 지도에 적힌 도로의 이름을 하나씩 외면서 갔다. 삼학로는 번화로로 이어지고, 번화로는 해안로와 영산로로 갈라졌다. 검지와 중지로 두 길을 걷는다. 두 손끝은 유달동 사거리에서 다시 만난다. 네 갈래 중 어느 방향으로 다시 손을 뻗을지는 사거리에 이르면 정하기로 한다.
지도를 짚은 손은 도로를 걷는 발보다 마음이 급한 경우가 많다. 종종 알 수 없는 길에 이르는 이유다. 두 번이나 생각지 못한 길에 들어서니 혼자서도 웃음이 났다.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 한둘, 고양이 한 마리, 옛집을 닮은 담벼락을 위로 삼아 돌아나간다.
막다른 길에 부딪치면 ‘모든 길은 통한다’는 말과 함께 멋쩍어 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살다보니 아버지의 가르침과 다르게 막힌 길은 한둘이 아니었다. 한편 아버지의 말마따나 돌아나갈 도리가 없는 길은 또 없었다. 목적지에 곧바로 도착한 날은 드물다지만 재미와 추억 역시 그 날 그 길에 있다. 발의 감각에 기대는 순간 지도는 답이 아니다. 때문에 돌아가는 고생도, 의외의 발견에 느끼는 기쁨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낮곁에 달궈진 붉은 건물이 사거리 위 언덕에 솟아 있다. 일본 영사관의 상징적인 재료였던 벽돌은 시청의 외벽으로, 이어 도서관의 창틀로, 또 문화원의 현관으로 다른 시간들을 쌓아왔다. 거쳐 온 시간만큼 역사관이라는 지금의 이름도 잘 어울린다. 벽돌로 지은 옛 건물엔 온도가 생긴다. 엇갈리며 만들어진 틈 하나는 곧 집고 쌓는 이의 흔적이고, 수고와 정성으로 쌓은 흔적엔 체온이 깃들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몇 번 달궈졌다 식어버리는 벽돌이지만 하나씩 다져진 외벽은 1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다.
열나절 키우고, 다듬고, 가꾸고, 묵히고, 숨겨온 나의 꿈을 어찌할 것인지. 벽돌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 곧 식어 바닥에 깔린 기대들을. 넘치게 자란 나이, 다른 사람이 만든 지도는 해답을 주지 못했다. 현실과 상황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재단된 목표에 또 꿈을 팔아 버릴 것인가. 역사관의 높이만큼 시야에 여러 갈래의 길이 주어졌다. 모든 길은 항구로 향해 있는데, 나는 다만 하나의 길을 골라야 한다. 정답과 모험의 부등식에서, 오늘은 계획을 빼고 설렘을 더한다. 생량머리의 공기가 시원하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흘러간 꿈은 찾을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밤 목메어 부른다
그리운 그 밤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서리에 시든 장미화러냐 시들은 사랑 쓸어진 그 밤
그대는 가고 나혼자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 이난영 노래, 다방의 푸른 꿈
계단을 내려와 다시 네 갈래. 유달산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산이 만든 그림자 아래 양철지붕의 조그마한 집들이 모여 앉아있다. 지도도 말해주지 않는 고샅을 걸었다. 골목 끝에 조금 큰 길이 나왔다면 아마도 보리마당로일 것이다. 표지판을 보니 맞게 찾아왔다. 보리마당로 52번길이었다. 길 아래 주황 혹은 파랑의 지붕이 가득했다. 서산동 꼭대기에 있는 보리마당은 보리타작을 할 만한 너른 땅이다. 일제 강점기, 일용근로자들이 모여 살던 이 곳에 지금도 빈틈없는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산에서 솟은 물이 바다까지 흘러가듯 산자락 점점의 집들이 바다 끝까지 펼쳐져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마당에 볕뉘가 구석구석 든다. 수면에 구른 물빛은 지붕을 비췄다. 기적 소리와 배가 밀치는 파도 소리도 번갈아 문을 두드린다. 가수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목포는 항구다’를 불렀지만 딱 이 모습의 목포항을 떠올렸을 것만 같다. 노랫말 속의 주인공은 목포가 고향인데, 그의 고민은 목포에 있지 않다. 여수로 갈지, 제주로 갈지. 떠날 곳을 묻고 있다. 제목처럼 목포는 결국 항구라는 고백이다.
떠나려고 목포를 찾은 이에게 목적지는 아마도 바다 너머의 또 다른 항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정 끝에 남는 그리움은 모든 일이 시작된 항구 혹은 나의 고향이다. 항구 앞 너른 바다는 꿈의 성취에 비교될 때가 많다. 바다에서 끝나는 여정은 없기에 때론 이 비유가 의아했다. 다른 터를 찾아가는 사람에게도, 혹은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이에게도 사실 목표는 항구다. 바다에서의 여정을 계획하고, 설레며 기다리는 공간, 혹은 이별을 전하거나 마치는 순간까지도 – 삶은 항구의 연속이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
비 젖은 선창머리 돛대들 달고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고향
- 이난영 노래, 목표는 항구다
보리마당 아래 그늘진 놀이터, 그 가운데 그네에 앉아 느리게 움직이는 항구를 본다. 그런가, 행복한 순간들은 바다보다 바닷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간절한 소망도, 따뜻한 연인도, 든든한 친구도, 애틋한 가족까지도. 더 큰 기회와 애정을 찾아 나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현실의 파도를 피해 남들과 동일한 항로를 따라가고 있을 뿐. 항구를 바라보며 항구를 부르던 가수 이난영은 항구에 잠들었다. 때마침 똑딱선 운다.
보리마당에서 서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골라 내려온다. 반대편 섬을 보며 내려오는 길이니 어느 갈래를 택해도 바다와 만난다. 누군가의 사진에서 보았던 목포대교가 보고 싶었다. 바닷가를 따라 꽤 큰 에움길이 나있다. 해안로는 목포대교까지 이어진다. 나처럼 무작정 걷는 이들을 위함인지 중간에 벤치가 여럿 놓여있다. 한 번씩 앉아가며 걸음을 잇는다. 자리마다의 풍경을 잇는다.
긴 다리의 옆면이 보일 때 쯤 지도를 보니 죽교동 해안로 위였다. 길 한 쪽에 오래된 호텔이 서 있다. 호텔 앞 해변으로 걸어 내려오면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계단에 둘 혹은 셋씩 모여 앉은 사람들이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래사장 끝에는 다리를 향해 물수제비를 띄우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있다. 해거름에 그림자로만 보이는 가족의 모습 위로 나의 시간이 겹쳐보였다.
퐁당.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품었던 꿈들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다. 어머니도 더 이상 그것을 꿈이라 부르지 않으니까. 두세 번 튀어 오른 뒤 가라앉고 마는 물수제비처럼, 침전한 바람들에 시간의 깊이만 더해갔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비우고 나의 조약돌을 함께 감싸 쥐었을 테다. 이 돌은 조금 더 멀리 갔으면 하고. 파도 위 잘게 부서지는 낙조 위로, 퐁당, 퐁당, 퐁당.
물수제비를 잘 띄우려면 몸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모래사장 가까이 몸을 기울이다 뻣뻣해진 다리를 굽혀 결국 주저앉는다. 섬으로 나가는 차들이 다리를 건너며 작게, 더 작게 보이다가 이내 반짝이는 점으로 사라졌다.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멀리 던진 꿈에 대어 보면 나는 한없이 작아져 있다. 다른 이의 성취 옆에 서면 딱 그 조약돌만큼 애틋하고 초라하다.
불빛 하나 없는 밤이 되었다. 사람 하나마저 없으면 적적할 그런 어둠이다. 목포대교 앞 음식점에 연포탕을 주문하고,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후회를 마셨다. 꿈을 팔지 말 걸. 작아진 꿈도 괜찮다는 위로를 따랐다. 소리만 크게, 위하여.
깜깜해진 골목의 풍경이 낮과 달라 새롭다. 숙소로 돌아오며 보리마당로를 다시 넘었다. 창문마다 불이 들어오고 이내 꺼진다. 이제야 잠든 삶을 가로등이 조용히 비추고 있다. 하루의 끝에 어두운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려니 마치 집으로 향하는 길 같다. 친구에게 팔았던 꿈에서도 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낮에 앉았던 그네에 다시 앉았다.
내일 제주로 떠날 배는 항구 어디쯤 정박해 있는지. 해 뜰 참 일어나 항구에 서면 알게 되겠지. 아직 떠나지 않은 꿈 몇 개 항구에 있음을. 뭍과 물이 만나는 아슬아슬한 선 위에 삶의 의미가 있다. 짐과 연료를 가득 실은 채 또 다른 항구에 닿을 상상을 저으면서. 치열한 계획과 설렘으로 분주한 나의 목표는, 항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