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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Feb 26. 2019

젊음이라는 무언가無言歌

Songs without words, youth


 창가에 말려둔 젊음이란 이름도 조금씩 바스라진다. 모두가 빛나고 모두가 행복한 지금의 세상에 도리어 나의 젊음은 바래왔다. 노력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던 그 시절에 의미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 정작 짐은 꾸리지 않은 채, 방에 쌓인 마음의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책꽂이 구석에 남아있던 고시 문제집을 팔고, 화가의 꿈을 그렸던 화폭도 미련과 함께 접었다.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이란 구호는 건배사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이때의 몸과 욕망, 시간과 사람들, 믿음과 감정엔 반드시 끝이 있다. 남은 청춘은 남은 시간에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이제는 좋은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시계를 거슬러 날아가는 비행기. 이러한 생각들도 잠시 거슬러볼까.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깨어있는 시간엔 이어폰 속 음악과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이 최선이다. 몇 년간 함께 한 플레이리스트도 가끔 싫증이 난다. 나는 두렵다. 오랜 시간 나를 가슴 뛰게 했던, 익숙해진 모든 것들이 젊음과 함께 다른 가치에 자리를 내어줄 테다. 짙은 밤 아래 깔린 구름.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젊음을 볼까 혹은 상실을 느낄까.



음표 뒤엔 쉼표


 친구와 나는 함께 오랜 직장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올랐다. 시차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부러 세상에 보란 듯 종일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느지막하게 숙소를 나선다. 유럽의 밤은 고요하다. 한낮의 요란한 발걸음이 잦아든 광장. 그 공간엔 연인의 속삭임이 입을 맞추고, 묵직한 생각들이 바쁘게 거닐고 있다. 그리고 그 속삭임과 생각이 닿는 곳엔, 작은 무대가 열리기도 한다.



 연주는 공터를 울리고, 동그란 눈으로 동그랗게 모여든 관객들. 활을 잠시 악기 위에 올려놓은 채, 숨을 고르는 시간은 우리의 귀를 잡아당긴다. 밤을 헤매던 여행객들도 주변의 계단에 걸터앉는다. 거리를 깨우는 악사들의 짧은 연주곡이 그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지, 혹은 취미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무대는 즐겁다. 치열하거나 각박하지 않다. 부부가 함께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거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 명의 친구가 함께 켜는 캐논 연주곡은 나와 친구를 위한 것일지도.

 


 자유로이 떠날 수 있기에 거리의 관객이 있다. 공터가 있어야 거리의 악사들도 있다. 약간의 망설임과 작은 실수가 그들의 연주를 특별하게 한다. 음악도 젊음도, 악보를 채우는 방법엔 음표를 그려 넣는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지나 일터, 단조로웠던 친구와 나의 삶에 짙은 쉼표가 생겼다. 적절한 자리의 쉼표는 연주자에게 힘을 준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음표와 쉼표 사이에서 나라는 연주곡의 멋이 생긴다.



못갖춘마디로 시작되는 음악


 목소리만으로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체스키 크룸루프의 한 다리 위였다. 그가 발로 나무로 된 다리를 내리치면, 우리도 그의 악보 속 마디에 올라서게 된다. 기타 반주와 발로 다진 박자들이 그의 목소리를 지탱한다. 명성과 높은 무대를 빼고, 관현악단이나 밴드도 제외한 채, 대중에게 익숙한 멜로디마저 지우면 오직 노래를 전하는 이의 목소리만이 남는다.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돈이 없다고 그의 목소리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다. 용기를 내어 기타 보관함에 던지는 동전은 그렇기에 더 순수한 존경의 표시가 될 수 있다. 보통의 무대에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감동에는 그러한 조건들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거리의 악사들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움직임은 거친 목소리와 순수한 감정에서 비롯한다.



 유럽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노래는 기억 속의 풍경을 다르게 한다. 여행객들이 기록하길 원하고, 또 다시 떠올리고 싶은 풍경 중 하나는 그 길목에서 들었던 거리 공연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무대라서가 아니다. 몇 박자 모자라게, 못갖춘마디로 시작된 음악엔 오히려 반전과 재미가 있다. 우리는 거리에서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 공연을 감상하기로 결정했으면 곡이 끝날 때까지 옆을 지키기로 했다. 몇 박자 느리게 시작한 악보에도 반드시 멋진 완결이 있음을 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진심어린 박수가 함께 한다.



 더 사랑받고 싶어서, 다만 조금 더 빛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청춘이라는 시기를 버텨왔는지도. 많이 늦은 깨달음에 문득 나의 시간들이 시들해 보였다. 강물 위로 흩어지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어떤 젊음은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겠지. 생각했던 장르가 아닐 수도 있고. 그저 그려갈 음표가 더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나온 못갖춘마디가 있어 내가 연주할 남은 시절은 한층 더 풍성할 것 같다.       



젊음이라는 무언가
songs without words, youth


 포르투의 도우루 강 앞에는 멋진 시도를 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망토를 두른 학생들이 줄지어 노래를 부르면 그 앞에서 어떤 이는 인형과 춤을 추고, 갓 시작한 색소폰을 한두 마디씩 간신히 이어가는 연주자도 있다. 가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흥얼거림으로 마치는 무대도 자랑스레 선보인다. 생소한 악기와 어설픈 실력에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감히 평가할 사람은 없다.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멋진 여행을 선물하는 공연엔 모두 작은 시작이 있다. 모든 이들이 그 용기의 과정에 박수를 보낸다. 실수와 우스꽝스러운 시도들도 용서가 되는, 아름다워 보이는, 젊음이라는 시기에는 ‘무언가’ 있다. 개성 있는 음악처럼 청년 한 명마다의 색과 울림이 있다.



 그 무언가가 한 줄의 가사로 요약되곤 한다. 감동을 주는 메시지, 자극적인 주제로 덧씌워진 청춘들의 기록이 우리를 짓누른다. 모든 역경을 이겨낸 청년의 성공 스토리와 빠른 성취를 거둔 학생의 삶을 들으면 내게 없는 방향과 하나의 주제가 있는 듯하다. 적당한 빠르기와, 적당한 크기의 소리로 인정과 사랑을 호소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젊음의 기록이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멋진 가사가 있다면. 내 삶이 요약되는 한 줄의 주제가 있다면 더 많은 인정을 받았을까.



 찬란하지 못할 나의 젊음이 안타까워도. 나는 내 젊음에 가사가 없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이 기억이 소중하다. 타인의 사랑으로 행복을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너무 멀리 보고 싶지 않다. 그저 나와 친구의 젊음에 귀 기울여 보려 한다. 익숙해진 플레이리스트의 여느 곡처럼 가사를 붙였다간 잊힐지도 모를 일이다. 찬찬히 너와 나의 음악을 기다릴 것이다. 젊음이라는 무언가無言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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