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날(2)

스시집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가 바로 그 였다!

by 피렌체장탁

그의 메시지는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말이 다 사실일까? 내가 느꼈던 차갑고 무심했던 그의 모습은 정말 다 문화차이나 바빴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일까? 만약 그랬었다고 해도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걸까?'


내 한 몸 건사하고 손님들 케어하기에도 벅찬 하루하루였다. 이런 내가 연애라는 사치를 부리는 거라 생각했고 상황이 내 마음 같지 않자 급속도로 모든 게 피곤하다고 느껴져 차단한 관계였다.


그래.. 역시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립고 궁금한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다. 그에게서도 더 이상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결국 이 정도의 인연... 2주 정도 지났을 어느 날 밤 갑자기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네가 너무 그리워. 정말이야.'


나는 친구와 함께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있던 찰나였다. 술기운이었는지 아니면 겨우 눌러놓은 마음이 동했던 건지 갑자기 그 메시지 하나에 미친 듯이 그가 보고 싶어 졌다.


"언니, 그냥 한번 만나봐요! 그렇게 고민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만나보고 판단하는 걸로 해요"


"그래... 야! 꼭 뭐 엄청난 사랑이어야 하냐? 외국살이 힘들고 맨날 혼자서 뭐든지 다 책임지고 처리해야 되는 삶도 버겁고 힘든데 그냥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 곁에 두고 맛난 거 먹고 와인이나 한 잔 때리고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에라.. 나도 이제 좀 누구한테 기대고 살자. 만나보련다 뭐라고 하는지."


언제 만날 수 있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당장 오늘밤에라도 달려오겠다고 했다. 이미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친구도 같이 있어 다른 날을 잡아서 보자고 했다. 그래도 이런 이태리 남자의 저돌적인 면이 싫진 않았지.


며칠 뒤 우리는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는 아시안 음식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한식당을 가고 싶어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날 양념갈비에 쌈을 싸 먹는 건 너무 친근하고 다정하다 싶어 일식집으로 예약을 했다. 막상 만나려고 생각하고 나를 점검해 보니 그를 마지막에 봤을 때에 비해서 피부도 엉망이고 몸무게도 더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네가 이 꼴을 보고도 내가 좋다고 하면 이건 찐 사랑이니 이번엔 진짜 잘해보는 거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초조하게 그날을 기다렸다. 그래도 데리러 온다는 그의 제안은 거절했다.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그의 바이크 뒷 좌석에 앉자마자 확실히 묵직해진 나를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설렘과 걱정, 두려움 모든 게 혼재된 상태로 그날이 왔다.

당일 약속 직전까지도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이게 맞나 괜한 짓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의 나쁜 습관 중에 하나인 약속시간 직전까지 연락이 없고 늘 약속에 늦는 모습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기분이 확 상해서 얼굴 보고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고 너랑 내가 왜 못 만나는 건지 확실히 이야기해 줘야겠다 결심하고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씩씩거리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서 코너를 돌아 나를 기다리는 그를 본 순간!!


너무나도 반갑게 웃고 있는 Jo의 모습에 화는커녕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는 느낌이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레스토랑은 커플들로 가득했는데 하필이면 다른 테이블의 남자들이 너무 못생겼었고 또 하필이면 깔끔한 검은색 캐시미어 니트에 진을 입은 그의 스타일이 너무 내 취향이었고 그동안 힘들었는지 약간 살이 빠져 뚜렷해진 턱선이 베일 듯 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아.. 망했다. 왜 이렇게 잘생겨 보이냐.'


Jo는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그를 무시하고 차단했던 시간이 마치 없었던 것 마냥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Come stai? Tutto bene?"


하루에 백 번은 묻고 답하는 기본 안부 인사에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아니, 나 사실 잘 못 지냈어. 나 엄청 힘들었는데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내가 정말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친구(할아버지)가 같은 아파트 주민들을 모아 선동해서 음식 냄새가 난다고 민원을 넣었어. 나는 그 건물에 무려 7년이나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고 사람들하고도 다 친하게 잘 지냈는데 돌아서는 건 한 순간이더라. 모두가 합심해서 그러는 통에 더 버틸 재간이 없어 결국 내가 이사를 나왔어. 나뿐만이 아니라 4층에 살던 다른 중국인들도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했어. 집도 구해지지 않아서 한 달간은 남의 집에서 신세를 졌어. 한 순간에 나의 일도 집도 없어지는 걸 경험해 보니 여기서 사는 게 두려워지더라. 무엇보다 믿고 따르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과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 제일 힘들었어. 그리고 미리 예약했던 손님들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 때문에 일일이 사과하고 숙소를 연계해 주거나 보상을 해주었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고통이었어. 기분 좋게 여행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걱정거리를 준 것 같아서 미안하고 죄책감이 느껴졌어. 코로나까지 버티면서 7년이나 운영하던 곳을 한 순간에 허무하게 떠나야 하는 것도, 시간이 없어서 대부분의 물건을 헐 값에 팔아버려야 했던 것도,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던 순간도 다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거기서 주저앉고 싶진 않았어. 그런 일을 겪었는데 여기 피렌체에 살고 싶다는 게 웃긴데 살고 싶더라고. 그래서 버텼어."


"(알 수 없는 이탈리아 쌍욕 퍼레이드 후) 아니 뭐 그딴 놈들이 다 있어?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너한테 연락을 하겠어? 그렇게 사라졌는데..."


"있잖아. 너 하나만 기억해. 우리가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린 이미 친구고 나는 너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도울 수 있어. 그런 게 내가 살아가며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생기면 꼭 나한테 연락해!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음식은 맛있었고 화이트 와인은 적당히 시원하고 상큼했다. 눈앞의 남자가 잘생겨 보였고 왜인지 좋은 향기가 우리 곁을 맴돌았다.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하며 위로하는 저 남자.. 어쩔쏘냐..


그렇게 나는 다시 사랑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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