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
우린 마치 돼지갈비와 소맥의 궁합이랄까
Jo 와의 첫 데이트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친구와 같이 있을 때 우연히 Bar에서 만난 이후 바로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올리는 모든 게시물과 스토리에 좋아요 와 댓글을 남기는 건 당연했고 그런 일상공유를 통해 여러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벽난로가 있는 술집에 가서 불멍 하는 순간을 올리면
'어? 너도 이렇게 멍하니 불꽃 바라보는 거 좋아해?' '응, 이런 걸 한국에서는 '불멍(BULMONG)'이라고 말해.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즐기는 거야.' '이건 유럽에서도 유행이야. 노르웨이의 한 불멍 유튜브 영상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도 했어.' '아, 진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기는 순간이 필요한 거 같아.' '맞아. 세일링 할 때도 바다 한가운데서 한참 물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게 느껴져.'
이렇게나 대화가 잘 통했지만 실제로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내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가 피렌체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몇 번이나 같이 카페나 칵테일 한 잔을 할까 라는 제안이 왔지만 친구는 번번이 싫다고 했다.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먼 길을 온 그녀의 의사를 무시할 순 없었고 굳이 친구를 혼자 두고 만날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친구가 싫다고 한다며 만남을 거절했는데 그게 3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로 거절했으면 이제 포기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잊을만하면 다시 또 연락이 오고 또 한 번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는 했다. 요즘 세상에 한두 번 거절 이후에 다시 또 연락하는 남자가 그리 흔치는 않았기 때문에 제법 진지한 건가 싶어 한 번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한번 더 연락이 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진 나는 덜컥 저녁약속을 잡았다. 도대체 이 남자가 그 잠깐 사이 본 나를 왜 이렇게 보고 싶어 하는지 의심 반 기대 반의 마음이었다.
첫 약속 장소는 한국식당이었다. 이름하야 '강남식당'
연락은 계속했지만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터라 들어가자마자 혼자 앉아있는 Jo를 한 번에 알아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눈웃음이 귀여운 저 남자가 맞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걸어 들어가는 데 그 남자가 바로 Jo였다.
'한식당으로 바로 초대하다니... 이거 아시아 여자 킬러 아니야?'
살짝 의심이 들긴 하였으나 오랜만에 데이트인 데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는 뉴 페이스의 남자와 재밌게 놀자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추천 메뉴를 묻기에 고민 없이 바로 돼지갈비와 소맥을 주문했다.
"너 돼지갈비 먹어봄?"
"아니, 나 불고기밖에 안 먹어봤어. 비슷한 거야?"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음식이야. 너 그럼 소주는 마셔봤어? 소주에 맥주 믹스한 것도?"
"나 소주는 마셔봤는데 딱 한 잔만 마셔봤어. 소주랑 맥주를 섞어서 마셔?"
"휴... 너 뭘 잘 모르네.. 아니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딱 말해라. 누나가 제대로 알려줘?"
"Sisi Certo. 알려주세요! 누나"
20년 이상 단련된 스킬로 기가 막힌 소맥을 제조한 후 상추 안에 고기 두 점, 마늘 고추 한 점씩에 쌈장 듬뿍 넣고 밑반찬으로 나온 콩나물도 살짝 넣어서 제대로 쌈 싸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 짠!!!!!!!! 원샷"
" 맘마미아, 이거 한 입에 다 넣는 거 맞아?"
"어. 너 이거 나눠서 먹으면 다시는 나랑 못 놀아."
"알겠어. 친친!"
돼지갈비쌈에 소맥 한 잔. 없던 사랑도 생길 것 같은 그 궁합에 Jo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 이거 뭐야? 이게 뭐지? 이거 너무 맛있잖아? 이걸 모르고 살다니 내 삶을 이제껏 낭비한 것 같아."
"나야말로 이 맛을 알아주다니! 다시 한번 반갑다 Jo. 우리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돼지갈비 3인분과 소주 2병 맥주 4병을 얼큰하게 그리고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옆 테이블에 앉았던 이탈리안 커플이 한참을 쳐다보다가 쌈 싸 먹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성심성의껏 알려주었는데 어느새 주변 몇몇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졸지에 쌈 싸 먹기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소맥제조법도 공유해서 다 같이 건배를 하였는데 예전 회사 다닐 때 회식이 생각나기도 하고 유튜버가 된 것 같기도 한 오묘한 기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그 모든 순간들을 같이 즐겨주는 Jo가 귀여워 보였다는 점이다.
너무 즐거웠던 1차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더 시간을 보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장미꽃을 파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 Jo.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응응 장사는 잘 돼 가?"
길거리 행상들하고도 다 친구인가 보다 하고 간단한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아저씨가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 친구 진짜 좋은 사람이야!! 잘해봐. Bella."
"에? Jo 너 도대체 어떻게 저런 분 들하고도 다 친한 거야?"
"나 피렌체에 15년 살았잖아. 그리고 나는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해."
"그게 아니라 네가 하도 여자들한테 장미꽃을 많이 사서 선물하느라 매출 올려줘서 저 아저씨가 너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오! 맘마미아! 나 좀 믿어줘. 꽃을 산 적은 있지만 여자친구들한테 준 건 아니라고."
"알겠어. 믿어줄게."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웠던 터라 우리 집에서 10초 거리에 있는 Pub에서 맥주를 한 잔씩 더하기로 했다. 집 앞이라 정말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Jo도 자주 오는 곳이라고 했다. 전혀 서로를 모르면서 같은 공간에 스치듯 존재하다가 어느 날 알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인연이라는 것이 새삼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이번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설마 또 아는 척하진 않겠지...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헤이, Jo. 잘 지냈어? 사진 한 장 찍어줄까?"
"잘 지내고 있어. 보다시피 아름다운 레이디와 함께 하고 있잖아.(대놓고 이런 말 참 자주 한다).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 나 너랑 추억을 남기고 싶어."
아직 사진 같이 찍고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의 리드에 따라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찍게 되었다. 둘 다 얼굴이 벌게져서는 웃고 있는데 나는 카메라를 Jo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를 보는 타인의 눈에서 하트가 느껴졌고 그의 뜨거운 시선에 볼이 더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또 그 사진사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Jo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야. 그는 친절하고 정말 좋은 사람이야. 좋은 시간 보내길 바라."
이쯤 되면 이건 오늘밤을 위해 친구들을 미리 섭외해 놓고 시킨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들만한 상황이었다. Jo도 민망한 듯 서둘러 사진사 아저씨와 인사했다. 멋쩍게 웃어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웃기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녀석... 정말 나랑 비슷한 인간이었다. 피렌체 핵인싸인 데다 오지랖 넓고 사람 좋아하고 오만사람들이랑 다 친하고 말도 많고 흥도 많다. 어쩌면 나보다 더 한 인간을 만난 건지도.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도 닮았지만 또 싫어하는 내 모습도 닮아있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면서 왠지 심경이 복잡해지는 첫 데이트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