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두시 Jun 11. 2020

우리도 한때는 까불이었다

영화 <유월>

아들 나이: 만 7세

발달 상태: 음악을 들으면 흥이 나서 발이 빨라지고, 엉덩이를 왔다 갔다 하며 춤을 춤          

 침대를 트램펄린으로 생각하며, 침대 위에서 먼지  날리도록 점

 1층에서 시작되는 계단 난간 위에서 가 슈퍼맨이라며 점프

  갑자기 몸을 날려 엄마 아빠 품으로 점프....


우리 아들은 몸이 심심할 틈이 없는 발달 상태를 보이는 아직은 '까불이'이다. 내가 정의하는 까불이는 사전에서 정의하는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흥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어릴 땐 꽤 까불이였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교 때 수줍음이 심해져, 주로 땅바닥을 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나름 까불이가 되었던 것 같다.  

동네 친구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던 초, 중, 고등학교의 익숙한 내 울타리를 벗어나서 낯설었던 것인지, 아니면 들어간 대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던 것인가, 대학교 때에는 조금 방황을 했다. 게다가, 기가 센 아이들이 많이 모인 나의 전공 학과에서 나는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이후로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까불이가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으니, 사회적인 품위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까불이가 아닌 척을 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물론, 나이만...) 까불이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안의 까불이는 꼭꼭 숨어있다가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만 가끔 나타났다.


그런데 얼마 전 숨어있는 까불이들을 위로해주는 단편영화를 아들과 함께 보았다.

유튜브에서 현재 조회수 230만을 넘어가고 있는 영화 <유월>이다.

동자를 왔다 갔다 굴리며 얼굴로 춤추는 듯한 주인공의 클로즈업. 이 영화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유치원과는 달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아이다움의 억압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억압하는 규율과 규제가 많아지고, 선생님과는 거리감이 생긴다.

지금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체벌이 고등학교 때 가장 심했던 것 같다. 나는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몇몇 선생님들은 꽃같이 여린 여학생들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을 남용했었다. 마치 학생들이 자신들의 분풀이 대상이라는 듯이 아이들을 후려쳤다. 안 그래도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과했다. 체벌받는 친구의 잘못보다 선생님의 몸에서 뻗어나가는 화의 크기가 훨씬 컸다. 성인이 된 이제야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우리들은 감히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그저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러려니하고, 학교 체제에 순응하며 지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학교에서는 까불이의 천진난만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까불이를 책상 서랍 깊숙이에 담아둬야 한다.


영화 <유월> 초등학교 교실의 분위기도 삭막하다. 수업시간에 책상에 앉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유월이.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눈에 딱 걸린다. 결국, 더운 날씨에 체벌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와야 했다.

얼마 후 쉬는 시간, 학교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주체를 못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좀비처럼 이상하게 몸을 비트는 친구를 시작으로 금세 교실과 복도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들은 알고 보니 '춤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이다. 이때다 싶은 유월이는 혼란해진 틈을 타서, 학교를 탈출해, 잠시간 자유를 만끽한다.

신나게 몸을 한바탕 흔들고 나서, 학교로 다시 돌아온 유월이. 혼날 각오를 하고, 교무실에 있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다. 선생님은 텅빈 교무실에 혼자 덩그라니 앉아있다. 그런데 미세하게 움찔움찔하는 선생님의 어깨. 선생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봐 숨기려고 애쓴다. 그때 유월이는 선생님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아요"라고 말해준다. 그제서야 선생님은 서랍 속에 숨겨놓았던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본연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선생님은 유월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노래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 몸속, 어딘가 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피터팬을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20대의 한때, 나는 우연히 춤에 관심을 갖게되고 취미로 춤을 배웠다. 음악의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의 육체와 영혼은 더없이 자유로워졌다.

나는 영화 내내 보여지는 춤사위를 보면서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춤을 보며, 초록잎이 무성한 여름 나무의 싱그러움을 느꼈다.  

영화 <유월>을 보면서 이제는 엄마, 아빠, 그리고 사회인이 되었을 이 세상의 까불이들이 모두 안녕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아이들의 까불이가 건강하게 잘 크도록 잘 보살펴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