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내가 살았던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답니다.
하루 중에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조용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 때였어요.
그런 나의 평온한 일상이 깨진 것은
한 소년을 만났기 때문이었어요.
소년이 저쪽 끝에서부터
계속 무엇인가를 주워 담으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죠.
어느새 내 앞에 멈춘 소년은
"오, 귀여운데?"라며
나를 발견한 것을 무척 반가워했어요.
내가 소년을 바라본 순간,
소년의 손가락에 잡혀
비닐봉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죠.
봉지 안에는 이미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는데요.
거의 조개껍데기들이더라고요.
소라 껍데기들도 몇 개 보이긴 했죠.
내가 소년에게 발견된 이유도
조개껍데기이기 때문이었답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그다음엔 궁금했어요.
소년은 우리를 데려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시커먼 비닐봉지 안에 담겨 있으려니
어두워서인지 자꾸만 눈이 감겨왔어요.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땐
소년의 집에 도착한 후였답니다.
소년의 책상 위에는 유리병 하나가
준비되어 있더라고요.
속이 훤히 잘 보이는 것으로요.
소년은 조개껍데기를 주워와서
이 유리병에 담은 뒤에
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대요.
오, 내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선물이라고?
그냥 집에 놓아두는 것도 아니고
선물이 될 거라고 하니까 말이에요.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고
나도 책임감을 가져야 될 거 같은 거예요.
이왕이면 나도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조금이라도 멋져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친구에게 가기 전까지
매일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연습이냐고요?
나는 매일 입꼬리 올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스마일~"이렇게 말이에요.
예쁜 미소를 짓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예쁜
조개껍데기로 보이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유리병에 들어 있는 내 모습을 보는
소년의 친구도,
더 기분 좋은 선물로 좋아해 주지 않을까요?
근데 말이에요.
소년이 준비한 유리병은 깔끔하긴 한데
내가 들어가니까 어째 선물 같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집에 있는 통에 물건을 담아 놓은 것처럼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나 좀 예쁜 선물이 되고 싶은데,
다른 것을 조금 더 넣어보는 건 어때요?"
소년에게 나의 마음이 전달된 것인지,
마른 꽃잎들을 잔뜩 구해왔더라고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붉은 색깔 고운 잎들로 말이에요.
유리병 바닥에 꽃잎들을 소복이 깔아주니
훨씬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일단 병의 바닥이 푹신해졌고요.
바닥뿐만 아니라 껍데기들 사이사이에
꽃잎들을 같이 넣어주니까
전체적인 분위기도 화사해졌어요.
붉은 꽃잎으로 단장을 마친 유리병 안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설레며 몽글몽글 피어올랐죠.
아,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선물이라는 것을 상상하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입꼬리 올리고 스마일~
나는 예쁜 조개껍데기.
멋진 선물이 될 거야."
신이 나서 흥얼흥얼 노래가 나왔죠.
그런데 이번에는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라고요.
소년은 나와 친구들을 병에 가득 채워 넣고
유리병뚜껑을 닫아보더니,
"뭔가가 부족해"라고 중얼거렸어요.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이
누나의 방에서 향수를 몰래 들고 오더니
꽃잎들을 향해 향수를 칙칙 뿌려댔어요.
"그래 이거네. 향기가 필요했던 거네!
꽃잎을 넣었는데 향기가 없으니까
너무 밋밋했던 거였어."
소년은 그제야 만족하는 것 같았어요.
잠시 후 소년은 또 고민에 빠졌죠.
"근데 이 향기는 며칠 지나면
다 날아가고 없어져버리는 것 아닌가?
시간이 흘러도 오래오래 향이 남을 수 있게
그 친구한테 전달해주고 싶은데..."라며
향수를 더 뿌리지 뭐예요.
솔직히 처음에는 향기가 나서 좋았지만
나중엔 머리가 지끈지끈했어요.
나는 "이제 제발 그만!"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나의 두통을 알지 못한 소년은
유리병 가득 채워진 향기가 마음에 든다며
향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재빨리 뚜껑을 닫아버렸답니다.
"악, 조개껍데기 살려~!"
뚜껑 덮인 유리병 안에서 나는 질식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진한 향기는 유독 나에게만
힘든 일이더라고요.
이렇게 진한 향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쩌겠어요.
예민한 내가 어떻게든 적응해 봐야죠.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어요.
드디어 소년은 유리병에 든 나를 선물로 주기 위해
친구를 만났는데요.
선물을 받을 친구가 소녀더라고요.
아하, 그래서 그렇게 설렘 가득한 미소를
내내 짓고 있었던 거였군요.
근데, 어쩌면 좋아요.
집에서 짓던 미소들은 다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잔뜩 긴장해서 표정이 굳어버리더니
"이거 네 거야"라고 겨우 말하고는
도망치듯 가버리는 거 있죠.
아, 이런 이런!
소년을 보니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선물인 나라도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연습했던 대로 해보았아요.
"아아, 나는 멋진 선물이다. 스마일~"이라고
말을 꺼내놓고는, 연습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도 소년처럼 굳어버렸답니다.
원래도 단단한 껍데기인 내가 더 굳었으니
이걸 어쩌면 좋아요.
미안하다. 소년아!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힝...
그래도 그 순간 나는 보았어요.
갑작스러운 소년의 선물을 받고
당황한듯하면서도 소녀는 웃고 있었어요.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고 집에 돌아온 소녀는요.
유리병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라고요.
"와, 정말 많이도 주웠네. 예쁘다!"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어요.
그리고 눈이 반짝반짝하더라고요.
아까워라. 소녀의 저 표정을
소년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면 소년이 도망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중요한 표정을 나만 보고 있다니...
그날부터 나는 소녀의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소녀의 책상 위에는 확실한 내 자리가 생겼어요.
나는 소녀에게 인정받은 거 같았죠.
아주 특별한 선물로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소녀가 아침저녁으로 유리병을 바라보며
괜히 혼자서 미소 짓곤 했거든요.
소녀는 유리병 속의 나와
한 번씩 눈이 마주치곤 했지만,
그렇다고 뚜껑을 열어서 나를 만진다거나
꺼낸다거나 하진 않고 얌전히 보기만 했죠.
혹시라도 유리병이 깨지기라도 할까 봐
무지 조심하는 것 같기도 했답니다.
오늘도 무심코 소녀와 눈이 마주쳤어요.
소녀는 눈을 반짝거리더니 갑자기
뭔가 궁금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코를 가져다 댔어요.
"어머, 이게 뭐야!
걔는 여기다 향수를 뿌렸나 봐."
소녀는 머리가 띵해지는 강렬한 향기에
한참을 깔깔대고 웃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고마워. 내가 오래오래 잘 간직할게."
에이... 이게 뭐야!
그런 건 소년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말해줘야죠.
얘들은 서로에게 들려주면 좋을 말들을
꼭 저렇게 혼자서만 하는 것 같네요.
소년이 들었다면 아주 좋아했을 텐데...
그 이후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말수가 많지 않았던 소녀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소녀가 유리병을 한 번씩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는 것과,
그때의 눈에는 반짝반짝 설렘이
가득했었다는 것뿐이랍니다.
나는 유리병 속의 세상에 존재했고,
단단한 껍데기인 나는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없이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나를 보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를 모르고 살아왔어요.
어느 날 보니,
유리병 안에 나와 함께 있던 꽃잎들이
너무 많이 달라져있지 뭐예요.
예전엔 분명히 선명하고 고운 빛깔이었는데
그렇게 화사하고 붉던 꽃잎들이 사라지고
이젠 색이 바래졌더라고요.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것처럼 변해있는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너무 이상했어요.
그리고 유리병 바깥으로 보이던 세상도
많이 달라져있었어요.
보이던 물건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없었던 물건들이 생겨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유리병 바깥에 보이던 소녀를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소녀의 얼굴과 닮은,
한 여인이 보이더라고요.
유리병 속의 내 세상은 아주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것 같았는데,
유리병 바깥세상은 그렇지 않았더라고요.
소녀가 아닌 여인이 나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 낯선 마음이 잊히질 않아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요.
내가 기억하는 소녀는 볼 수 없었지만,
소년의 선물을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말하던
그 시절의 소녀의 마음만은 추억 속에
잘 간직된 듯이 보였다는 거였어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오늘은 너무 오랜만에 이 여인과 내가
눈이 딱 마주쳤는데요.
오늘따라 이 여인이 궁금해했어요.
"병 속에는 아직도 향기가 날까?"
그 말을 듣는 데 나도 궁금했어요.
너무 오랫동안 병 속에 있다 보니
이젠 예민하던 나조차도
그렇게 진하던 향기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여인은 뚜껑을 열고 유리병에 코를 댔어요.
그리고 흥분해서 말했어요.
"어머, 아직도 병 속에 향기가 가득해."
여인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이
병 속으로 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어요.
그리고 나를 끄집어내지 뭐예요.
역시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눈에 띄는
나의 예쁨만은 독보적이라니까요.
여인은 갑자기 나에게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요.
생각지 못한 여인의 돌발 행동에
내가 진짜 너무 깜짝 놀랐잖아요.
"이건 뭐지? 무슨 상황인거지?"
조개껍데기 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여인은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흥분했어요.
"와... 조개껍데기에서 향기가 나잖아.
이게 병에서만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조개껍데기에 향기가 배어든 거였구나!"
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향기를 뿜어내는 존재가 되어있더라고요.
나이 들어 기품이 생긴 인간처럼
세월 지나 향기를 품은 조개껍데기가 됐다니
너무 좋았어요. 나 좀 멋진 거 같아요!
그 순간 나는
오래전 소년의 미소가 떠올랐어요.
소년은 말했었죠.
"이 유리병 안의 향기가 오래오래 남아
소녀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라고 말이에요.
그 순간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예전 그 소녀의 눈동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유리병 속의 나를 바라볼 때면 반짝거리던
그 눈동자와 미소를 말이에요.
나는 소년이 바라던 대로
오래오래 소녀의 곁에 향기로 남은
선물이 되었답니다.
이런 기쁜 순간은 기념해야 한다고요.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의 눈과 마음에
한 컷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