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다.
하와이 한달살이를 끝낸 쌤이 돌아오셨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펄떡이는 생생한 얘기를 듣고 싶어 복잡한 카페가 아니라 산사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무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갔다. 잘 갔다 오시라 환송 인사한 지가 1달 전이었는데 못 뵌 지 1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생경하게도 하와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새 여윈 모습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마치 갈색 파운데이션을 바른 것처럼 제법 탄 얼굴이었다. 선크림 안 바르셨냐고 물었더니, SPF 100을 발라야 하는데 70을 발라서 이렇다 하신다.
밀린 얘기가 시급했다.
제일 먼저 날씨 얘기부터 풀어 주셨다. 낮 동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다가 밤만 되면 비가 왔는데 그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하니 뜬다고 한다. 그래서 하와이는 사계절 내내 수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아, 부... 부럽다. 여기 대프리카에서 보낸 4월은 30도를 웃돌다 갑자기 서리까지 내려, 이해조차 허락지 않는 날씨 변덕에 급성 조울증까지 걸린 나로서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매일 만보 이상을 걸었다고 하신다.
한 달 버스 승차권을 구입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바람이 부르는 대로 다녔다고 한다. 정거장을 지나쳤으면 지나친 대로 혹은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매일 그렇게 하와이를 유랑했다고 한다. 챙겨야 할 식솔이 주는 부담도 없고 기한 내에 마무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직장도 없으니, 그냥 발이 가자는 대로 다녔다고 하신다.
커피 맛조차 다르다고 하셨다.
사계절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꽃과 새소리를 배경 삼아 느리게 마시는 커피를 상상하며 천국을 떠올렸다. 그저 먼 곳 다녀온 얘기만 듣고 부러워하는 이 어리석음을 왠지 나무라고 싶진 않다. 왜 그렇게 부러워하는 지 이유를 반추할 수 있는 절묘한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느끼는 결핍감을 부추기고 있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휴직 중인 주말부부인 데다 7시에 아이가 등교를 하면 해질녘에 돌아오는 상황이니,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제법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발이 가자는 데도 마음이 가자는 데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긴 설렘을 주는 곳이 없다. 여기 말고, 저기가 부러움의 원인인가?
살짝 부러웠을까? 슬쩍 그새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노라고 말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나의 멘토이신 쌤 앞에선 무리수다. '아이쿠! 참 잘하셨다!' 격려를 듣기도 전에, 실은 요새 글쓰기가 힘에 부쳐 첫 발행조차 하지 못하고 있노라고 실토했다. 기성 브런치 작가들처럼 그렇게 쓸 자신이 없노라고 심지어 이전의 내 글만큼도 쓸 자신이 없어졌노라고 목구멍이 막히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내 발목을 잡아채지 않는데도 스스로 만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 내 얘기가 그만 하와이를 압도해버렸다.
그러는 내가 미련하기도 하고 짠하게 여겨졌을까? 산 아래 카페로 내려와, 배꼽이 빵빵하게 부푼 노오란 몰스킨 저널을 보여주셨다. 매일 저녁 별을 보며 글과 그림으로 스케치 한 일상이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소하다 싶을 정도의 물건과 음식 영수증, 입장료, 문화재 안내물이 성실하게 붙어 있었다.
한 권의 ‘하와이’를 끝냈으니 다시 또 저널을 채워야겠다는 말씀과 함께 풍만한 하와이 여인이 그려진 저널을 내미셨다. 첫 페이지에 '지안! 이제 당신 차례...'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려 시야가 흐러졌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오늘의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쌤의 말씀엔 언제나 힘이 있다. 말뿐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으로 말의 본보기를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왜 하필 하와이에 가세요? 가서 뭐 하실 거예요?”라는 우문에, 쌤은 ‘그냥!’이라는 현답을 하셨다. 여기 말고, 저기에 가면 뭐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실망'이지 '그냥'이 아닌 것이다. 매사에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일단 결심과 각오를 다짐하고 합당한 이유부터 세우려는 나에게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냥’이라는 말이, 글쓰기를 성취해야 하는 ‘일’로 여기며 '저기'로 가려는 나를 돌려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