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Jul 20. 2024

다정(多情) 예찬


지난주에 음식을 잘 못 먹어 위궤양으로 크게 고생했습니다. 이틀 동안 위를 쥐어짜는 통증으로 토하고, 탈수가 되자 의식도 점점 흐려졌는데요. 응급실까지 갈 기운도 없어 난생처음으로 집에서 약과 주사를 놔주는 응급 서비스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남자 간호사가 와서 수액 2개와 통증약을 놔주고, 약이 다 들어갈 때까지 상태를 보며 지키고 있더군요. 다행히 수액이 몸에 들어가자, 기운이 조금 나고,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며칠이지만, 건강에 대한 염려, 식욕을 통제하지 못한 죄책감 등으로 몸과 마음이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사소하지만, 친절한 말과 마음 씀으로 회복할 힘도 얻었는데요. 작지만, 무엇보다 강력했던 '다정함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뜬금 로맨티시스트가 된 남편

남편은 평소 지나치게 말이 없고, 잔재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평생 공부만 해선인지 사방이 꽉 막히고, 융통성이라곤 쌀알만큼도 없고요. 아내를 위한 이벤트 같은 건 평생 해 본 적이 없고, 기념일에도 손수 적은 카드가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은 따뜻하긴 해요.  


그러던 그가, 몸이 아파 함께 산책을 못 가자, "당신이 매일 공사장 앞에 가면 들꽃이 많다고 해서 뜯어왔어!" 라면서 들꽃 한 다발을 내밀었습니다. 산책하면서 들꽃이 보이면 늘 예쁘다고 했던 생각이 났나 봐요. 여리여리한 들꽃을 보는 순간 뜬금없어 웃음도 났지만, 사랑 받는다는 마음이 전달됐습니다. '어머! 이런 것을 받아 볼 날도 있네! 이제 보니 로맨티시스트!였네 '라며 고맙게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안 잊힐 다정한 마음입니다.





아프지 마세요!!

매일 독서를 인증하는 23명이 모여있는 단톡방이 있는데요. 시차 관계로 미국에 거주하는 제가 처음으로 하는 날이 많았어요. 별수 없이 몸이 아프니 책도 못 읽고 당연히 인증도 못 하고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라 나 하나쯤은 빠져도 티도 안 날 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증을 못 올린 날, H 님이 저의 안부를 묻는 카톡을 올리셨는데 참 고맙단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다정한 말씀을 해주셨고요. 사실 얼굴도 모르고, 상대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카톡방이지만, 참 '따뜻하고 정답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저도 위궤양으로 고생해 봐서 알아요!" "회복 잘하세요!" 등 공감해 주고 위로하는 글이 진심 힘이 됐습니다. 다정한 말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요? 



엄마를 표현해 보세요      

며칠 동안 앓고 나자, 몸무게가 2킬로 줄고 기운이 없어 매사에 의욕이 떨어졌습니다. 꾸준히 올리는 인스타에도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고요. 엄마의 상태를 보기 위해 집에 들른 딸이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더니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나 봐요. 여성의 옆모습이 그려진 그림 한 장을 보냈더라고요. 꽃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하니, 마음을 표현한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요.  


보내준 그림을 보는 순간, 20대의 내가 떠올랐습니다. 차고 공방에 가서 주섬주섬 꽃을 꺼내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걸까요? 건강하고, 열정 많았던 그리고 당당하고 순수했던 모습이 동시에 생각이 났기 때문일까요? 작업을 하면서 그림에 눈물이 번질까 봐 속으로 삼키면서 꽃으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화려하고, 예뻤고, 자신감 가득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니 어느샌가 치유가 되고 있더라고요. 딸의 다정한 마음 씀 덕분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단톡방이나 개인 카톡에 필요 없는 말 이외에 사심이 들어있는 말을 쓰면 방해되는 건 아닐까? 지인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귀찮게 느끼지는 않을까? 겉치레 성 맨트 같아 진심이 느껴지지 않은 거 같아! 등등 핑계인지? 배려인지? 생각을 많이 하다 다정한 말을 할 기회를 놓친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가족 간에도 이심전심이라며 생략하던 말이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쩌면? 누군가도 아팠을 때의 저처럼 다정한 한마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정한 말'이 '똑똑한 말'을 이긴다고 하듯이, 세심하게 살피고,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정한 호의를 베푼다면, 그 다정한 호의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일으켜 세운다." (김혼비작/다정소감)






그림에 꽃으로 완성한 소품이 독자분들께 다정한 마음으로 전달되길 바라며 함께 올립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 북은 만든 소품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꽃으로 완성한 그림



이전 20화 행복은 적금이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