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여운
동네 호수공원에 얼마 전까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나 싶더니 이젠 모두 연둣빛이다. 겨울의 앙상한 가지에서 진초록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잠시 잠깐 만나는 연두를 그동안 잘 알아채지 못했다.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근데 올해엔 좀 달랐다. 남편과 호수 주위를 걷는데 갑자기 연두 나무숲이 주는 포근함이 온몸과 마음을 감싸 주는 것이 느껴졌다. 호수에 비친 연두 숲은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연두는 노랑과 초록을 섞어놓은 색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말 그대로 Yellow Green이다. 아시다시피 봄에 새로 나는 나무의 새순과 꽁꽁 얼었던 겨울지나 땅에서 처음 올라오는 색이 연두색이다. 그래서 연두색은 자연, 젊음, 싱그러움, 신선함, 포근함을 상징함과 동시에 시작도 의미한다.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고 새로운 가능성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희망의 색이기도 하다.
연둣빛 공원에는 고요함과 설렘이 있다.
아이가 잉태되고 첫울음을 터트리기 전의 절대 침묵이 느껴진다. 그것은 생명의 경이함일 것이다. 우린 아기의 첫울음을 듣고 비로소 안심한다. 연두의 새싹이 그렇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무사히 살았구나! 그래서 우리를 설레게 한다.
동시에 연둣빛 숲은 역동성과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새싹 연두 잎은 신록의 푸르름을 우리에게 선물하기 위해 비바람을 견디며 무럭무럭 자란다. 이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열심히 정진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연두는 함께 한 시간이 짧아 애틋하다.
해마다 2주 반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이를 위해 일 년을 준비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미리 사 놓고, 예쁜 소품이 있으면 친구 몫으로 구입한다. 일년내내 방 한쪽에 큰 쇼핑백 하나를 놓고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그러기에 짧은 한국방문은 연두처럼 늘 설레지만 애틋하다.
어느 날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공원의 연둣빛도 잠시 머물다 간다. 그동안 수많은 봄이 지나갔건만, 연두의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지나쳤다. 삶에서도 귀했던 연둣빛 찰나의 시간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아쉽다. 잊고 지냈던 설레임과 희망 그리고 애틋함을 공원의 연둣빛 나무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