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Mar 25. 2023

나만의 안전지대 있으신가요?

케렌시아에서 재충전을....


지난 며칠 동안 위경련으로 고생했다. 주말에 있었던 모임에서 음식을 생각 없이 많이 먹은 게 화근이었다. 먹으면서도 그만! 이라는 몸 신호를 무시한 내 잘못이다. 평상시엔 과식하지 않는데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밤새 토하고 위 통증으로 한숨도 못 잤다.


아파서 누워있지도 못한 와중에 뜬금없이 대학 교정에 있었던 휴웃길이 떠올랐다. 몸이 힘드니 좋아했던 그곳이 그리웠나 보다. 웃으며 걷다 보면 휴! 하고 긴 한숨이 나온다는 휴웃길... 수업이 끝나고 이 길을 따라 쭈욱 걸으면 조금 떨어진 곳에 교문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나무가 우거진 이곳을 재잘거리며 친구들과 하교했다. 흙과 숲 냄새가 어찌나 좋은지 우울하거나 힘들어도 이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학교를 졸업 하고 나서도 뭔가 위로받고 싶을 땐 한동안 이곳을 찾곤 했었다. 나에겐 휴웃길이 그 시절의 케렌시아였다.   

  

케렌시아(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로,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에서 유래 되었으며 안정을 취할 자신만의 장소나 공간을 의미한다.



케렌시아는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케렌시아 투어라고 해서 안식을 위한 여행지를 골라 소개하는 투어도 있고 호텔에서는 케렌시아 페키지라는 이름의 호캉스 상품도 나와 있다. 좋아하는 카페나 공원을 가서 안식을 찾기도 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취미생활을 며 갖게 되는 케렌시아도 있다. 다이어리나 책상을 꾸미며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 북카페를 만들고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플랜테리어를 한다.


벌써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만 3년이 지났다. 은퇴하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려고 여러 계획을 세우는 중에 코로나 라는 복병을 만났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와 자기 계발에 몰두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부터 시작해서 인블유(인스타, 블로그, 유튜브)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해서 SNS 활동도 열심히 했다. 지금은 ChatGPT란 듣도 보도 못한 AI까지 사용해야 하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공부도 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한창 일할 때보다 더 바쁘다. 새로운 배움에서 오는 기쁨도 크지만 늘 뭔가를 해야 하고 결과물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따라온다.


그럴 때마다 난 꽃과 식물을 찾았다.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정원에서 흙을 만질 때 느끼는 부드러움, 공기 내음, 꽃들의 향기가 안정감과 평안함을 줬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서 생각났던 젊은 시절의 휴웃길처럼 이젠 정원이 나의 케렌시아임을 깨달았다. 내가 정원을 가꾸고 돌봐 주지만 오히려 나에게 안식을 주고 있었다. 


아침마다 물을 주며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면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매달리며 살지 않아도 돼!"라고 위로해 준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잘 크고, 경쟁하지 않고도 서로 잘 지냄을 보며 자연의 순리를 깨닫는다. 자연은 곧 스스로 이루어짐이다. 내가 종종거리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 이것은 내가 믿는 성령의 인도하심일 수도 있고, 노자가 말하는 무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식물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케렌시아가 된다. 나만의 안전지대이다. 오늘도 그곳에서 나는 하루를 온전히 시작할 수 있도록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려야 할 힘을 얻는다.

  

가족과 함께 만든 정원의 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