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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Nov 17. 2022

늦가을, 뉴욕 동네 공원에는

 낙엽 쌓인 길 함께 걸어요 


4년 전부터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 동네 산책을 시작했는데 대략 40분 정도를 매일 걷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기 싫은 날도 참고 가다 보니 이젠 습관이 됐다.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동네엔 차로 5분 거리에 3개의 공원이 있다.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곳, 나지막한 동산과 호수 둘레길이 있는 공원도 있다. 각각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서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서 갈 공원을 정하는데, 요즘 같은 늦가을엔 나무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호수가 있는 둘레길을 자주 간다. 


동네 호수공원의 늦가을


차로 5분쯤 달려 공원 입구에 차를 세우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한 심호흡을 한 후 호수 산책로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우뚝 선 나무들은 사계절의 다름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준다. 봄에는 연두 잎들이 설레는 모습을 보이고, 여름에는 신록이 우거져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니 좋다. 지금은 가을이어서 휑한 나무 사이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로 가득하다. 대학 시절의 늦가을 추억이 생각나는 낙엽 타는 냄새를 맡고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즐기며 호수 산책길을 향해 걸어간다. 


호수 둘레길로 가는 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둘레길이 있다. 주로 혼자 가지만, 가끔 남편이랑 걷기도 하는데  길을 돌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이좋은 부부의 다정한 모습,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젊은이,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보통은 일상을 즐기러 오는 모습들이지만 간혹 몸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초점 없는 휑한 얼굴에 앙상한 몸을 한 독일계의 여성분이 딸 같아 보이는 사람과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걷고 있었다. 딸은 계속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했지만, 대답을 듣진 못했다. 안타까운 두 사람을 보며 오늘이 마지막 산책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의 대화도 듣고, 음악도 들으며 걷다 보면 낯익은 벤치 하나가 나온다. 공원의 여러 의자 가운데 나는 늘 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여유 있게 마시기도 하고, 숨을 돌리기도 한다. 호숫가 가을의 벤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운치가 있어 좋다. 


호숫가 가을의 벤치


좀 더 둘레길을 걷다 보면 호수공원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시그니쳐 풍경을 만난다. 한쪽엔 호수가, 한쪽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군데군데 벤치가 있다. 가끔 호수에 살고 있는 오리와 백조들이 사람들이 앉아있는 벤치까지 나오기도 하는데 처음엔 광경이 생경하고 약간 무섭기도 했다. 나는 주로 사람이 없는 주중 낮시간에 가지만, 주말이면 이곳은 장터를 연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하는 장소이다.  


공원 중앙의 호숫가  


호수의 중앙을 지나면 빨간 사다리로 만든 "산책 시 주의 사항"을 적어놓은 사인 판이 보인다. 겨울에 얼음이 얼었을 때 낙상사고를 염려한 알림판인데 볼 때마다 참 센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로 만든 사다리 모양이 주위의 자연과 어우러지고 빨간색이어서 집중이 잘 되고 활력도 느껴진다. 


낙상사고 예방을  위한 표지판


조금 더 걸으면 호수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알록달록한 나무로 들러인 이곳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거나 우울할 때도 이곳에 서면 마음이 정화된다. 나무, 꽃, 호수의 오리,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들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위로되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다.


호수의 맑은 물과 숲 


에마 미첼은 "야생의 위로"란 책에서  25년 동안 앓았던 우울증을 숲과 정원에서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책에서 "산책은 차를 끓이는 일상의 사소한 의식이나 털실 뭉치로 장갑을 뜨는 것처럼 위안을 주지만 느낌은 매번 다르다"라고 말했다. 나도 산책하며 매일 다른 사계절을 마음과 눈으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자연은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 그래서 더욱 자연이 주는 위로를 온전하게 그리고 촘촘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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