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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Apr 29. 2023

라일락을 만나면 생기는 일

라일락 향기는 그리움과 설렘


우리 집 뒷마당에 라일락이 한창이다. 별 모양의 예쁜 꽃이 몽글몽글하게 피고 향까지 좋아 매일 아침 정원을 걸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몽글몽글 별모양 라일락


미국에 와 처음 집을 사서 이사를 했을 때다. 우리 집 뒷마당이 스를 가운데 두고 뒷집 마당과 붙어있었는데 미국인 노부부가 살고 계셨다. 미국 할아버지께선 한국전에 참전하셨다고 우리가 한국인임을 무척 반가워하셨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함박웃음과 함께 큰 소리로 Hi! Won하고 부르시며 담장 아래에서 풍성한 라일락 꽃다발을 주시던 로멘티스트셨다. 그때는 식물을 키우지 않을 때라 받은 라일락을 화병에 소중하게 꽂아 거실에 놓고 한동안 즐겼다.


그 후 미국 할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연로하셔서 2년 전부터는 더는 정원에 나오지 않으신다. 그러다 작년에 해마다 받던 미국 할아버지네 라일락이 생각나서 똑같은 품종의 라일락을 우리 집 뒷마당에 심었다. 한해가 지나니 올해엔 라일락꽃이 제법 풍성하게 피었다.


뒷마당 라일락


한참 예쁘게 핀 라일락을 보니 왠지 마음이 콩닥콩닥 설렌다. 그런 마음을 담아 커피와 라일락을 함께 인스타 피드에 올렸다. 묻지는 않았지만 많은 팔로워가 각자 라일락에 얽힌 추억을 댓글 창에 올렸다.

라일락 필 때면 국어 선생님이 라일락 밑에서 수업하던 기억이 난다. (M)
학교 앞 정류장에 라일락꽃이 있어서 일부러 한참을 서성거렸던 추억이 떠오른다. (P)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길에 라일락이 피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M)
라일락 피는 봄에 사랑을 시작했다. (S)
라일락 향은 추억이다. (H)
  
커피와 라일락


생생한 기억을 되살리고 회상하는데 냄새가 강력한 단서로 여겨진다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된다. 프루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숙모가 만들어 주던 마들렌의 향기가 떠올라 그 기억을 따라가며 한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 그 이후 후각은 살아온 흔적을 기억하고 회상하게 한다는 신경과학자들의 시험과 검증이 잇따르고 있고 실제로 알츠하이머나 치매 치료에도 향기요법이 활용된다고 한다.     


라일락꽃과 하트모양의 잎


그러고 보면 향기는 우리에게 흔적이고 추억이다. 늦가을 공원에서 낙엽 태우는 냄새를 맡을 때는 청춘의 그리움이, 아기를 안았을 때는 젊은 엄마의 따스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직접 맡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향기가 있다. 상냥한 사람의 친절한 향기,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향기, 말 한마디에 담겼던 따뜻한 향기는 마치 라일락 꽃내음처럼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에게도 이런 향기가 나면 좋겠다. 라일락이 그리움과 설렘을 선물해 주고 떠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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