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Jun 10. 2023

우울하세요? 라벤더 향을 맡아보세요

라벤더 향기가 주는 힐링

 

비슷한 연령이 모인 40명 정도의 그룹 리더를 몇 년 동안 한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나 회원 생일에는 공금으로 간단한 선물을 구입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평소에도 선물은 적당한 비용으로 하되, 설레는 마음으로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실용적인 생활용품을 넣은 박스에 라벤더꽃을 장식해서 선물했다. 그 당시엔 꽃을 키우지 않았지만, 라벤더의 향기가 좋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받은 사람마다 라벤더의 향기가 기분 좋은 힐링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라벤더로 포장 마무리


 그 후 내가 정원을 만들며 제일 먼저 키우고 싶은 꽃이 라벤더였다. 라벤더 길을 내고 월동에 강한 잉글리쉬 라벤더 4그루씩을 양쪽으로 심었다. 키우기도 쉬워 작년에는 3번이나 꽃을 수확했고 2년차가 된 올해엔 벌써 꽃이 풍성하다.


 1년차와 2년차의 라벤더 길


다 아시다시피 라벤더는 꽃 색깔이 매혹적인 보랏빛이다. 아울러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나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라벤더의 어원은 "씻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LAVARA"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힘든 마음과 슬픔을 씻고 위로해 주는 따스한 향기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예민한 마음을 다독거리는 효과가 있어서 아로마요법에도 자주 쓰인다. 그래서 라벤더로 만든 에센스 오일을 "오일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벤더 


내가 라벤더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라벤더를 말려서 다양한 소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꽃 자체가 주는 감성이 좋아 무슨 소품을 만들어도 분위기가 난다. 라벤더는 꽃부터 잎까지 버릴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재료로 응용할 수 있다. 내가 정원 꽃들을 이용해 소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순전히 라벤더 덕이다.


라벤더로 만든 소품들


라벤더는 5월 말부터 9월까지 계속 피는데 그사이에 꽃을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다. 가을이 되어 라벤더가 질 때쯤 라벤더잎을 잘게 썰어서 세탁건조기용 드라이어 백을 만든다. 건조기에 하나씩 넣어 쓰는데 다 끝난 세탁물에선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어 아주 상쾌하다. 시드는 라벤더잎을 활용하니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어 우리 가족도 쓰고 나눔도 한다. 작년에는 예쁜 박스에 넣어 선물했는데 다들 판매하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라벤더 건조기용 드라이어백


지난 몇 주 동안 마음이 불편한 일들이 있었다. 작은 일로 서운하고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어 애써 무시해도 소심한 나는 상처받는다. 최선을 다했으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힘들다. 스스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니 몸은 더 피곤해지고 예민해졌다. 그 와중에도 일상의 루틴을 흐트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서 하던 일은 계속했다. 산책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쉽게 마음이 풀어지진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해 질 녘 정원에서 물을 주는데 날이 어둑해졌다. 무심히 벤치에 앉아 등불을 켜고 헤드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벤치 위 라벤더에서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향기를 타고 딸바보셨지만, 딸이 결혼하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나의 멘토, 슈퍼히어로였던 아버지는 우울해하는 딸을 좋은 곳에 데리고 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셨을 거다. 그리고 세상사는 지혜를 다정하게 알려주셨겠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너의 길을 성실하게 가면 된다.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마라. 네가 만들어 온 길이 너만의 멋진 인생이야. 여태까지 잘 해왔어. 그러니 힘내서 너의 길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라


라벤더의 향기를 맡으며 아버지에게 사랑받았던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힐링이 됐다. 살면서 느끼는 갈등을 극복하는 힘은 큰 게 아니다. 작은 무언가로 회복되기도 한다. 라벤더 향기를 맡으며 느꼈던 아버지의 위로처럼.....          


해질녘 라벤더와 등불


이전 08화 라일락을 만나면 생기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