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Jul 21. 2022

행복한 힐링 정원 만들기 프로젝트

새벽 정원의 풀내음

얼마 전까지도 나는 행복하단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늘 달성해야 할 목표를 향해 동동거렸으며,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가 힘들더라도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쉼 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0부터 시작한 교육 비즈니스는 대기자들이 넘쳐날 정도로 성공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다음 목표를 향해 또 달려가야 했기에 마음은 늘 불안했다. 어느 날 문득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 이렇게 긴장하며 살면 곧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었다.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고민 끝에 은퇴를 선택했다.


막상 은퇴하고 나니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1년여를 우울해하고 방황하다 나를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웠고, 행복했는지를 생각해 볼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그러던 중, 정신과 의사인 스튜어트 스미스가 쓴 “정원의 쓸모”란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우울증, 공황, 트라우마, 불안, 강박증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현대인들이 식물을 심고 가꾸며 치유한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책 읽기를 끝내고 나만의 행복한 힐링 정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에게도 그런 치유와 힐링을 선물해 줄 정원이 생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기대와 행복한 설렘으로 정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정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기에 국내외 정원에 관한 책들을 구입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자진해서 공부한 시간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읽고 공부했다. 누군가가 정원을 설계하는 작업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정원을 스케치하는 부분이 제일 어려운 부분이어서 서투르지만 실제로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완성될 정원을 상상하며 하나씩 그려 나가는 작업 자체가 힘든 과정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꼬박 2달에 걸쳐서 정원 밑그림을 그리고 나무와 꽃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열정과 욕심이 앞서 여러 식물을 샀다가 정원에 심어보면 안 어울리기도 하고, 싼값의 식물을 기대하지 않고 샀는데 너무 예쁘게 피워주는 꽃도 있었다. 정원에 식물이 차츰 채워지면서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식물과 교감을 하며, 정원의 나무 와 꽃들을 관찰하고 보살피며 보냈다. 그리고 식물들도 나의 정성과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정원이 점점 예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디자인하고, 하나씩 채우며 만들어 가는 정원


뜨거운 햇빛과 비바람, 그리고 혹독한 눈보라를 맞으며, 사계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정원은 풍성한 안식처가 되어있었다. 철마다 나비와 꿀벌들이 찾아오고, 꽃마다 제각기 자신만의 색감을 뽐낸다. 언제든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고, 일과를 끝낸 저녁이면 가족들과 쉼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오솔길을 함께 걸어본 걸어보는 것, 꿈꾸어 왔던 행복한 정원이 시작된 것이다.


정원에서 식물과 함께 지내다 보면, 권태롭고 우울할 틈이 없다. 마음이 무거울 때, 식물들을 살피고, 물을 주기 위해 몸과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니 어느새 찜찜한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다. 잡초를 뽑고 시든 식물을 집중해서 정리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하게 해소된다. 서두르지도 않아도 때가 되면 틀림없이 피어나는 식물들을 보면서, 나도 나만의 리듬으로 여유롭게 살아야지! 라는 다짐도 해본다. 씨앗이 자라서 예쁜 꽃이 되고, 작은 모종이 자라서 큰 나무로 폭풍 성장하는 과정은 나 또한 나 자신을 키우며 성장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이 또한 식물이 가져다준 행복이 아니겠는가!


며칠 전, 새소리에 일찍 잠이 깨어 정원으로 향하는데, 정원을 통하여 있는 뒷문을 여는 순간 새벽 공기와 이슬 향기는 마치 대학 다닐 때 학교 교정의 사잇길을 걸으며 느꼈던 풋풋했던 초록의 향기 같기도 했고, 신혼 초 새벽 운동한다고 함께 걸었던 나지막한 아파트 뒷산에서 맡았던 흙 내음 같기도 했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시처럼 그동안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느라 지나쳤던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나의 작은 정원에서 하나씩 다시 떠올려 볼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별로 관심이나 의미를 두지 않았던 소소한 순간들도 이제는 감사하며, 새벽의 풀 내음 맡으며 정원의 작은 오솔길을 걷는 이 시각이 지금 내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