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May 13. 2023

하마터면 이사 갈 뻔 했다

엄마의 꽃밭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을 드디어 이루는 줄 알았다.  


책 좋아하는 남편은 사면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햇볕 좋은 서재에서 책을 읽는다. 나는 나무와 꽃이 가득한 정원에서 식물을 돌보고 글을 쓴다. 정원 한쪽에 있는 간이카페에서는 지인들과 간단한 소품도 만들고 차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해 질 녘이 되면 노을 보이는 창가에 앉아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한다. 이 모든 것이 곧 이뤄진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부동산을 하는 절친과 나의 꿈을 이루어 줄 집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언젠가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꿈을 이루기엔 부족해 보였다. 주위가 너무 복잡해져 마치 상업지구에 살고 있는것 같았다. 아이들도 다 성장하고 우리 부부도 은퇴해서 굳이 집값 비싼 이곳에 더 이상 있을 필요도 없었다.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널찍한 곳에서 여유 있게 노후를 즐긴다면 내가 생각하던 꿈이 이뤄질 것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선 집을 내놓으면 오픈 하우스를 해서 구매자들에게 집을 선보인다. 그래서 주말마다 오픈 하우스를 구경하며 1년여를 찾아 다녔다. 드디어 서재는 널찍하고, 많은 나무와 꽃이 있는 고급스러운 정원이 있는 집을 찾았다. 한쪽엔 꿈에 그리던 카페를 겸한 큼지막한 그린하우스도 있었다. 동네도 한가하고 언덕 위의 하얀 집은 나를 위해 준비된 거 같았다.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너무 좋은 환경이라 얼른 이사를 하고 싶어 인스펙션(집 사기전에 집의 하자를 살피는 절차)을 서둘러 했다. 이사해도 괜찮다는 결과가 나오자 바로 오퍼(집을 사겠다는 의사 표현)를 넣고 가계약했다.


이젠 우리 집만 좋은 격에 팔면 된다. 친구가 부동산시장에 정식으로 내놓는다고 사진을 찍기 위해 전문사진사를 보낸다고 했다. 집 사진을 찍기로 약속하고 방 정리에 들어갔다. 평소에 깔끔하게 사는데도 얼마나 버리고 정리할 게 많은지 1주일을 꼬박 매달렸다. 곳곳을 정리하자 처음 이 집을 지으며 설렜던 마음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가 열심히 일했던 소중한 시간이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뒷마당 입구의 종 


어쨌든 약속대로 전문 사진사가 와서 우리 집을 샅샅이 찍었다. 프랑스인인데 전문가답게 카메라 몇 개를 사용해서 집이 넓고 쾌적하게 보이도록 촬영했다. 드론 촬영까지 해서 교통과 환경이 좋은 곳임을 어필했다. 그래선지 위치와 집 상태가 좋다고 집을 정식으로 내놓기도 전에 몇 사람이 다녀갔다. 그중 계약할 사람이 있다고 친구가 바로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다.


근데 이게 뭐지? 집을 정리하면서부터 시작된 마음이 쿵쿵거리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친구에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하루만 더 생각해 본다고 했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정원에 물을 주러 나갔는데 작년에 심은 장미가 어느새 창문을 덮고 있었다. 남편 서재의 불빛은 오늘따라 따뜻하게 보였다. 발품 팔아 고른 벽돌, 조명 하나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곳곳에 추억과 애정이 묻어 나왔다.   


서재의 장미넝쿨


아! 어떻게 하지? 그동안 집 알아봐 준다고 고생해 준 친구에겐 뭐라고 하나? 에서 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에게 실수하고 경솔했던 나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별의별 이유를 대가며 이사할 이유를 찾던 내 모습이 창피했다.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다. "이사 갈 집의 정원은 크고 화려하지만 당신 손길이 안 닿았잖아. 우리 집 정원은 작지만 나무하나 꽃 한 송이에 다 당신의 숨결이 있는데 뭐가 더 소중하냐고?" 잠시 침묵이 흘렸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오! 그렇네. 여기엔 나의 꽃밭이 있구나. 아이들이 나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엄마의 꽃밭...그리고는 곳곳에 묻어있는 가족들의 흔적에 이사를 못 할 것 같다는 결정을 내렸다.


꿈은 환경을 바꾼다고 이루는 게 아니었다. 크고 넓은 정원에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마음에 작은 꽃밭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집을 팔기 위해 집 정리를 하다 하마터면 잃어버릴뻔한 소중한 보석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작은 허영심으로 이사를 했다면 이 집이 많이 그리웠을 것 같다. 맑은 밤하늘에 빛난 불빛이 실수투성인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듯 하다.

 

뒷마당 조명 

.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든 지금이 더 아름다운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