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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Dec 23. 2023

한겨울밤의 꿈

'일상을 여행하듯 살기'가 마음처럼 잘 되지 않더라도..

나는 서울의 한 동네에서 태어나 30년 가량을 그 근방에서만 살았다.


태어난 곳에서 줄곧 사는 사람과 출생지를 떠나 타지로 옮겨가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사람의 비율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다만 20대 때에는 적어도 내 가까운 지인들에 한해서, 타향살이 중인 사람보다 나처럼 한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렇게 산다는 게 크게 좋게도 싫게도 생각되지 않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2년 이상 머물며 살아보는 동네의 수를 점차 늘리기 시작했던 것은 스물일곱 살때부터였다. 삿포로로 시작했던 그 방랑의 여정은 동북아와 동남아, 유럽 등지와 제주도를 지나 2023년 12월 현재 거제의 한적한 바닷마을에까지 이어졌다.


기차역도 공항도 없는 이 시골의 형편상 고향에 방문할 일이 생긴 때에는 차로 최소한도 5시간 이상을 달려야만 가까스로 약속장소에 다다를 수 있다. 체감으로는 흡사 동남아에서 출발한 느낌이랄까. 왕복으로 따지면 한나절 정도를 이동에만 투자해야 하는 터, 어지간해서는 서울에 잘 가지 않게 된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는 때에는 그런 고생길이라도 냉큼 다녀오곤 했다. 절친한 죽마고우의 일생에 한 번뿐일 결혼식이라든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귀한 공연이 올라왔다든지 하는 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고향 서울을, 여행하듯 가끔 방문하다 보니 깨닫게 된 거다.

나는 진심으로 '일상도 여행하듯이 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 이 바닷마을살이만 하더라도, 한때는 내가 품은 일종의 소망이었던 삶의 모습이다.

바닷가 코앞에 살며 언제고 내킬 때면 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서 푸욱 젖은 채로 한적한 동네를 산책하다 집에 돌아와 햇볕과 바람에 적당히 마른 옷을 깨끗이 빨아서 테라스에 탁탁 털어 널어두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일상.

소망을 품을 당시에는 나에게 그런 삶이란 좀처럼 실재하기 힘들 것만 같았고 심지어 거의 망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여름의 내 일상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여기도 영하권의 기온에 휩싸여 파도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지경이지만.


지난 주말의 상경일정 또한 몇 가지 꼭 가고픈 이유들이 중첩돼 결정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또 이동만 왕복 12시간 이상의 계획을 야물게 짰다. 1박2일 안에 삼청동, 도렴동, 내곡동, 중화동, 서초동을 섭렵하고 다시 거제도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피곤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활기가 가득해져 돌아온 스스로를 느끼며, 기껏 싫다며 떠나온 서울을 여행하듯 다녀오니 어찌나 즐거운지 몰라 허탈했다.


그러니 부디 다가오는 새 날에는 꼭, 지금 내가 사는 이 곳을 더 사랑해야지.

누군가의 꿈일지 모를 이곳과 내 삶을 마음 깊이 아껴주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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