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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정 Feb 10. 2024

맏며느리의 숙명

남편은 ㅇㅇ김 씨 집안의 장손이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차례준비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서 명절준비를 한건 아니었다. 10년 전쯤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께서 주택도 장만했으니 우리 집에서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였다. 당시도 일을 하고 있었지만 평소 음식준비는 내가 해서 큰 고민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어머니도 오랫동안 해오신 일이지만 힘들어 보였고 뭐든 알아하라고 하시니 부담도 없었다.



그때부터 음식준비를 우리 집에서 하고 시댁어른들이 오셨다. 사실, 친정에서도 늘 명절이면 손님으로 북적이고 음식도 많이 해봐서 준비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시댁어른들이 집으로 오시니 집안청소가 문제였다.


일도 하고 살림도 하다 보니 평소에 깔끔하게 정리를 못하고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한꺼번에 치우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올 때면 집안청소만 1박 2일이 걸릴 때가 많다. 명절에도 음식 하는 시간보다 청소하는 시간이 두 배는 걸린다. 지금음식준비를 마치고 청소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다.


친정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작년부터는 명절전날에 친정오빠네 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당일에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친정에 갔다. 하지만 이제는 명절오후에 친정에 가면 오빠도 처가에 가야 해서 친정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차라리 내가 전날 가서 같이 전도 부치고 음식도 하면서 저녁 먹고 오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오빠와 남동생도 다음날 차례를 지내고 처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친정에서는 전만 함께 만들도 그 외 국과 나물 갈비, 조기등 다른 음식은 집에서 준비해야 한다. 오늘도 점심쯤에 친정에 가기로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갈비를 시작으로 나물과 국을 끓이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다. 친정에서는 언제 오냐고 전화와 카톡에 난리가 났다. 몸은 하난데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음식 하느라 집안청소도 못했는데... 남편을 깨워서 청소며 이것저것 부탁을 했다.


대충 마무리하고 남은 저녁에 돌아와서 하려고 부랴부랴 친정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진이 빠졌다. 다행히 작은어머니와 올케들이 이미 전을 만들어 놓았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하면서도 우리 것까지 넉넉히 쳐서 챙겨주었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친정친정이었다. 도착해서 한숨 돌리고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남은 집안일이 걱정되었다.


걱정도 잠시, 삼 남매와 올캐들 아이들까지 모이니 북적북적해서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반나절의 시간이 훌쩍 지나서 늦은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에는 오전에 다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있었다. 도착해서 내일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를 했다. 제기도 꺼내어 준비하고 나니 이미 밤을 지새우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10년째 명절 전날은 항상 밤을 새웠다. 남편이 외동이라서 며느리도 나 혼자다. 혼자 동부서주 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서 음식하고 청소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어느 때는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때도 있다. 누구 말처럼 얼굴도 모르는 시댁제사를 왜 나혼자 챙겨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2년 전에 항암 하느라 명절에 딱 한번 차례상을 안 차리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 후로 남편도 차례를 지내지 말자고 해봤지만 어른들이 반대하셨다. 그래서 다시 지내게 되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명절에 밤을 새우게 될지는 모르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왕 하기로 했느니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조금 힘들지만 전날 친정에 가면 가족들 모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수 있다. 힘들겠다며 위로해 주는 형제들이 있다. 그냥 맏며느리의 숙명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남은 휴일도 많으니 잠은 내일 몰아서 자야겠다. 새해 첫날부터 밤새워서 꿀잠 잘듯~ 


오늘은 구정 첫날~!  어제 음식 준비하시느라 힘들었던 분도 있고, 본가에 가느라 길이 막혀 고생하신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걱정은 모두 털어버리고, 이 글 읽으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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