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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정 Jun 13. 2023

그리운 아버지의 옥수수

여름이면 생각나는 그리운 맛


제가 세컨하우스를 만들게 된 것은 친청부모님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께서 기관지가 안좋으셔서 공기 좋은 곳에서 휴양을 해야했습니다.

그 시절에 부동산을 통해 알아본 것도 아니었는데, 산을 몇 개나 넘어가야 하는 산골짜기에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는 입구까지 마중 나오신 땅주인을 만나인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누군가 꽁치 5마리를 구워주는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그날  운명처럼  만난 첩첩산중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홉 사리라는 곳, 강원도 횡성군 어느 마을에 500평의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산중턱의 황무지 같은 곳이라 수천만 원의 토목 공사를 하고 난 뒤에 자그마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횡성집도 지금처럼 2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집이었네요.


20년 전에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마련한 곳이라 지금의 '세컨드하우스'라기보다 별장이나 요양을 하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퇴사하시고 나서는 두분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횡성에 계셨습니다. 너무 산속이라 눈이 오면 한 달씩 갇힐 수도 있어서 겨울에만 잠시 수원 본가에 올라오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일하는 동안 여름휴가를 횡성으로 가서 푹 쉬다 올 수 있었습니다.

휴가 때 가면 아이들은 아빠와 얼음골이라는 계곡으로 내려가서 종일 놀다가 오고 저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실컷 잤습니다. 마치 1년 묵은 피로를 다 날려버리겠다고 작정한 듯이 며칠간을 시체처럼 잠만 자다가 왔습니다. 친정이라는 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지치지도 않고 계곡으로 내려가서 물놀이와 다슬기 잡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여름을 횡성에서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옥수수'때문이었습니다.  여름이면 우리를 위해 정자옆으로  빼곡하게 옥수수를 심으시는 우리 아버지! 남편에게 늘 옥수숫대를 통째로 뽑아오라고 시키셨습니다. 남편은 큰 옥수숫대에 한 두 개밖에 안 달려있어서 가성비가 안 좋다면서 투덜대며 옥수수를 뽑아옵니다. 하지만 옥수수 한 알에 한그루가 자라는 거면 괜찮은 가성비 아닌가요?ㅋㅋ


저는 쿨쿨 낮잠을 자다가 구수한 옥수수 삶는 냄새가 나면 벌떡 일어나  앉은자리에서 3~4개를 순삭 합니다. 방금 따온 옥수수는 설탕이나 사카린을 넣지 않아도 너무 달고 맛있습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 맛입니다. 남편은 늘 제게 옥수수킬러라고 놀립니다.ㅋ~


정자옆 공터에 옥수수를 심었던 곳


일주일 동실컷 먹고 남은 옥수수는 모조리 쪄서 냉동실에 얼려놓으라고  바리바리 싸주십니다. 얼마나 많은지 김치냉장고 반이상을 채우고도 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겨울 내내 옥수수를 다시 쪄서 먹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옥수수는 그리움으로 남아 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길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곳이 나타나면 무조건 서서 옥수수를 사야 합니다. 맛이야 당연히 비할 바가 아니지만 옥수수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는 조건반사 같은 것입니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추억을 회상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에게 옥수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저에게 옥수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옥수수 볼 때면 알갱이들이 가슴에 알알이 콕콕 박혀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올여름에도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듬뿍 느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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