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이 되어 너무 많은 일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펜데믹, 남편의 퇴사, 아버지의 폐암전이, 그리고 나의 암진단까지... 연달아 몰아치는 폭우에 잡을 수 있는 건 나의 멘털뿐이었다. 놓지 마! 정신줄!
항암을 마치자마자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전혀 안 돼서 아버지를 만나 수 없었다. 그래서 24시간 재가요양보호사님을 두고 아버지를 집에서 간병을 했다. 출퇴근을 하느라 내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옆에 모시고 있으면서 그동안 가족들이 없어 불안했을 아버지에게 안정감을 드리고 싶었다.
요양원에서 오신 아버지는 알아볼 수없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몇 달 전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분명히 휠체어를 타고 입소를 하셨는데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누워만 계셨다. 밥을 넘기지 못해 콧줄로 식사를 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상태를 직접 보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호스피스병원에서 오는 가정진료를 신청해서 매주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아프신걸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더 고역 일지... 불 보듯 뻔했다. 집에서 요양하시는 동안 오빠와 동생, 조카들은 주말마다 찾아왔다. 그래서 아버지도 항상 주말을 기다리셨다. 혹시라도 일이 생겨서 한 주라도 못 오는 날이면 왠지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100일간 머무르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 슬픔에 오래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삼우제를 지낸 다음 날 본부에 3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중요한 일이라 도저히 미룰 수 없어서 행사를 진행했다. 기쁘지만 상황을 즐길 수만을 없었다. 하지만 마음으로 위로 주고 응원해 준 회사식구들을 위해 그날 하루 온 마음을 다했다.
여러 힘든 상황을 맞았지만 함께해 준 회사 식구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견뎌내기에는 연달아 닥쳐오는 일들을 헤쳐내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힘을 내고 싶었지만 다시 일어서기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회사식구들이 있었으니까...
세일즈의 세계는 냉정하다. 오직 실적으로만 평가를 받는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노력했지만 한번 놓쳐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 ,결국 나는 18년간 다닌 회사를 정리하고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처럼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건 나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었다. 새로운 길이 열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