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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Sep 30. 2020

우리가 가을을 열광하는 이유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잔뜩 몸을 움츠렸던 추운 한파를 그리워한 적 있으신가요?
손발뿐 아니라 온 대지를 꽁꽁 얼린 매서웠던 엄동설한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한 적 있었나요?
얼른 이 겨울이 끝나기만, 하루빨리 봄이 오기만을. 간절하지 않으셨나요?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나뭇가지에 힘겹게 돋아나는 새순이 반가웠습니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면 희망을 봅니다. 이제 어깨 펴고 살만한 날이 왔다고 말입니다.
함박눈에 시달렸던 지난날 노고는 꽃눈 날리는 벚꽃을 보며 모두 날려버립니다. 붉게 핀 장미꽃에 진한 사랑을 느끼며 계절의 여왕 봄을 만끽합니다.
기죽었던 어깨를 펴고 거리를 마음껏 활보합니다.
한동안 열리지 않았던 야외 스포츠는 본격적인 레이스를 펼칩니다.
모두가 기다린 봄은 뭐가 바쁜지 그리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떠나보내기 싫어 봄. 봄. 봄노래를 부르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이 땅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2달 넘게 줄기차게 내렸던 장마를 떠나보내기 아쉬웠나요?
하루 걸러 하루 강타했던 태풍을 환호하며 반긴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무더위 열대야, 폭염과의 작별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무덥던 여름이 저물기 시작하면 우리는 가을을 기대합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는 가을임을 실감합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를 필두로 대하, 굴, 은행. 다른 계절도 그때만 즐길 수 있는 제철 음식들이 있지만 우리는 유난히 가을 별미에 열광합니다.
제철 음식뿐만 아니라 잔잔히 울리는 가을 음악은 감성을 자극합니다. 옛사랑이 떠오르고 지난날이 그리워집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철학자가 되어보고요. 쌀쌀한 찬바람에 오버 깃을 세우고는 한껏 센티멘털해집니다.
한 해 동안 치열한 레이스를 달렸던 야외 스포츠는 가을의 전설 주인공을 탄생시키며 대장정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가을에 열광하는 이유는 왜일까요?
무심한 봄처럼 이 가을도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걸 알아서가 아닐까요?

가을과도 금세 이별하게 된다는 아쉬움 말입니다.


시동 걸고 출발하기 시작한 가을.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10월, 추석입니다.
올해는 정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 마음껏 다녀보지도 못했는데 한 해는 벌써 4분의 3이 가버렸습니다.
황금연휴로 쭉 이어진 추석이 지나면 밋밋한 11월의 달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테고요. 거리엔 구세군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질 테죠. 호빵을 먹으며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 소망을 경건하게 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곤 매서운 한파를 견디며 언제나 그랬듯이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겁니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내키지 않고, 매서운 한파를 떠올리면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합니다.

아직은 옆에 있는 가을인데 벌써 아쉬움이 듭니다.
하늘은 높고 맑은 이 가을의 문턱.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지만
올해는 봄 여름 가을, 가을, 가을, 가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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