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려고 컵에 물을 채워요. 물컵을 쥐려는데 손에서 미끄러진 컵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습니다. 컵은 산산조각이 나고 파편은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컵이 깨진 것도 짜증, 조각을 치우려고 하니 또 짜증이 밀려옵니다. 깨진 컵 조각을 하나씩 집어 들고 물기를 닦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 멀쩡한 물컵은 왜 깨져서 이리 귀찮게 하나' 짜증이 몰려왔는데.
치우다 보니 발등에 떨어지지 않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깨진 유리도 안 밟아서도 다행이고요. 옆에 아이라도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순간 감사함이 밀려옵니다.
두 스님이 먼 길을 떠납니다. 가는 여정이 만만치가 않아요. 걷고 또 걷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습니다. 몸을 누울 곳을 찾다가 동굴 속에서 잠을 청합니다. 한 스님이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 깼습니다. 사방은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하며 물을 찾는데 다행히 옹달샘 같은 물이 있고 바가지도 있습니다. 스님은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켭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물은 생전 처음 마셔본 것 같습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마셨던 물이 생각나 동료 스님과 옹달샘을 찾아가죠. 샘을 찾아 바라본 순간 구역질이 튀어나옵니다. 바가지는 바가지인데 해골바가지였고요. 어제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 안에 고인 썩은 물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는 원효 대사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합니다.
컵이 깨져 짜증이 났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컵이 깨진 사실은 그대로인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따라 짜증이 났다가도 안심을 합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너무나 달콤해서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느낀 감정과 감각이 마음에 든 거죠. 다음날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봤을 때 느낀 감정과 감각은 마음을 요동치게 합니다. 같은 물인데 달달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고마움이, 썩은 물인 걸 알았을 땐 구역질이 나옵니다.
나이 들어 예전 다녔던 학교를 가봅니다. 모교를 찾아가 보는 순간 놀라 입이 벌어집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뛰어놀던 그 넓은 운동장이 손바닥만 하게 보입니다.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로 기억에 자리 잡고 있던 느티나무도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도 안 돼 보입니다.
어릴 때 다녔던 학교를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말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마음에서 지어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맑던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비가 내립니다. 비를 피하려고 급히 뛰어갑니다. 땅바닥에 고인 물이 튀고 옷은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자신을 보며 무심히 내리는 비를 원망합니다. ‘하필 우산도 없는데 비는 왜 내리고 난리야’라면서요.
달콤한 연애에 빠져 콩깍지가 씌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둘이 길을 걸으며 손 한번 잡아 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남자는 웃옷을 벗어 여자와 함께 쓰고 달립니다. 비를 피하려 내 곁에 꼭 붙어 있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비는 난생처음이라 느끼면서요.
이 비나 저 비나 똑같은 비인데 말입니다.
가을이 저물 무렵 찬바람에 오버 깃을 세우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허무함을 느낍니다. 근데 낙엽이 나에게 허무함을 준 걸까요? 아님 나 스스로가 허무함을 느낀 걸까요?
옆에는 꼬마 녀석들이 낙엽을 던지고 지근지근 밟으며 장난치고 웃고 있습니다. 허무함을 느낀 내가 본 낙엽과 꼬마들이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는 낙엽은 다른 건가요?
행복도 불행도 상황에 따라 또는 환경에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나를 건드리지 않고 누가 나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행복할 거라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니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할 수 없으니깐요.
내가 행복할 때는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 보입니다. 내가 불행할 때는 세상은 전부 검은 잿빛이고요.
좋은 일이 생기면 당연히 기분 좋으니 행복하고, 나쁜 일이 닥치면 힘들어 당연히 불행하다고 하지만 나쁜 일 가운데서 좋은 점을 찾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 영원할 리 없으니 너무 으시댈 필요도 없고요.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날아갈 듯 기뻐하고 때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쉽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변화무쌍하니 스스로 힘든 적도 많았을 겁니다.
작은 아이였을 때 커 보이던 것이 커서 보니 작아 보이는 이유는 내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죠. 사물을 보는 관점도 다양해졌고 생각도 깊어졌으니까요. 마음이 커진 만큼 마음먹기를 야무지게 해야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욕을 하든, 하늘이 나에게 모진 시련을 주든 내 마음만 바로 선다면 어떤 곳에서든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말대로 마음을 달리 먹어보기로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만만한 것부터 해보려고요.
출근길 아침, 차들이 꼭 막혀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운전대에 손을 올려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리다가 방금 본 시계를 다시 보며 '5분만 일찍 나올걸' 하는 후회를 하죠. '오늘따라 차들이 왜 이리 많아' 하며 짜증이 스멀스멀 나오려고 합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라디오를 켜니까 때마침 기분 좋은 음악이 나옵니다. 고개를 까닥까닥 거리며 박자를 맞춥니다. 볼륨을 높이고 크게 따라 부르기도 하고요.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립니다.
어차피 짜증 내나 음악을 들으나 도로 위의 차들은 때가 되면 빠질 테니까요, 그럴 바엔 마음이라도 편한 게 훨씬 낫습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제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이 날 때나 변함이 없습니다.
달라진 거라고는 자신의 마음뿐입니다.
"마음이 생겨나므로 모든 것이 생긴다"라고 읊은 원효 대사의 깨달음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