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는 것이,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중지와

우물 안의 개구리

by 공감의 기술

우물 안에 개구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와 올챙이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그들만의 세상입니다.

보이는 것은 까만 바탕에 동그란 원 하나가 전부입니다. 까만 바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동그란 원은 어떤 때는 더없이 푸른 하늘을 보였다가 어떤 날은 회색빛 구름으로 가렸다가 밤이 되면 온통 까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빛나는 별들이, 드문드문 스쳐 지나가는 달이 밝혀주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가 어떤 때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가끔은 눈이 내렸습니다.


오늘도 알에서 깨어 나오는 올챙이가 있고, 올챙이는 개구리로 자라 비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개구리가 많아집니다. 먹이 하나로 싸우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는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집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별 거 있겠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같은 하루를 보내는 대다수 개구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나부터 살고 봐야지' 삭막한 공간에서 남을 짓밟고 나만 챙기는 개구리도 있고요.

'저 바깥은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보이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개구리도 있습니다.


바깥세상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고 합니다. 온갖 천적들이 목숨을 노리는 무서운 곳이라며 겁을 잔뜩 주었습니다. 나가봤자 별 수 없고,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안전한 곳이기에 주는 것을 못 먹기도 하고, 있는 것도 잘못 나누고, 가진 것을 뺏고 빼긴다고 합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비좁은 환경과 그들만의 치열한 경쟁이 당연한 거라고 믿었습니다.

다들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은 보이는 까만 바탕에 동그란 원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우물 안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억수처럼 쏟아부었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나 우물물이 입구까지 넘쳐났습니다. 드디어 바깥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물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였습니다. 까만 바탕에 동그란 구멍 하나만 보다가 사방이 탁 트인 세상은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하늘이 저렇게나 높고 어마어마한지, 구름이 저리도 많았는지, 태양이 이렇게 따뜻한지, 불어오는 바람이 이리도 시원한지 처음 느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풍성한 먹거리가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어디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천적들의 흔적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어리둥절 뭐가 뭔지 의아해하거나,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하며 두려움에 떠는 대다수의 개구리가 있습니다. '우와~' 감탄해 마지않은 몇몇 개구리도 있습니다.

우물 안 세상과 너무나 다른 바깥세상은 신비함과 동시에 무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개구리들은 지천에 널려 있는 먹이보다 천적의 흔적을 더 무서워합니다. 비가 그치고 우물 수위가 낮아지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우물 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더 깊이, 더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깁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반면 새로운 세상을 바라며 또 다른 삶을 꿈꾸었던 몇몇 개구리는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비좁은 세상에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자신을 버립니다.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드넓은 세상으로 뛰어듭니다. 이전의 자신과 작별을 고합니다.




오늘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멈추지 않는 세상에 각자의 존재로 삶을 이어갑니다.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는 대로만 하며 살아갑니다. 작게 보면 작게 하고 크게 보면 크게 합니다. 보는 것이,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작게 보이는 곳이 드넓은 세상의 문인 줄 알지 못합니다. 크게 보이는 것 뒤가 끝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얼마나 큰지 작은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금 여기가 전부라고 여깁니다.


또 다른 삶을 꿈꾸고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의미 있게, 충실하게 보낸 하루하루가 모이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배웠습니다만 현실은 오늘이 어제 같고 오늘이 그제 같습니다.

일상에서 주어진 것만, 하던 일만 하다 보면 일상은 그날이 그날 같아 보입니다. 열심히 해도, 노력을 하며 애를 써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똑같게만 느껴집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물만이 내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름 벌레에게 눈과 얼음을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름만이 전부인 줄 아니까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나서면 처음엔 힘들어도 차츰 몰랐던 세상을 알아 갑니다. 늘 보는 대로, 보이는 대로만 보았던 시각이 달라집니다.

다양한 면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어려움도 경험하며 느껴야 우물만이 전부라고 믿는 개구리 시각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우물도 중요한 자리이지만 우물 밖에는 드넓은 세상이 있음을, 그곳에 기회가 널려 있음을,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