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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18. 2020

다섯 마디

사랑해 행복해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엄마가 걸음마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워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얼른 무럭무럭 자라 잘 살았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나보다 더 소중한 내 아이. 이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말은 가장 많이 할까요?

'사랑해' '아이, 이뻐' 이런 말을 늘 해주며 안아줍니다. 근데 그보다 더 많이 쓰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은,

"안돼!"

뜨끔하신 분들 많으시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가 학교를 갑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요. 덩지는 점점 커지고 앳된 얼굴은 남아 있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다들 아시죠.

"공부해!"

내가 아이일 적에도 숱하게 들었던 말인데 지금은 나도 똑같이 하고 있네요. 유전일까요? 내 아이도 부모가 되면 아이의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가 기나긴 학업을 마치고 몇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신입사원이 되었어요. 우러러 보이는 직장 상사들. 혹시나 사고 칠까 봐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과 발로 뛰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실무는 하늘과 땅 차이죠. 바짝 군기가 든 신입 사원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넵! 알겠습니다."

근데요. 아마 열의 일곱여덟은 뭘 알았는지 모를 거예요.


콩깍지가 씐 연인이 있어요. 돌아서면 보고 싶고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전화를 해요. 애교를 잔뜩 넣으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기, 지금 어디야~"

연인이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같이 살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사는 게 만만치가 않죠.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 이 인간이 연락이 없네요. 전화기를 집어 듭니다. 같은 말인데 뉘앙스가 확 달라집니다.

"어디야! 지금!!"


공부해라, 공부해라 지겹게 이야기하던 부모님도 어느덧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세월을 거스를 재간이 없으니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요. 의사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주네요. 늙으신 부모님이 이럴 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은?

"늙으면 죽어야지."

자식들 부담 주기 싫은, 미안한 마음은 알겠는데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10년째 듣고 있잖아요.  


부모는 늘 자식이 걱정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식 하나 잘 되기를 오직 한마음으로 바랍니다. '공부해라'라는 말이 끝나면 '취직해라'라고 하죠. 취직만 되면 만사 오케이라 생각하지만 으레 다음 말이 이어집니다. '시집가라', '결혼해라'. 공부, 취직, 결혼. 들어도 너무 많이 들어 지겨워요. 학교 다니는 아이, 취준생 아들, 시집 안 가는 딸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만, 쫌!"


카톡을 할 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ㅇㅇ'

아니라고요? 요즘은 두 번도 귀찮아 'ㅇ'라고요?

거나 거나 거예요.  



세상에서 들을 때마다 짜릿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말은 '사랑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다 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말은 '행복해'

세상의 모든 미움을 사라지게 하는 말은 '미안해'

세상에서 서로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아주는 말은 '고마워'

세상에서 용기를 주고 위로하는 가장 좋은 말은 '괜찮아'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듣는 말들인데 진작 이 말을 하려니 왜 그리 머쓱한지 모르겠어요.

'사랑해'라고 할 것을 낯간지러워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이 말이 튀어나오고요.

'행복해'라고 하면 '나도 그래' 대신 '너만 행복하면 다냐' 하니 행복도 눈치를 봐야 하는가 봅니다.

'미안해' 용기 내어 말하면 '미안한 걸 왜 하고 난리야'라고 면박을 주니 괜히 사과했다 싶고

'고마워'라며 손 내밀면 '고마운 줄 알기나 하냐'라며 오히려 구박을 하네요.

'괜찮아'라고 다독거리면 '하나도 안 괜찮다'라며 괜히 심술도 부립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말하는 사람을 참 무안하게 하죠. 하지만 얼버무리는 말 안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나 역시 사랑하고 행복하고. 미안도 하죠. 그래도 고마우니 괜찮다는 걸 거예요.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너무나 좋은 말인 사랑해, 행복해,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괜찮아.

이 좋은 말 다섯 마디를 언제 어디나 누구든지 실컷 쓰며 사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하잖아요. 욕설, 비속어 대신에 지천에 널린 좋은 말을 주고받자고요.


태어나 살아보니 세상은 참 치열했습니다. 사는 게 지옥 같을 때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좋은 추억들도 꽤 많이 만들었습니다. 언제 어른이 되나 싶었던 아이가 어른을 지나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만약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다섯 마디를 대신할 말은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이 생애 함께여서 행복했다.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거니까

울지 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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