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어올 구멍은 바늘귀인데 돈 나갈 구멍은 터널입니다.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표현은 해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써왔지만 다들 작년부터 이번만큼은 진짜라며 걱정들을 많이 했습니다.
돈은 돌고 돈다 하여 돈이라고 하죠. 피가 돌지 않으면 동맥경화에 걸리듯이 돈이 안 돌면 돈맥경화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씨가 마르고 돈이 돌지 않습니다. 모두가 재난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라에서 재난 지원금을 여러 번 풀었습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가 확산되어 이젠 대세가 되었습니다.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하니 일종의 새로운 워라벨이라는 말을 갖다 붙입니다.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모이지를 않습니다. 모이고 싶어도 모임을 자제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질 않으니 자영업자들도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요. 근데 자영업자가 재택근무를 한다는 말은 일이 끊겼다는 소리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아버지의 일이 끊긴 집에서 모처럼 식구들이 둘러앉아 재난지원금으로 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합니다. 한동안 침울했던 집안 분위기가 활기를 찾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그릇에 뜨거운 고기를 후후 불어가며 얹어 줍니다.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던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니까 너무 좋아요~ 신나요~ 행복해요~"
바쁘게 고기를 굽던 아버지는 목이 매여 잠시 먼 데를 바라봅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힘겨운 보릿고개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다들 굶주림에 허덕일 때 이런 말로 버텼습니다.
'꽃 안 핀 2월 없고, 보리 안 팬 3월 없다'
때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잘 넘기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선조 때부터 외침만 해도 수없이 당한 나라입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요, 혁명도 여러 차례, 게다가 민주화 과정에선 힘없는 백성들의 희생도 엄청났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나라가 망하는 IMF도 겪었습니다.
살아가는데 속수무책은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까요.
여태껏 살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좌절하고 슬프고 괴로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도무지 답도 보이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늘을 보며 원망도 했지만 어떻게든 지나가기 마련이었습니다.
잔잔한 파도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못한 게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고요.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해결 방법은 있다는 뜻인 만큼 조금만 잘 버텨냈으면 합니다.
목이 매여 잠시 울컥했던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찾아듭니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세상이 다 즐겁습니다. 아이의 미소는 아버지의 힘이니까요.
아버지가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결의에 찬 한 마디를 합니다.
"그려, 인생 뭐 별거 있겠어? 고래 봤자 고기서 고기지. 얼른 많이 먹어~"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갑니다. 그리고 다 잘 될 테니 그때까지 잘 버티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