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처럼 뽀대 나게

<융통성이냐 고지식이냐 2 - 고지식 편>

by 공감의 기술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동백꽃이 필 무렵>의 한 장면입니다.

열정만 가득한 후배 경찰에게 파출소장이 진심을 담아 한바탕 쓴소리를 합니다.

"아이언맨과 헐크의 가장 큰 차이가 뭔 줄 알아? 유도리여, 유도리. 아이언맨은 유도리가 있으니께 슈트 빼입고 헐크는 그게 없응께 헐벗고 다니는겨."

화가 나면 미련하게 꾹꾹 눌러 참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있는 대로 성질만 내는 헐크는 괜히 옷만 사방팔방으로 찢어집니다. 멋대가리도 없이 맨날 벗은 채로 뛰어다닙니다. 아이언맨은 슈트를 쫙 빼입고 멋도 내며 폼도 잡는데 말입니다.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없이 잘 처리, 판단하는 재주나 능력을 융통성이라고 합니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를 보며 주위에서 이런 말을 날리곤 합니다.

"유도리 있게 좀 해라"

"뭔 사람이 이리 앞뒤로 꽉 막혔어?"

"진짜 고집불통, 고지식한 녀석!"

그럼에도 '그'는 오늘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힘겨운 사회생활을 이어갑니다.


사람은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각자 역할을 하며 사는 게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규칙을 지켜야 서로 믿고 의지하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규칙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은 다양한 심리가 있고 저마다의 생각도 다르니까요.

요즘은 융통성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 융통성은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융통성이 있고 없고에 따라 유형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막힘없이 처리하면 융통성이 높은 사람으로, 자신의 판단에 가치를 두고 그 외의 이면은 무시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고지식하다고 합니다.

사전적 의미의 '고지식하다'는 ‘성질이 외곬으로 돌아 융통성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외곬은 한 곳으로만 트인 길, 즉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르는 걸 융통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대하기가 매우 피곤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니까 분쟁이 일어나고 일처리도 어려울 때가 많으니 사회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주위에서 일처리가 막힘이 없으니 함께 지내기도 수월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쉽게 쉽게 넘어가니 분위기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매사에 융통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부실 공사, 알고 보면 안전불감증이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미연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뿐만 아니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정부패도 정도를 벗어난 융통성으로 생긴 결과입니다. 사전에 꼼꼼히 검토하고 원칙을 지켰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지나친 융통성 때문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뭐든 '빨리빨리'해서 남다른 성과를 내어야만 인정받고 대우받습니다. 그러니 융통성이 지나치다 못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아전인수 격인 사고가 만연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옳은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옳은 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기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합리화하고 무마하는 게 우리 사회의 민낯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우직함을 고수하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유도리 있게 살아가라고 합니다. 유도리를 발휘해서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라고 다그칩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융통성도 시키는 대로 발휘하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세상 일이 내 비위에 맞지 않고 원칙에 어긋나더라도, 내 화를 북돋운다 하더라도 성난 헐크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우락부락 대들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여유 있게 침착하게 이리저리 눈치도 보면서 때론 헤헤 웃어도 가며 융통성을 발휘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을 내 의지대로 관철시키면 좋겠습니다만 그러려면 일단은 좀 참으면서 성질부터 다스려야겠죠.

가끔은 시원하게 주먹 한 방 날렸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입니다.


정말 살다 보면 '아우', '젠장', '우이씨'하며 자신의 분을 못 이겨서 진짜 주먹 한방 날리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두 번은 있지 않나요?

하지만 그 주먹 날리고 난 다음 뒤처리를 감당하기가 무섭습니다. 주먹 한 대 잘못 날렸다가는 피할 수 없는 법의 심판도 겁이 나고요, 자칫 내 밥줄이라도 끊기면 어쩌나 생각하면 하는 수 없습니다. '욱'대신 '꾹' 참아야 할 수밖에요. 혼자서 생각해도 비굴합니다만 이러나저러나 못 치고 넘어갑니다. 그럴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유도리를 강조하는 파출소장에게 후배 경찰은 못 이긴 척하면서도 돌직구를 날립니다.

"아우, 유도리 아니고 융통성이여 융통성. 난 그래도 아이언맨보다 헐크가 훨씬 더 뽀대 난다고 생각해요"


답답하기 그지없는, 융통성이라는 없는 '그'가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들 눈치를 주면서도 슬슬 피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지만 내심 그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융통성만큼이나 원칙을 버리지 않는 그가 있어야 융통성과 고지식이 함께 멋진 균형을 이룰 거니까요.

오늘따라 고지식한 그가 헐크처럼 뽀대 나게 보이는 이유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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