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이냐 고지식이냐 1- 융통성 편>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학식은 뛰어났지만 체구가 왜소하고 용모도 추한 편이라 나이가 꽤 들 때까지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이 수줍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여자의 구혼을 받은 남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곤 '생각해 보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남자의 회답을 기다리던 여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남자는 결혼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결혼은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놓고 말이죠.
남자는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책을 찾고 여기저기 조언을 구합니다. 자료를 검토하고 분석한 끝에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와 결혼을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를 정리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가 4가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선 드디어 고백한 여자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여인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너무 늦었다네. 내 딸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라네. 자네에게 청혼한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네."
여성의 청혼을 받았지만 고민하고 연구하며 시간을 보낸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다름 아닌 1700년대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에마뉘엘 칸트였습니다.
칸트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반드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산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생활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빈틈없는 자세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융통성으로 보면 고지식하기 그지없습니다.
'융통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금전과 물품 등을 돌려쓰는 성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고지식한 사람은 원리원칙에 충실해서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반면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예외는 있기 마련이니 상황에 따라 처신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보면 집착과 강박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엄격하고 완고해서 완벽성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타인의 실수는 물론 자신의 실수도 용납 못합니다.
취미도 여가생활도 그리 즐기지 않고요, 고지식한 면이 많아 그런지 친구도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는 감정 표현도 거의 없어 보입니다.
계획성이 엄청 꼼꼼해서 마치 짜인 시간표대로 생활합니다. 같이 해야 할 일이라도 결국 혼자서 죽어라 하며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예술인들 가운데 이런 융통성이 결여된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한 분들이 꽤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영웅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라고요.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말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더군다나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요즘은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쓸모없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니 고지식한 틀에 얽매여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어떤 일이든 현실의 변화를 잘 살펴서 요령 있게 대처해야 위기를 사전에 피할 수 있으니까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종의 기원에 나오는 이 말은 변화와 적응에 관한 유명한 명언입니다.
삶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입니다. 매시간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예측 불가한 상황이 등장해서 싸우고 번성하고 성장하고, 때론 도태되고 퇴화되면서 세상은 발전해 왔으니까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융통성은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흔히들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속은 꿋꿋하고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 같은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외고집에 고지식할수록 위기가 닥치면 난감합니다. 원칙이 중요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은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원리원칙만 고집하다 융통성이 결여된 행동이 실패로 이어져 평생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걸 보며 아부나 아첨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겉으로는 웃을 수 있는 여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조직이나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합니다.
<진보와 빈곤>의 저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융통성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편견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마음을 열고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바람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항해하는 선장은 결코 항구에 들어가지 못하는 법이다."라고 말이죠.
강하게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꼿꼿하게 버티는 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커다란 바위는 휴지조각처럼 날아갑니다. 지상의 모든 걸 부러뜨릴 듯한 폭풍 같은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연약하다고 말하는 갈대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숙일 줄 알고 때론 바닥까지 엎드릴 줄 아는 갈대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팍팍 쓰러질 때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외유내강 비유로 갈대가 빠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드럽게 휘어졌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곧게 일어서는 갈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옛날에 갈대의 끝부분은 성경을 쓰는 펜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갈대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라는 신의 가르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칙도 규정도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고려하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이런 유연한 사고력인 융통성이 예측 불가한 환경에서도 세상을 한 걸음씩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바람에 부는 방향에 따라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갈대처럼 상황에 따라 구부릴 줄도 알고 상황에 맞게 펼 줄도 아는 융통성이 삶의 어떤 위기 순간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마음, 융통성이 더욱 절실한 요즘입니다. 외유내강처럼 말이죠.
다들 융통성을 발휘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