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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ug 31. 2021

올가을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주렁주렁 열렸으면

 화려한 말재주, 반듯한 몸가짐, 깔끔한 옷차림, 아낌없는 씀씀이.

 그래서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도 믿음이 절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속 사정은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걸 알고는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름의 끝자락인 요즘. 여기저기서 더위가 물러간다고 좋아하고, 곧 가을이 온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습니다.

 떠나가는 여름을 끝까지 지키려는 듯이 과일 가게 한 칸에는 아직까지 수박이 씩씩하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우스 재배로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제철에 먹는 과일 맛이 제일입니다. 


 여름 과일의 대명사인 수박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과일 중에서 성인 머리보다 큰 유일한 과일, 그러니 들기도 무겁고 자르기도 엄청 힘든 과일입니다. 그래서인지 꽃말은 '큰마음'이라고 합니다.

 단맛은 강한데 비해 당분 함량은 적고 수분 함량은 높아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제격이고, 다이어트에도 한몫하는 과일입니다.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수박을 고르기 전에 이것저것 톡톡 두드려봅니다만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습니다. 가게 사장님께 맛있는 수박을 골라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소리만으로는 수박이 얼마나 맛있을지는 알 수 없다면서 수박을 고르는 사장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두드려서 겉이 멀쩡한 거는 골라 드려도 속은 알 수가 없어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수박'과 관련된 속담 하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박 겉핥기'

 수박은 속에 있는 과육이 맛있는데 수박을 먹는다는 게 딱딱한 겉만 핥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면서 겉만 슬쩍 보아 넘긴다면 수박의 참맛을 알 수 없듯이 그 사물의 가치도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 


 '수박은 쪼개서 먹어봐야 안다'라고 합니다.

 수박을 쪼갰을 때 속의 빨간색이 '단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붉은색과 단맛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아직 색이 덜 들어서 속이 하얀 수박이라도 먹어보면 의외로 달고 시원한 수박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건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끼리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수박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은 어떤 일을 겉치레로 하거나 형식적으로 해서는 성과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수박 안이 잘 익었는지 설익었는지는 수박을 쪼개서 속을 봐야 알 수 있고, 그 사람을 알려면 함께 지내봐야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초록색 바탕이 진하고 검은 줄무늬도 선명한데 속을 보니 부실한 수박이 있기 마련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괜찮아 보이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우리 주변에 있지 않습니까? 


 사람 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활짝 웃고 있어도 그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SNS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많이 올라오고 매일 업데이트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화목하고, 함께 어울리는 표정이 즐거워 보입니다. 다들 예쁘게 보이는 사진들, 처음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근데 실제는 수많은 사진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가장 좋은 걸 올린 사진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멋진 사진 한 장을 올리려고 무수한 포즈를 취하고 한 장소에서 수십 장을 찍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슬픔을 겪고 고통을 안고 세상의 온갖 짐을 다 짊어진다는 생각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니까요. 


  '수박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생존을 하려면 환경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생활하며 형성한 문화 역시도 환경의 일부분입니다. 그렇게 형성한 집단 내에서 인간은 자신과 공통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타인들과 어울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수박 효과란 생존이라는 절대 원칙하에 자신이 기대어 살아갈 환경을 선택한다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평소 인격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는 위선자 같은 행태를 보이면 크게 실망하곤 합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이 알고 보면 모두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저마다의 선택이 있는 게 당연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해서 나와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수박에 칼을 꽂으면 반으로 쩍 갈라진 수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보기 싫을 땐 수박 효과를 생각하며 신경을 끕니다. 더 이상 그와 얽혀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합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를 이해하거나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명심합니다.  




 요즘 많이 쓰는 줄임말 중에 '될놈될 안될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뜻입니다. 잘 되는 집안은 하는 일마다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표현에 수박이 한몫합니다.

 '되는 집안에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

 가지 나무에도 수박이 열릴 정도니 얼마나 잘 나가는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들리는 소식은 마음을 착잡하고 무겁게 합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사는 게 재미없고 의욕도 꺾이는 요즘입니다.

 되는 집에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는 데 내 인생에는 언제쯤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릴까요? 그저 심은 대로 가지라도 많이 열렸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여름 끝자락에 선 수박을 쳐다보며 8월을 마무리합니다.

 올가을엔 모두의 나무에 사람 머리보다 더 큰 수박들이 주렁주렁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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