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냉장고와 행동하는 양심

by 공감의 기술

인적이 드문 어두컴컴한 늦은 시각,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몰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깊은 밤이라 다니는 차는 드물고, 횡단보도에 길을 건너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지나가는 차들은 정지 신호가 켜져 있어도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추는 듯하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대다수의 차량은 횡단보도 자체를 아예 무시하고 달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신호를 지키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다들 짐을 싸고 정리하려는 그 순간 당시 국민차라고 불린 티코 한 대가 정지 신호에 따라 정지선에 맞춰 섰습니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인 파란불이 깜빡깜빡 꺼지는데도 차는 미리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다리다 지친 촬영팀은 그 모습을 보고 감격해서 달려갔습니다.


이 시대의 양심인이 누군지 확인을 하려고 차 문을 두드렸습니다. 창문이 내려간 차에는 장애인 부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흥분한 진행자가 어이없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신호를 왜 지키셨습니까?"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호를 지킨 차량이 나타난 게 너무나 신기할 정도였으니 그 질문이 당연하게 들렸습니다.

장애인 운전자는 더듬더듬 거리며 말한 대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말문을 막히게 했습니다.

"저.. 는.. 늘… 지… 켜… 요"


90년대 모 프로그램에서 방영했던 양심적인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한 양심냉장고 1회 방송이었습니다. 누가 진짜 장애인인지 파장을 일으키며 양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던 이 프로그램은 대히트를 쳤고, 지극히 당연한 이 장면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양심(良心),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합니다.

'양심도 없는 게 인간이냐'라며 '양심적으로 살자'라며 큰소리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양심들을 잘 지키고 있을까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붙은 팻말 앞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잔뜩 쌓여 팻말마저도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습니다.

빨간불이 켜져 있는데도 오가는 차량이 없으면 거리낌 없이 길을 건너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신호를 잘 지키는 본보기를 보여야 할 어른들이 말입니다.

고속도로는 갓길뿐만 아니라 도로 주변에도 오가며 버린 쓰레기로 언제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도로 표지판 대신 쓰레기 투척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반려견이 산책로 한복판에 대소변을 해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

과자를 뜯다가 껍질이 잘못 벗겨져 길바닥에 과자가 떨어져도 줍지 않은 사람들.

길을 걸어가면서 아무 데나 침을 뱉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피우는 담배는 보기 좋지 않은데 담배꽁초도 휙 던지고 가는 사람들.

주인이 없는 무인점포에 끊이지 않는 절도 사건.

이 모두는 보는 이들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양심과 관련된, 양심이 없는 행동들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3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건강, 빚이 없는 것, 그리고 깨끗한 양심.

건강은 기본이자 당연한 행복의 조건입니다.

빚이 없는 것이 행복의 조건에 들어가는 걸 보니 행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긴 입에 풀칠하기 급급하면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을 테니까요.

그리곤 깨끗한 양심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하고 빚이 없고 양심이 깨끗하면 어디에서든 비굴하지 않으니까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양심을 마음속의 삼각형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면 이 삼각형이 돌아가게 되고 그 삼각형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하면 잠도 못 자고 마음도 편하지 않은가 봅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삼각형이 계속 돌아가다 보면 모서리가 점점 무뎌지고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양심이 없어 수치심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양심은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노스님이 하루는 동자승들에게 사과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변변한 간식이 없는 사찰 생활에 사과는 별미입니다. 동자승들이 사과를 받으며 언제 먹을까 눈치를 보는데 노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단 이 사과를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해지기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자승들은 어디론가 흩어졌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으로 말이죠. 어른 스님들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개울가로 뛰어가는 동자승도 있고요, 성질 급한 동자승은 해우소에 들어갑니다.

누가 볼까 봐 주위를 살피며 저마다 사과를 맛있게 먹고 돌아왔습니다. 근데 날이 저물었건만 한 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멀리 갔다 행여 길이라도 잃지 않았을까 걱정되던 그 동자승은 마당 한구석에서 사과를 든 채 울고만 있었습니다.

"엉엉. 아무도 안 보는 데가 없어서 사과를 못 먹었어요. 해가 숨으면 구름이 나오고, 해가 지니까 달이 뜨고. 암만 숨어도 새들이 보고 있고 나무가 지켜보잖아요. 엉엉"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라는 유명 정치인의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선한 뜻을 품은 양심이 있다고 해도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 나가고자 하는 정신, 그게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합니다.




양심냉장고를 지켜보던 당시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타난 양심 운전자가 너무나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뿌듯하기도 했고요. 아직 우리 사회는 양심을 지키는 이가 있어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당연히 지켜야 할 양심인데, 보는 사람 없다고 무시하고 사는 우리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당시 정지선을 지킨 양심적인 사람에게 왜 큰 냉장고를 선물로 주었을까요?

TV도 있고 컴퓨터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시절에도 이미 가정마다 냉장고는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냉장고, 그것도 큰 냉장고를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냉장고는 음식을 채워 넣는 곳입니다. 그렇듯 우리 마음에도 양심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기왕 채울 거면 적게 말고 크게 많이 채우라는 뜻으로 큰 냉장고를 선물로 준 거고요. 양심 냉장고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한 거라고 합니다.


백 일간 금주를 하겠다는 큰소리 뻥뻥 친 녀석이 있었습니다. 이제 1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이 친구는 술을 마셨을까요? 마시지 않았을까요? 평소 하는 행실로 볼 때는 마셨을 것 같은데 안 마셨다고 하니 일단은 녀석의 양심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술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보고 있을 거니까요.


친구의 마음속에 행동하는 양심이 남아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울러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고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 냉장고에도 행동하는 양심이 가득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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