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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Sep 30. 2021

환절기와 계절 앓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눈을 뜨니 창밖에 눈이 펑펑 내립니다. 얼른 일어나 하얗게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신기하면서도 참 좋습니다. 겨울만이 가지는 멋진 세상입니다. 


 살짝 찬바람에 옷깃을 나풀거리며 움츠렸던 어깨도 조금씩 폅니다. 따스한 햇살에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내리고 나무들은 기지개를 켭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배경으로 한껏 여유를 부리며 옆 사람과 수다를 떨며 걷습니다. 봄을 알리는 풍경입니다. 


 시원한 물속에서 더 시원하게 입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수영장 위를 둥둥 떠다니며 일광욕도 즐깁니다. 여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물놀이, 여름에만 즐기는 놀이입니다. 


 세상은 점점 빨갛게 물들어갑니다.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시인이 되어보고요,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책 속에 빠지고 사색하고 싶어지는 이 시간, 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하얗게 눈이 세상을 뒤덮었다가 이불 같은 포근한 햇살이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꽃망울들이 톡 하고 꽃을 터뜨립니다. 연한 초록이 점점 짙은 실록이 되고 시원한 빗줄기가 대지를 적십니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그늘이 되어준 나무는 어느새 빨간 단풍으로 우리를 또 한 번 즐겁게 합니다.

 일 년에 4번씩 변함없는 4계절, 봄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와 이번 주, 고작 1주일 차이인데 그새 나무들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게 아침저녁으로 다르게 보입니다. 지난주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하늘을 향해 울창한 나뭇잎들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주는 나무들이 겨울날 채비를 하느라 하나둘씩 비우기 시작합니다.

 내일이면 10월, 희미해진 여름 끝자락을 대신하는 선명한 가을 하늘은 이제 계절이 바뀌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이나 사물에만 성격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계절도 성격이 있습니다. 그 성격이 바뀌는 시기를 환절기 또는 간절기라고 부릅니다.

 계절은 4번 바뀌지만 성격은 딱 두 번 바뀝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2-3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지금 이 시기입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5-6월이나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11월-12월은 하루 종일 덥고 추운 성격이 별반 차이 없이 그대로이니까요. 


 어제는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쌀쌀합니다. 손으로 양팔을 싹싹 비비며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갈 만큼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큰 폭으로 변합니다. 낮에는 한여름 같은 기온을 보이다가 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기, 그래서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옷차림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비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환절기가 되면 몸이 알아서 알려줍니다. 큰 일교차에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10도 이상 차이 나는 기온에 우리 몸이 적응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쉽게 피곤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몰려옵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에 책만 들면 잠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특히나 운전할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큰 일교차를 보이는 가을의 날씨만큼이나 감정의 온도 차이를 보이는 마음의 간절기이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아쉽습니다. 한 해도 이제 3/4을 보낸 지점, 2021년 올해도 이제 3달 남았습니다. 9월은 추석 연휴로 언제 갔는지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10월은 휴일이 더 많아서, 11월은 괜히 짧게 느껴져서, 12월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송년 모임 하다가 남은 날들이 휙휙 사라질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괜한 고민이 시작되고 쓸데없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올 한 해는 내가 뭘 했나' 싱숭생숭해집니다. '올해도 역시 별로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또 먹는구나' 싶으면 기분도 어수선해집니다. 한두 해 겪은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오버 깃을 세우며 센티멘털해지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인생무상을 소환해 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 가을을 붙잡고 싶고, 하루가 다르게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면 눈물도 흘리고 싶어 집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지금 이 가을이 너무 아깝고 나중에 엄청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환절기, 우리 몸이 감기에 걸려 몸살 앓이를 하듯이 마음도 따라 겪는 계절 앓이, 어떻게 어르고 달래주면 좋을까요? 

 나무는 열매를 맺고 단풍을 뿌립니다. 올 한 해 열심히 달려온 나무들은 이제 지난날을 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비웁니다. 잘 맺은 열매도, 맺지 못한 열매도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비울 때 비울 줄 알아야 성장을 하고, 다음에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계절 앓이를 하는 우리 역시도 후회스러운 마음보다는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다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는 아직 1/4이나 남아 있습니다. 습관을 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 남짓이면 된다고 하니까 올해 들이고 싶었던 습관은 지금 시도해도 늦지 않습니다.  




 독일 속담에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Ende gut alles gut)'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임도 끝이 좋아야 기분 좋은 모임으로 기억됩니다. 대인관계도 끝이 좋아야 뒤끝 없이 다음에 또 보고 싶은 여운이 남습니다. 여행도 끝이 좋아야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모든 일에는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습니다. 남은 석 달, 아름답게 끝을 맺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시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계절 앓이, 시인이 된 느낌이고요, 아티스트가 된 기분도 듭니다.

 이런저런 사색을 많이 하게 되는 환절기의 계절 앓이, 이왕이면 밝고 즐거운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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