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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Aug 31. 2020

아픈 이유를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직장에 다녀서 아팠던 걸까



지난 7월 중순에 건강 검진을 하고 나서 몸의 어떤 부분이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지를 받았다. 전문 병원을 알아보다가 집 근처에서 가까운 곳에 예약을 했다. 업무를 하면서 중간에 잠깐 다녀올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집 근처로 예약하고 오후 반차를 쓰기로 했다. 병원에 가야 해서 연차를 쓴다고 하니 팀장님은 어디가 아픈 거냐며 걱정하는 말투로 물어보셨다. 그냥 건강 검진 결과에서 추가 검사가 나와서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덤덤히 말했다.



솔직히 내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아무리 내가 로봇처럼 직장에 출근을 한다고 한들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면서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자연스레 습관처럼 일을 시작하는 내가 대견하면서도 미웠다. 인간은 살면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것이 당연한 거라는데 조직에서 감정은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나는 직장에서는 무던한 사람이 오래간다 그 말을 듣고 감정을 빼고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이제는 습관처럼 그러고 있는 내가 나를 보는 것이 마음에 들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병원은 예약이 3시 30분으로 애매했기 때문에 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 들렀다. 최근 리모델링을 해서 보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노션에 기록하면서 책을 조금씩 훑고, 신간 표지들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서점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두서없는 생각 속에 어지러웠지만 좋아하는 공간에 있던 그 시간은 잠시나마 즐거웠다. 좋아하는 서점을 나와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 때 나는 좋은 걸 좋다고 하고, 싫은 걸 싫다고 했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느끼던 나를 잃어버려서 이렇게 됐나? 사회에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오늘 진료를 받으러 가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했던 초음파 검사를 또 받았다. 건강 검진에서 애매해서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오늘 나를 진료해준 의사 선생님도 똑같이 말했다. 지금 이 초음파 검사로는 판별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최대한 자세하게 보겠지만, 이 검사로는 결과를 낼 수 없으니 3차 병원으로 예약을 해주겠다. 그곳에 가서 자세하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초음파 검사를 받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그 병원에는 천장에 내 초음파 촬영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모니터가 부착되어있었다. 실시간으로 내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하면서 다양한 부위를 바쁘게 체크했다. 긴 타원형 모양, 희미한 모양... 체크하는 게 많아서 나중엔 몇 개를 체크하는 건지 수를 세다가 잊어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검진을 하면서 보조 선생님에게 나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라고 말씀하셨고, 그 선생님은 에이포 용지에 있는 글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읽어줬다. 하지만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문제가 있다 정도만 파악한 정도였다.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면서도 들리는 말들은 이내 허공에 흩뿌려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대략 이해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어려워서 아마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눈으로는 문제가 있는 부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고,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부위를 눌러서 아프거니와,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3차 병원에 가야 하고, 나의 문제를 말해줘도 난 이 모든 상황들이 다 의아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했을까 하는 원인을 찾고 싶었다. 누군가 있다면 대신 그를 탓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원망하거나 책망할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 회사 생활 열심히 하겠다고, 아득바득 다녔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억울한 일 있고 속상한 일 있어도 참았던 내가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런 걸 얻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닌 건 회사밖에 없고 열심히 한 건 회사 일이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누워있는 나를 검사하기 전에 ‘젊은 사람이 뭐 하다가 이렇게 많이 생겼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평소 같으면 흘려 넘겼을 책의 인트로 같은 말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병원을 나와 집에 돌아갈 때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이 났다. 나는 무얼 하다 이걸 얻었나. 나를 원망하게 되는 과정이 될 것 같아 모른 척했다.



누군가 내게 왜?라는 의문을 세상에 달고 살면 삶이 때로는 난처해지고 피곤해진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게 이런 걸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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