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미개한가? 위대한가?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by 박지아피디


여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미녀가 아니라 추녀가 있다. 모든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그녀를 회피한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일을 성실히 해도 언제나 중앙에 설 수 없다. 밀려나고 밀려난다. 그녀 자신도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1등 하는 수려한 외모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추녀인 그녀를 놀려대는 사람들에게 증오와 환멸을 느낀다. 남자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유가 동정이든 연민이든 애정이든 상관없다. 그녀의 보호막이 돼주기로 한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영웅심은 결코 아니었다. 내면의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외모든 성격이든 가정환경이 이유든 그 둘은 어둠을 걸어 다니는 외로운 청춘들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호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 인생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사랑을 받지 못해 본 사람은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아예 모른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DNA인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손에 쥔 돈과 능력만으로 인간을 계급화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남을 부러워하는 인식체계는 애초에 누가 만든 것일까? 누가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사나이였을까? 우리 모두는 그 피리소리를 의심 없이 따라가 물에 빠져버리는 쥐떼들인가?


사내를 낳지 못한다고 여자를 죽이고 신앙이 다르다고 전쟁을 일으키고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을 하는 인간은 결국 정신적으로 우주에서 가장 미개한 종족이 아닐까? 무엇이 소중하고 어떤 가치관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누군가 원시적으로 정해놓은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답습하고 있는 우리는 진정 문명인인가?


손에 손에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고 비행기로 하루 만에 지구를 오간 들 우리가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몇몇의 위대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목놓은 외침들은 소귀에 경읽기로 스쳐버리고 사랑을 사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계산과 이익으로만 따지는 것이 우리 인간일진대 우리는 미개한 것이 아닐까?


박민규 소설가는 아내가 한 한마디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제가 예쁘지 않아도 저를 사랑해 주실 건가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 두꺼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인간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경외한다고도 쓰여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하지만 추한 것을 죄악시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개발된 사회적인 인습이다.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요즘 나도 모든 가치관과 답습된 인식에 의심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어떤 생각이 조금이라도 정신적으로 부담된다면 다 의심해보고 따져본다. 글을 쓰거나 소설들을 꼼꼼히 읽어보기 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쥐새끼 한 마리에 불과했다. 이제는 내 피리는 내가 불겠다.

미개하다는 느낌이 드는 생각들을 뒤져보고 뒤집어 버리겠다. 이러한 반성과 자각이 존재하는 한 미개한 인간들도 위대해질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이 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