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라이프 빌런의 도구가 되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랑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이효리 님의 통찰이 담긴 말이 참 좋았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에 좋은 놈 나쁜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쩌다 보니 복잡하게 꼬인 상황 속에서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겼을 뿐이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엔 진짜 나쁜 놈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가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잖아요. 경험의 확장을 위해서요. 내가 보고 겪지 못한 세계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개채들이 바로 뛰어난 작품들이에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현실에 존재하듯, 의도적으로 타인의 평판을 공격하고 자신의 피붙이마저 심리적으로 해치는 사람들이 현실 속에 있지만 미세한 심리전에 능한 빌런들을 겪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진짜 나쁜 점은 말이에요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한다는 거예요. 밖에서는 사랑과 봉사의 아이콘이면서도 자식에게 또는 절대 반격하지 못할 사람만 골라서 꾸준히 괴롭힙니다.
괴롭힌다는 말의 의미는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가족이나 지인들을 도구처럼 사용할 때, 그 도구가 상처를 입든 말든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동원한다는 뜻이에요. 때로는 자신의 삶이 무료하면 가만히 있는 또는 본인의 삶에 충실한 옆사람에게 싸움을 걸기도 하고요.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그러겠냐.', '너가 예민한 거 아닐까.',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 '사람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다.'라는 말을 떠올리시는 당신은 리얼라이프 빌런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싸움을 걸거나, 내가 무언가 성과를 냈을 때 분란을 일으킵니다. 아주 작은 수동형 공격을 계속하거나요. 옷을 젖게 하는 건 가랑비라는 말이 있잖아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격인데 빌런은 사랑해서 그런 거래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크리스마스 파티를 매년 해오던 가족 전통에 따라서 한 달 전부터 가족들 이름을 새긴 수건도 선물로 준비하고, 음식 장만에 파티 준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임신 초기라 물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고 구토가 올라왔습니다. 정중하게 입덧이 심하고 수돗물 냄새에도 토를 해서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못 갈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빌런이 다른 가족을 통해 저에게 전달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포장지와 리본이 뜯겨 있었습니다. 전달 과정에서 뜯어졌겠거니 하고 열었더니 방향제가 들어있더라고요. 입덧이 심하다는 말을 잘 모르셨나 보다 생각하려는데, 디퓨저 스틱이 부러져있고 뜯은 흔적이 있는 겁니다.
괜히 오해하는 것보다는 직접 묻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외부 포장재가 뜯겨 있어서 선물을 구입하신 곳에서 교환해야 할 것 같다고 문자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빌런은 저에게 "내가 임신부를 공격이라도 한다는 거냐"라고 하더라고요. "임신부 공격이라는 말씀은 드린 적 없어요. 하지만 제가 물냄새만 맡아도 토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방향제를 주신 점은 서운하긴 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빌런의 패턴에 초반부터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선물을 줬으면 감사히 받아야지 무례하다면서 갑자기 펄펄 뛰기 시작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새 거를 사서 준 건데 왜 문제를 삼느냐는 말을 하면서요. 그래서 다시 정중하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제품에 하자가 있으니 물건을 판매한 측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거."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말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두 달 전에 구입해 둔 거라서 영수증은 없지만, 해당 가게는 단골집이라 00 사모님이라고 하면 영수증 없이 교환해 줄 거라고요. 빌런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데 도사입니다. 그리고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편집한 후 주변사람에게 이야기해 문제제기 한 저를 이상하게 만들어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남에게 받은 걸 선물로 줬다'라고 한다고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니더라고요. 저는 남에게 받은 건지, 빌런 본인이 산 건지는 관심도 없고 밝혀낼 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외부 포장이 뜯기고 디퓨저 스틱이 부러져있는 것은 분명 가게 측의 과실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걸까요.
잠시 뒤 갑자기 빌런의 딸이 디퓨저를 산 가게에 가서 두 달 전 구매내역을 저에게 사진 찍어 보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남에게 받은 거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저는 빌런에게 영수증을 요청한 적도 없고, 남에게 받은 것을 줬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이미 모두에게 "남에게 받은 것을 준거냐"라고 말한 사람이 돼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빌런은 평소에 딸 욕을 시도 때도 없이, 저를 비롯해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답니다. 당신 딸인데도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든다면서 딸의 민감한 비밀까지 다 이야기하고 다녀요. 자녀들끼리는 경쟁을 시키고요. 자식의 뒤에서는 딸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앞에서는 자존감을 깎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요. 그래도 딸은 엄마의 명예를 지키려 군인처럼 주변사람을 엄마 말 한마디에 공격한답니다.
저에게 얼굴이 벌게져서 우리 엄마는 남에게 받은 거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딸에게 어머니의 실체를 평생 말할 수 없겠지만, 딸이나 저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에 시간과 감정을 쓰게 됐을까.
어른이 주신 선물을 감사하게 받고, 하자가 있더라도 넘어갔으면 될 걸, 괜히 이야기 한 제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빌런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누군가 당신에게 이야기한다면 분명 사소한 일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이 들게 된 이유와 과정이 있답니다.
빌런은 평소에도 자신은 새것을 먹고, 저에게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과 화장품을 줍니다. 친분이 없던 상황에도 경계 없이 저에게 불편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요. 저랑 처음 만난 자리였는데 빌런은 자신의 남편, 자녀, 시어머니, 가족들의 욕을 두 시간 내내 늘어놨습니다. 몇 번 주제를 바꿔보려고 시도하다 그냥 빌런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생각해서였어요. 빌런의 남편 밑에서 제가 일하던 상황이라 마음 편히 자리를 일어나 버릴 수도 없었답니다.
빌런은 방향제 포장을 절대 뜯은 적이 없다고 하지만, 외부 포장지와 리본, 내부의 디퓨저 스틱을 넣는 봉지까지 뜯어져 있었습니다. 빌런은 상식 밖의 행동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요. 선물을 전달받는 순간부터 비디오로 녹화하지 않는 이상은 포장지와 내부 물건까지 손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죠.
아주 세세하게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서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않는 이상은 빌런의 행동에 어떤 점이 문제인지, 왜 제가 화가 났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죠. 아무것도 아닌 일을 정리하고 앉아있는 것은 시간낭비에다가 에너지 낭비죠. 주변에서 이 일을 빌런에게 듣고 저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정확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빌런이 그동안 몇 번이나 이런 작은 일들을 수시로 일으켰는지 붙잡고 설명할 기회도 없고, 증명할 길도 없죠. 저는 그저 어르신이 준 선물이 새 거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싹수없는 사람이 되어있을 뿐입니다.
빌런은 포기를 모르기도 한답니다.
빌런이 임신한 저에게 배가 잘 드러나는 임부복을 사주고 싶다면서 연락을 했어요. 당시 온몸에 두드러기와 발진이 나서 면 옷밖에 입지를 못하고 딱 붙는 옷은 불편해서 헐렁하게 입는다고 말했습니다.
친절하고 정중히 거절했어요. 빌런이 병원 가서 약 바르면 되지 왜 가만히 있냐고 해서, 피부과 갔었는데 임산부가 특히 임신 초기에는 쓸 수 있는 피부과 연고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피부과 선생님 처방에 따라 면으로 된 통풍이 잘 되는 옷만 입고 보습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가족모임 때, 빌런이 갑자기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저에게 옷을 내밀더라고요. 몸에 딱 붙는 니트 재질의 임부복이었답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는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빌런이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나를 좋아하나 싶지만 사실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거였더라고요. 사랑, 선물, 칭찬 등 행복의 요소마저 악한 의도로 사용하며 수시로 여러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통에 이게 무슨 일인가 파악하기도 힘들어져요. 그동안 내 마음은 상하고 빌런이 퍼뜨린 거짓말에 내 평판이 망가지고요.
자동으로 그 후의 상황이 시뮬레이션이 돼서요. 제가 피부 발진이 있고 딱 붙는 옷은 불편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냐고 하는 순간 가족들의 시선은 저에게 쏠리겠죠. 어르신이 주시는 선물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될 거고요. 환한 웃음으로 딱 붙는 니트 임부복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 손에 쥐어주던 빌런의 표정을 지워버리려고 임신초기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결국은 빌런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주변 사람은 거기에 따르고 익숙해지는 일만 남은 거죠. 빌런은 보통 사람들과 다릅니다. 보통 선물은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며 준비하고 주잖아요? 빌런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상대방을 자신 뜻대로 따르게 하려고 선물을 준답니다. 아니면 쓰다 남은 것, 오래된 것, 먹다 남은 것, 자신이 쓰지 않는 것들을 줘버리는 것을 '선물을 준다'라고 해요.
반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명품, 산에서 캔 산삼 등 비싸고 귀한 것들을 정성스레 준답니다. 아랫사람이나 자신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만한 것들을 선물로 포장해 거부권을 없애버리는 갑질을 하는 거죠.
가족끼리 있는 자리에서 cctv 설치나 24시간 녹음을 상상하게 만들 만큼, 별 거 아닌 일로 서로가 진실공방을 하게 만드는 게 빌런의 능력입니다. 저도 다른 가족이나 지인에게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화가 안 났을 것 같아요.
임신 중이었지만 방향제, 향초, 핸드크림 등 여러 선물이 크리스마스 때 들어왔고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거든요. 빌런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입덧이 심해 물냄새만 맡아도 토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지금은 향이 강해 못 써도 임신 끝나고 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빌런의 행동은 일상의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마치 땅콩 알러지가 있다는 사람에게 먹다 남은 땅콩을 대충 포장해서 던지며 너를 사랑해서 주는 선물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빌런의 행동에 악의가 있음을 인식한 후부터는 당하는 이에게 지옥이 시작됩니다.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빌런은 길길이 날뛰며 그런 적 없다, 기억 안 난다는 말만을 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동원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렇다면 당하는 저만 침묵을 지키면 주변 모두가 행복하겠죠. 게다가 빌런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저런 식의 일들을 반복했음까지 모두 설명해야지만 당하는 저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킬 수가 있게 되거든요. 신문과 뉴스에서 보도하듯이 딱 한 장면만 봐도 이 사람이 악의가 있고 못된 사람이구나 알 수 있을만한 극적인 행동은 또 자주 하지를 않아요. 심지어 정말 못된 행동이나 말은 단 둘이 있을 때만 한답니다.
빌런이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것을 인지하면서부터는 의도적인 행동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한 번이면 실수, 두 번이면 의도적인 것, 세 번째부터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디퓨저 사건 전에도, 병원에서 임신 초기에는 특히 날 음식을 조심하라고 해서 회를 못 먹는다고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초밥집에서 가족 식사가 있었는데, 저는 메뉴를 따로 달라고 해서 맑은 지리탕을 먹었었죠.
그때도 옛날에는 임신해도 회 다 먹었는데 요즘 애들은 유난이라고 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괜찮은 정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런이 자기 집에 저희 부부를 초대했을 때의 일입니다. 메뉴는 두 가지였는데, 생선회와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였습니다.
다행히 그때도 입덧이 심해 음식을 거의 못 먹었고 죽을 싸갔어서 제가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민망한 상황은 피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임신 후 제가 작은 향에도 토해서 힘들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빌런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것도 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빌런은 소통이 단절된 구조, 보통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별 일 아닌 일을 그것도 거짓말로 퍼뜨리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합니다. 사랑하는 자녀에 대해서 누가 거짓말로 평판을 망가뜨릴만한 말을 하고 다니겠나 생각을 하잖아요.
자, 3만 원하는 방향제 하나로 저는 아주 여러 사람에게 예의 없고 이상한 사람이 됐습니다. 심지어 아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가 생각하게 됩니다. 원치 않는 임부복을 줬을 때는 잘 참고 넘어간 저를 칭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선물을 받고 그냥 넘어갔다면 저는 속앓이를 했겠죠. 아니면 아 원래 기대할 것 없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전에는 이런 일을 겪으면 아무 말 없이 넘어가기 힘들죠.
일상을 파괴하고 좀먹는 건 큰 일들이 아니더라고요. 나와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 물리적인 거리를 두기 어려운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가족의 행복을 바라고, 싸울 일이 생겨도 싸움이 없어지도록 노력을 하잖아요. 빌런은 평온한 상태를 참지 못합니다. 오히려 분쟁이 생겨서 상대의 기분이 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을 욕할 거리가 생기는 상황을 즐깁니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답니다.
나를 공격한 사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또 다른 거리로 내 속을 긁기 시작합니다. 나는 시간대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적고, 문자 등을 남기며 증거를 정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당하는 사람이 원인을 제공했거나, 뭔가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오산입니다.
에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라는 생각 저도 예전에는 했습니다. 현실에서 빌런을 마주치기 전에는요.
빌런은 자신의 아들에게 큰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 회사돈을 아들의 이름까지 빌려 몰래 썼습니다. 그걸 알게 된 아들은 당분간 어머니의 연락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서른이 넘은 아들은 독립해 따로 살고 있습니다.
빌런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남편과 딸에게 아침 눈 뜨자마자부터 하소연을 하고, 전후 사정은 뺀 채 아들이 본인을 안 만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울기까지 하면서요. 착한 아들은 어머니의 치부를 감춰주려 주변 사람 아무에게도 심지어 아버지와 여동생에게도 빌런의 거짓말을 알리지 않습니다.
빌런은 이 점을 역이용하죠.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심지어 그 잘못을 덮어주려는 아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빌런은 시도 때도 없습니다. 심지어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해 엄마인데 아들이 연락이 안 된다며 운동화를 샀는데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아들을 바꿔달라고 하죠. 이미 회사돈은 다 써버린 상태고, 거짓말까지 한 어머니와 당분간 거리가 필요한 아들은 회사까지 전화를 걸은 엄마에게 화가 나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회사사람은 전화를 연결해 주고, 아들이 그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걸 보면서 '와, 엄마가 운동화까지 준비해 놓으셨는데 너무하네.'라고 생각하겠죠. 속사정을 전혀 모르니까요.
저렇게 큰 잘못을 하고도 회사까지 전화해서 바꿔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상상을 못 하니까요. 이제 빌런은 다시 남편에게 전화해 아들이 내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린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장실로 호출해요.
아들은 아버지의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사장님과 직원사이죠. 다짜고짜 소리를 지릅니다. "너는 어떻게 엄마 전화도 안 받냐."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회삿돈을 썼고 거짓말도 했거든요. 어떻게든 그 잘못을 아버지 모르게 덮은 건 아들인데 말입니다.
아주 환장할 노릇이죠. 원래 이 정도 사이클에서 아들은 못 이기는 척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치가 떨어질 때 됐으니 김치를 집에 가져다준다던지, 너에게 어울리는 운동화를 샀다던지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평생 반복됐다고 합니다. 빌런은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렸고, 주변 사람들만 돌아버리는 거죠. 사실 이미 돈은 다 써버렸고, 아들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상황을 잘 커버했고 심지어 저 잘못을 주변에 알리지 않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들만 아버지와 회사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무시하는 못된 사람이 된 거죠? 어머니 연락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아들은 아버지가 윽박을 지르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면 해고해 버린다는 협박까지 하지만 여전히 빌런에게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회사로 어머니 동생의 아내 즉 숙모가 찾아옵니다. 갑자기 지나가다 치킨을 샀는데 치킨 좋아하는 네가 생각났다면서요. 그러면서 사장님, 즉 아버지에게 인사를 좀 드린다고 같이 치킨을 먹자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의미 없는 안부를 주고받다가 아들에게 "그래도 어머니 전화는 받아야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분명 빌런이 미주알고주알 자기 잘못은 빼고 아들이 연락을 안 받는다며 하소연을 한 거죠. 어머니의 남동생은 사업이 어려울 때 빌런에게 크게 경제적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물론 빌런이 순순히 돈을 빌려준 건 아니지만, 빌런 남동생의 가족은 빌런의 수족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화가 난 아들은 치킨을 먹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나가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죠. 예의도 없고, 어떻게 어머니 전화를 안 받을 수 있냐고요.
그리고 몇 분 후, 아들은 어머니에게 문자를 받습니다.
유튜브 링크네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족에게서 연을 끊어라>는 강연이요. 본인이 남편에게 반감이 있음을 드러내는 영상을 공유하면 빌런이 남편에게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소연한 사실을 아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가족끼리 본인 때문에 싸우도록 만들어놓고 뒤에서는 아들한테는 아버지가 가부장적이니 연을 끊으라는 건지. 왜 이런 링크를 보냈는지 빌런에게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빌런의 하소연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빌런의 전화를 받으라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빌런은 상황을 모르는 자신의 친구들이나 교회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남편에게 하소연한 사실, 자신이 아들에게 거짓말에서 아들이 화가 난 상황은 쏙 빼고 아들은 전화를 안 받고, 남편은 너무 가부장적으로 자녀들에게 강요해서 자녀들이 본인 부부를 멀리한다고 말합니다.
빌런에게 아들이 문자라도 한 통 보내기 전까지 빌런의 남편, 딸, 숙모, 조카 심지어 빌런이 거액의 헌금을 헌납한 교회 목사님과 빌런이 철마다 수백만 원씩 팔아주는 옷가게 사장님까지 아들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거나 찾아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아들이 전화를 안 받으면 갑자기 사무실 앞으로 찾아와서 신발 상자와 돈 봉투를 놓고 갑니다. 아들은 의사를 존중받지 못했고, 거부할 권리가 없어지는 거죠.
같은 시간대에 전혀 다른 얼굴로 정반대의 행동을 여러 사람에게 하면서 아들의 삶의 경계를 마구 침범하는 게 현실 빌런입니다.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이 회사로 전화해서 아들을 찾고, 회사 앞으로 버젓이 찾아와 아들에게 선물을 주고 갈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 하잖아요. 그리고 본인의 잘못에서 시작된 드라마에 엮인 사람들은 서로 간에 소통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단 하나의 연결고리는 빌런뿐. 목사님과 아들, 숙모와 아들은 평소에 왕래가 없고 아버지와 아들, 자녀들 사이 역시 어머니인 빌런이 몇십 년 동안 저런 패턴의 행동으로 소원하게 만들어놨으니까요.
빌런은 이렇게 주변 사람들 모두를 미치게 또는 혼란스럽게 하는 데 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 생각이 드시죠? 이미 저 부부는 이혼 직전의 상황입니다. 빌런은 화려한 명품을 두르고 최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과 가게에는 비행기는 일등석, 호텔은 특실 아니면 안 간다고 말하고 다니는데요. 본인 집에는 치우지 않은 개똥과 오줌이 일주일째 굴러다녀요. 아버지는 평생을 제발 청소 좀 하라고 말했지만 빌런은 청소를 안 해요. 돈이 많은 집이니 청소부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죠? 아들은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 게 어릴 때부터 소원이었어요. 빌런의 잘못을 늘 덮어주는 건 아들이었습니다. 아주 대환장파티입니다. 원래 문제 있는 집안은 상상을 할 수 없는 범위만큼 말도 안 되는 문제가 몇십 년 간 퇴적돼요.
게다가 빌런은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절대 문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침묵하거나, 몰랐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오히려 나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 별 거 아닌 걸로 그런다며 화제를 전환시켜 버립니다. 심지어는 빌런의 잘못을 덮어주려는 아들에게 화살을 돌려서, 너를 위해서 회삿돈을 쓴 거라며 울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빌런들은 평탄치 못한 유년생활을 겪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빌런들도 가난과 폭력처럼 눈에 보이는 학대를 받은 게 아니에요. 빌런의 부모님 역시 사회적으로는 명망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거나 자녀들 간 경쟁을 시키는 등 한 사람의 성격을 평생 동안 틀어지게 만들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빌런은 보통의 사람들과 애정과 행복의 기준이 다른 사람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본인만의 성과를 내고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보다는, 나 때문에 불안하고 슬픈 것이 빌런에게는 더 큰 기이에요. 분노와 경멸조차도 자신을 향한다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신경을 써 준다고 생각을 하는 빌런이기 때문에, 애초에 설정값 자체가 다르답니다.
범죄자의 인생과 서사를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리얼 라이프 빌런도 상처받은 사람이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그들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 신기한 점은 빌런은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보통의 사람들에게 어떤 점을 빼고 어떤 점을 더해야 피해자를 나쁜 놈 만들 수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고요. 하루종일 새벽부터 밤까지 본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본인의 뜻에 따르지 않은 상대방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 건 본인이면서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는 하루종일 할 일도 없이 스마트폰 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한심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 빌런들의 괴롭힘은 극적이지도 않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일조차 어려워서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상을 파괴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에너지를 빨아들이기에는 충분합니다. 이거 아닌데 싶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벗어날 길이 없는 상황에 있는 여러분.
여러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하는 사람이 무언가 잘못을 했거나 문제가 있을 거라는 말에도 상처받으실 필요 없어요. 사람들이 무례해서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진짜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말도 안 되게 작은 일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 그 괴롭힘이 얼마나 한 사람을 파괴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그런 거예요.
빌런들은 완벽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회적 참사에 기부를 하면서도, 참사 덕분에 공무원 친구들이 휴가를 얻었다며 친구들에게 연락해 금지된 술파티를 몰래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이에요. 드러나지 않는 악행이 곧 선행이라는 모토라도 가진 걸까요. 이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이미 두 손 두 발을 다 든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면 결국 이 사람은 평생을 죄의식 없이 이런 식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며 사람들의 에너지를 흡혈하는 기생충으로 살게 된답니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려는 순간에도 새로운 거짓말을 지어내 문제제기한 내가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해요. 저도 아직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말도 안 되는 빌런의 행동들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다시 기억하는 일은 아픈 일이지만, 그리고 내가 인간 샌드백이 되거나 포기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어 보여 막막하실 거예요. 하지만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나를 지치게 만든다면 해결책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글로 써보는 것도 첫걸음입니다. 저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제가 겪은 일을 제대로 인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저렇게 별 거 아닌 일에 내가 힘들어했나 나를 원망하게 될 때도 있어요. 네가 약하고 멍청해서 당하는 거라는 이야기도 들어봤고요. 하지만 우리의 잘못이 아니랍니다. 여러분이 겪은 리얼라이프 빌런을 제보해 주세요.
happyloser.77p@gmail.com 사연 보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직접적인 도움을 드릴 수 없지만, 내가 겪은 사실을 정리하고 나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 나면 대처할 힘도 생기더라고요. 빌런이 너무 특이한 사람이라서, 내가 정말 운이 없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건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너무 길어도 괜찮고, 너무 작은 일이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만든 유튜브 채널, 책 그리고 피해자가 다시 회복하고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 전문가도 여럿 있답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의 공격을 받은 여러분.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처럼 억울하고 아프기만 하기에도 힘드시죠? 내가 겪은 일이 사실임을 꼭 기록하고, 잊지 말고 참지 마세요.
안 맞는 게 아니라 의도적인 공격을 당한 겁니다. 아, 어쩌면 빌런은 공격이 아니라고 할지 몰라요. 사랑과 관심을 준 건데 괘씸하다고 하면서요. 우리와 삶을 공유하는 현실 빌런들은 경계를 침범하고 상처를 주면서 사랑이라고 말하지요.
세상에는 분명 나쁜 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