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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Sep 18. 2023

나의 잘못을 너의 잘못으로 바꾸려는 당신에게

"내 아들 손이 친구 뺨에 맞은 거다."


모든 잘못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리는 행위마저 맞는 걸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뉴스에서 글로 읽으면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동료나 친구라면요?


(자기 얼굴을 남의 손에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빠르게 가져다 대면서) "이거 봐, 글쎄 걔가 좀 행동도 서툴고 이상하잖아. 이상하게 놀다가 내 아들 손에 갑자기 자기 뺨을 갖다 대더라니까?"


이야기를 듣는 주변 사람들은 "어머, 어머", "대박이다", "헐"등의 적극적이지만 영혼 없는 동조를 하고 잊어버리죠. 누구도 목소리 큰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검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두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렇게 한가하지 않으니까요. 대신에 목소리 큰 사람이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의심 없이 가해자가 되고 맙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거짓 소문을 내더라도 힘 있고 목소리가 큰 사람의 말만 들을 뿐 소문의 진위여부엔 관심이 없다는 걸요. 심지어 아이들끼리의 일로 법정에 가더라도 cctv나 영상 등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여전히 더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이 사실처럼 보인다고요. 심지어 cctv가 있더라도 이들은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내 아들이 다른 아이를 쳤더라도, 마치 정당방위라도 한 것처럼 증명할 수 없는 거짓말을 이어가겠죠.


생각해 보면 각 반마다, 각 학교마다, 동네마다 목소리 큰 갑질 학부모는 꼭 한 명씩 있었습니다.


갑질 학부모들은 리얼 라이프 빌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력도 있고, 주변 엄마들에게는 싹싹하고 유쾌한 사람의 얼굴로 정보통과 소식통의 역할을 하죠. 이들은 자녀들에게 이익이 되는 학원정보, 입시정보 등에 빠삭한 데다가 입김이 세서 이들에게 잘 보이면 무리에 껴서 혜택을 누리고 밉보이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죠.


같은 학부모들이 갑질 학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 이상으로 선생님은 목소리 큰 학부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온갖 힘을 씁니다. 보통 한 반에 학생은 최소 열 명에서 서른 명 내외고 선생님은 한 명뿐이잖아요. 학생과 학부모가 한 목소리로 거짓을 합창하면 선생님 혼자 말하는 진실은 아무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선생님은 쉽사리 다른 학교로 옮길 수도 없고, 진실과 부당함을 말하자니 증명할 길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속이 만신창이가 돼도 참고 넘어가기를 택하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빌런들의 가해행위는 얼마나 많을까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치만 살다 보면 내 삶을 잠식할 만큼 무서운 똥도 만나게 됩니다. 무서운 변을 피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람 안 변한다'라는 말이 있고, 이상한 사람은 피하고 더러운 일은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내가 당하는 사람이 아닐 때만 쓸 수 있는 말이더라고요. 오물처럼 더러운 말과 행동을 하면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꾸는 일을 일상에서 하는 빌런은 누가 청소해야 할까요.


어느 건물에나 있는 청소부. 직접 고용하지도 않습니다. 새벽부터 매일같이 가장 더러운 오물을 치워도 최저시급 수준의 임금을 받습니다. 누가 청소하든 상관이 없는 거죠. 하지만 사무직원은 하루 안 나와도 티가 안 나지만 청소부는 하루만 안 나와도 모두가 안다는 말이 있죠. 한 사람이 근무시간 동안 대소변 합쳐서 사무실에서 화장실을 가는 횟수는 최소 세 번은 될 거예요. 모두가 화장실에 가는 순간마다 산뜻하게 대장과 방광 속 오물을 비워내고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랍니다. 묵묵하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오물과 먼지를 없애준 이분들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더 중요한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어요.


현실에서 우리의 삶을 좀먹는 빌런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든 분뇨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잘못된 가치관 속에 너무 오래 절여진 그들은 여전히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고 상처 입히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분별해 내고, 내가 피해 입었을 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누군가 빌런의 지저분한 행동을 청소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빌런들의 세계는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정도야 내 맘대로 파괴해도 되는구나.'라는 교훈을 얻으면서요.


빌런들은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고 다니고, 오히려 피해자를 신고하거나 해당 조직의 상급자에게 피해자를 먼저 신고하기도 해요. 그럴 때, 나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을 하기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아무도 안 믿어 줄 것 같고,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답니다. 뺑소니 사고처럼 과실을 따진다면 100% 빌런이 시작부터 끝까지 잘못했다는 사실을요.


분명히 나는 알고 있어요.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빌런이 사고를 치더니 나한테 와서 들이받고서는 나한테 너가 잘못했다며 사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잖아요.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당할 때는 머리가 하얘지고 온몸이 굳을 수도 있지만 빌런의 공격이 시작된 이상 물러서지 않는 방법도 있어요.


우선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녹음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손이 떨리기도 하고, '이 녹음을 해봤자 누구한테 들려주겠나.', '오히려 녹음한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도 빌런이 모든 잘못을 당신의 탓으로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한 소문을 내고 다니기 시작했다면 녹음하세요. 빌런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거나, 약속도 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오거나 다 같이 모인 장소에서 기회를 노리다 둘이 있을 때 뜬금없이 이상한 말을 하며 공격을 할 거예요. 저의 경우에는 대표 사모님인 빌런이 제 이름으로 회삿돈을 쓰고 회계 담당자에게 걸린 다음에 저한테 차 한잔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사과를 하려나 생각하고 나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들과 딸의 이름을 시어머니가 지어줘서 너무 싫다.”, “남편보다 오래 살아서 그 돈 다 쓰고 죽겠다.”는 등 뜬금없는 말만 하더라고요. 빌런은 남편 앞에서는 지아비와 자식밖에 모르는 현모양처 캐릭터로 활동 중이거든요. 그런 때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꼭 녹음 버튼을 누르세요. 아니면 만남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녹음을 해두는 게 더 좋아요. 빌런은 주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하는 본래 모습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피해자에게 들이밀며 반성은커녕 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변까지 이용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니까요.


그리고 일자별로, 시간별로 꼭 어떤 일이 있었고 빌런이 어떤 말을 했으며 주변 상황은 어땠는지 꼼꼼하게 기록하세요.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빌런의 무논리 공격을 당하다 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리거나 빌런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반박할 논리를 잃어버리게 된답니다. 주변사람 모두가 빌런의 말에 휘둘리고 있어도 나는 알잖아요. 나는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요. 내가 나를 지키기 않고 놓아버리는 순간만을 빌런은 기다리고 있어요. 힘들고 눈물이 나더라도 꼭, 날짜별로 시간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적어두세요.


빌런들은 모든 객관적인 증거가 뉴스에 보도되지 않는 이상 치밀하게 자신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려고 합니다. 커다란 일부터 작은 일까지요. 이들과 엮이게 된 이상 나를 돕는 건 나밖에 없는 순간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사람들은 빌런의 말을 믿거나, 다 알지만 '네가 참고 넘어가라.', '용서해라' 등 최대한 조용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할 거예요. 빌런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내 가족의 일도 발 벗고 나서서 진실 규명을 해주기 힘든데, 법정도 아닌 이상 빌런과 3자 대면을 해서 진실 공방을 해줄 만큼 정의롭거나 한가한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심지어 판타지처럼 빌런과 삼자대면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빌런은 "몰랐다.", "기억이 안 난다." 아니면 삼자대면을 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거짓말을 지어내 피해자가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바꿔버리기까지 하거든요.


무엇을 해도 나의 무고함은 증명할 길이 없고 자신의 잘못을 완벽히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는 데 성공한 빌런은 점점 더 일상 속에서 피해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오히려 사과는 피해자의 몫이 되기도 하고요. 피해자는 정신적 고통이 탈모, 거식증, 생리불순 등 신체적으로 나타나다 결국은 본인을 해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그렇다면 역시나 도망치거나 숙이는 것만이 답일까요?


책 <용서의 나라>는 9년 만에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됩니다.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둘은 16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으로부터 내 삶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고 사과하고 용서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세월이 아무리 지났어도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꼭 책임을 묻고, 함께 대화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입니다.


가해자에게 잊어버려라, 빨리 용서하고 너 삶을 살라고 하는 주변의 분위기는 가해자의 세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가해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피해자는 그 세월 동안 자해,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등으로 고통스럽게 보내거든요. 잘못을 해놓고도, 거짓말을 하고도 그 순간만 무슨 짓을 해더라도 덮어놓으면 아무 일이 없다고 빌런들은 아주 오랜 기간 학습을 했어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빌런의 잘못을 끈질기게 증명했으면 합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어도 무고한 사람이 입은 상처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억울한 피해자의 삶은 상처 입은 순간에 멈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냥 치유되지 않아요.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묻는 건 뜬금없는 공격이 아닌,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의 시작이에요. 없던 일처럼 넘어가는 게 서로의 시간을 절약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 인생은 효율성을 가치로만 살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의도적이지 않았어도, 한 순간의 실수더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됐다면 우선은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물어보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하잖아요. 나 또한 누군가에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고요.


세상은 상식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책 <용서의 나라>처럼 9년 만에 피해사실을 알리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편지로 계속해서 사과하는 가해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빌런이 있고, 빌런에게 삶까지 빼앗기는 사람도 생기는 거죠.


표창원 교수님의 말처럼,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남을 해치거나 착취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즉시 피하는 게 상책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이라서, 한 회사에서 엮여있어서, 학부모와 교사 사이라, 이웃이라서 쉽게 떠날 수 없는 위치에 남은 우리들은 어느 날 갑자기 빌런들에게 뒤통수를 시원하게 맞거나 뺨을 맞습니다. 정말 아무런 잘못한 게 없는데도 잘못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몰라줘 답답할 뿐이죠. 영화처럼 한 번에 빌런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떠나버리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린 그들과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이들이 평생을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번도 빌런들은 제대로 본인들의 행동을 인정하고 책임져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지위나 돈 등 권력을 갖게 되는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의 잘못마저 남의 잘못으로 만드는 데 온 에너지를 써 온 그들은 본인들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할 거예요. 사과는 패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형제가 등을 돌려도, 자식이 떠나가도 빌런들은 본인들이 만든 거짓말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났을지라도 언젠가는 자신들의 행동이 드러나고 책임져야 된다는 걸 정확히 인식한다면,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공격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본능을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들과 절연을 하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가만히 있는 것도 모두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빌런들의 행동을 참을 수 없다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생각이 들어도 꼭 한마디라도 해야겠다면 하세요. 별 것도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군다고 빌런이 소문을 내더라도요.


"본인은 아무 일도 안 했으면서 왜 제가 쓴 보고서를 저한테 말도 안 하고 본인이 쓰셨다고 보고하셨어요?", "제 이름으로 회사 돈을 가져다 쓰시면서 왜 저에게 말씀을 안 하셨어요?" 거울을 보고 수십 번 연습을 해야 하고, 빌런의 말도 안 되는 거짓 변명을 예측해서 객관적인 반박 자료까지 만들어야지만 가능한 일이에요. 빌런 앞에서는 여전히 한 마디도 못할지라도, 빌런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묻는 것을 상상하고 연습하고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은 치유될 때도 있더라고요.


진실을 말하고, 잘못을 지적한다고 빌런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 숨통은 트이더라고요. 복수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담담히, 정정 당당히 무엇이 잘못됐는지 객관적으로 짚어주는 겁니다. 빌런들은 자신이 한 말도 바로 바꿔버리지만 녹음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으면 그래도 조금은 당황을 합니다.


물론 객관적 증거가 나온 후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빌런은 더 세게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내면서 매장을 시도해요. 더 센 사람이 이긴다는 짐승 같은 힘의 논리만 남은 빌런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힘을 내서 계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내 일도 열심히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하는 일까지 함께해야죠. 그래야 빌런의 민낯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해요.


미투운동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성희롱성 발언과 손버릇이 이제는 많이 사라졌잖아요. 힘 있는 사람은 기분대로 말을 뱉고 만져도 되는 분위기 속에서 가장 부끄러운 성희롱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던 감사한 분들 덕분에 내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온갖 성적인 가해 행위로부터 보호받게 됐습니다. "딸 같아서 만졌다."는 말을 법정에서도 할 수 있었던 그때, 성희롱을 당한 사람의 태도와 옷차림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던 그때.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당당하게 외쳤던 피해자들의 힘으로 빌런의 본능을 잠재우고 약자가 보호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피해자들이 세상의 청소부가 되길 자처한 덕분이에요.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면 세상은 빌런들의 오물로 가득 차있을 거예요.


"최 권사네 며느리가 글쎄 두 살배기 손주한테 먹던 콜라 좀 줬다고 최 권사한테 난리를 쳤데."


"클라이언트가 물 뿌리고 갑질한 거 영상 찍어서 제보한 거 박대리라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내 손이 더러워져도 똥을 치우는 청소부가 된다면, 그때부터는 냄새나는 똥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치우는 겁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는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 대화 주제로 삼지 않고 말을 돌리거나 피해버리는 게 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빌런의 행동에서 비롯된 피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소문이 나는 것만으로 나를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를 구할 수 있습니다. 실패가 뻔한 일을 시도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야 하니까요.


단 하나도 잘못한 거 없다고, 빌런이 소문내는 일에서 만큼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게 맞다고 당당히 말하셔도 됩니다. 피해자가 사과해야지만 가해행위를 멈추는 현실 빌런. 네 잘못도 내 잘못이라며 미안하다고 하는 피해자 여러분. 여러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완전한 가해행위 앞에서도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지혜롭다며 미덕으로 삼는 처세술을 악용하는 빌런 때문에 더 이상 무고한 사람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길 바랍니다.



* 그림 출처: Fla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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