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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한숨 쉬지 말아 주세요

널 미워해서가 아니야

by 해피러브

널 미워해서가 아니야

2013년 3월에 결혼했다.

우리는 1년 동안 신혼을 즐기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1년 후, 아이를 갖기로 했다.

신혼여행 다녀오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야식과 함께 소주를 마셨다.

속이 거북하고 소주가 안 넘어갔다.

나는 맥주로 바꿔 마셨다. 맥주도 마찬가지로 속이 거북했다.

자꾸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

다음날 저녁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임신테스터기를 구입해서 해 보니 두줄이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에 감사하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임신 테스트기 결과 두줄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고 뽀뽀하며 기념했다.

기쁨과 동시에 갑자기 3월이라 먹었던 구충제가 마음에 쓰였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일 병원 가서 물어보자며 진정했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에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병원 오픈런!

다행히 임신초기엔 구충제도 태아에게 크게 영향이 없다는 전문의 말에 안심하며 감사했다.

매일매일 아이에게 편지도 쓰고 말도 걸어보며 10달을 손꼽아 기다렸다.

막달 즈음 알 수 없는 하혈을 2번 정도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잘 못 될까 봐 두려운 마음 안고 병원으로 향할 때면 "엄마 나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메시지 보내는 듯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는 태동은 나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켜 줘서 아이에게 정말 고마웠다.

자꾸 하혈하니 유도분만하자고 주치의가 권해서 분만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언제 힘을 줘야 되는지 몰랐던 나는, 진통이 멈추면 힘을 주고 진통이 오면 고통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친절한 간호사님이 "소리 지르지 마세요 에너지 고갈됩니다. 진통이 오면 아이가 나오고 싶은 거니 힘주셔서 아이를 도와주셔야 해요!"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아이가 나오려고 진통이 오지만 이미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힘을 줘도 힘이 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자연분만은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그때 친절한 간호사님이 내 손을 잡으시더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느끼게 하셨다.

"이게 아이 머리예요. 머리카락 느껴지시죠? 아이가 나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산모님 아이를 도와주세요~ 진통 오면 바로 힘주시면 됩니다. 진통 오시나요?"

바로 그때, 아랫배가 조여 오면서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이 온몸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진통 오시면 지금 힘주세요~~ 진통 오셨나요?"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온 힘을 아랫배에 모았다~

"응애~~~~~"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렸고, 정말 그야말로 널브러졌다.

아이를 내 가슴에 안겨줬다.

나는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생각하며 바라봤다.

작고 조금 한 생명체가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었고,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배를 만지며 나누던 사랑의 대화, 건강하게만 태어나고 자라나길 간절히 바랐던 마음, 소중한 나의 분신과도 같은 보물.


이 귀한 나의 보물은 2025년 6학년이 되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내 아이는 분명 방금 전까지 책상에서 앉아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었는데, 5분도 채 안 되어 정수기 앞에 서 있다. 순간이동을 하는 건지.. 5분도 채 안 되어 화장실에 앉아있다.

거실을 맴돌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고함을 질러 책상 앞에 소몰이하듯 앉혀 놓고 뒤돌아 서면, 가위로 종이를 자르더니 테이프를 뜯고 있다.

공부방 밖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소머즈처럼 캐치하고 "무슨 소리예요?" 말하며 다가온다.

나는 이 시기 같은 학년 친구들은 다 열심히 선행하며 집중하는데 왜 우리 아이는 계속 잔소리를 해야 되는 건지 마음에 고구마 1000개를 쪄서 눌러 놓은 듯 숨 막히고, 걱정된다.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해 보겠다고 시도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앉아있는 아이 방문이 열려 있어서 혹여 생활소음 때문에 집중력에 방해될까 봐 방문을 닫아줬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아이가 궁금해서 살며시 방문을 열어 봤더니 책상 앞에 갤럭시 패드를 세워 놓고 거울삼아 표정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휴~~~"소리와 함께 방문을 닫아 버렸다.

그때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날 보고 한숨 쉬지 말아 주세요"


나는 어느 순간 아이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고 있었나 보다.

나는 기대와는 달리 집중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이러다 중학교 가서 어쩌려고?' 걱정되는 마음이었는데 아이는 사랑받지 못하고 '내가 뭘 잘못했나'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니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직도 문제집은 아까부터 펼쳐져 있던 그 페이지라 또 한숨이 나온다.


사실 이런 생각도 했다.

'이번 여름방학 한 달만 학원을 쉬고, 실컷 널브러지고, 실컷 지루하고, 실컷 자고, 실컷 함께 체험 위주 활동하며 보내 볼까? 초등학생인데 너무 자유 시간이 없어서 안쓰럽긴 해..'

학원 선생님들께 방학 동안 쉬겠다고 말했더니 나사 빠진 엄마에게 당장 드라이버를 처방하듯 다음 학기 선행의 중요성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신다.

그동안 공부 습관이 다 무너져서 회복하기 어렵다는 말을 반박할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에게 대신 주말엔 자유를 주겠다고 말했다.


학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면...

나는 계속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나의 한숨은 걱정과 사랑, 그리고 이해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이다.

'공부 좀 해라'는 잔소리 뒤에는 '네가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는 간절한 마음이 숨어있다.

하지만 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바뀌어야 된다.

사랑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된다.

나는 오늘,

다시는 절대 아이를 보며 한숨 쉬지 않기로 다짐했다.


엄마의 한숨은 널 미워해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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