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에서 불꽃놀이로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품고, 쓰는 사람이 되다

by 해피마망

―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다이너마이트에 대해 나는 사실 잘 모른다. 노벨이 발명한 폭발물이라는 것, 강력하지만 뇌관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노벨상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일곱 살 시절부터 내 마음속에는 늘 ‘그것’이 하나 있었다.
열기만 하면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마녀의 옷장 같은 것. 그것은 오빠에게서 들은 다리밑이었다. 다리밑에 대한 궁금증은 나날이 깊어졌다. 어린 나는 이웃동네까지 가서 다리 밑을 찾아 헤맸다. 어쩐지 그 다리 밑에는 나의 진짜 엄마와 가족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다리 밑이라도 좋았다. 거지가 되어도 좋았다.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절실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남의 집 굴뚝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성냥팔이 소녀를 생각했다. 찾을 수 없는 다리 밑은 어느새 나의 이상향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다리 밑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서, 어른으로서의 삶은 나를 재촉했다. 아내로, 엄마로, 누군가의 역할을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다른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했다. 그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아이들의 똥 묻은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힘들다고 책임을 회피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땅히 그리해야 하는 것에 더하여 넘치도록 마음과 몸을 사용하며 헌신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압박감과 긴박감이 가슴을 눌렀다. 마치 가슴 깊은 곳에 안전핀이 살짝 틀어진 다이너마이트 하나를 품고 사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숨 쉬기가 힘들어지고 가슴의 통증으로 인하여 수없이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나는 이 다이너마이트가 사라진 나의 삶에 대한 욕망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추구하는 걸 하고 싶었다. 가정이나 사람들에게 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더니 칠십을 맞을 내 시간은 도망자처럼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내 안의 다이너마이트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시간 없어! ‘빨리 꺼내서 던져! ‘안에서 터지기 전에 폭파시켜 버려!’


그 무렵, SNS에 올린 내 글을 본 한 이웃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글을 제대로 써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서, 그곳에 글을 올려보라고 했다. 나는 즉시 그가 알려준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쓴 수많은 글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신세계였다. 정신없이 글을 읽다가 작가신청을 하라는 안내 글을 보았다.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작가 승인’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작가.’ 그 단어를 보자 내 심장은 크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흠모하던 이름이었던가. 나는 홀린 듯 신청서를 작성했고 다음 날 오전에 승인 메일을 받았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곳은 나의 첫 무대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무대는 단지 글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안의 ‘그것’을 밖으로 꺼내 놓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예전의 나는 지나간 시간을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했다. 힘들었고, 버텼고,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나 글을 쓰면서 그 시간들은 하나씩 얼굴을 드러냈다. 왜 그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왜 그 말이 나를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나는 문장 앞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나를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로 데려갔다.



— 쓰는 사람이 되어서

일곱 살 때, 오빠에게서 들었던 말.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농담처럼 던진 그 말은, 웃고 넘길 수 없는 방식으로 내 안에 남았다.

밥을 더 달라고 하면 엄마는 자주, “ 그만 먹어~”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 봐, 친엄마가 아니니까 그렇지” 속으로만 생각하며 밥상을 떠나 혼자 울적해지곤 했다.

나는 그렇게 늘 경계에 서있었다. 가족 안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도.

그렇게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는 일곱 살 어린 내 마음 깊은 곳에 박제되어 나를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못하고 평생을 떠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문장을 쓰는 시간, 나는 그 아이에게 말을 들려주었다.

“나, 다리 밑을 찾았어”

아이가 말했다.

“응. 나는 항상 다리 밑을 찾아다녔지. 어딜 가도 불편하고 불안했어. 누구에게도 나를 말할 수 없었어. 나를 말하면 다 나를 떠날 것만 같았어. 난 어디에서든 쉴 수가 없었어.”

아이는 울지는 않았지만 젖은 목소리로 읊조리 듯 말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일흔의 나는 일곱의 아이에게 속삭였다.

“이제 다리 밑은 찾지 않아도 돼. 우리가 쓰는 이 글들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다리 밑이었어. 우린 비로소 우리가 있을 곳에 도착한 거야.

우리가 지나온 모든 상처들은 이제부터 우리가 피워 올릴 아름다운 불꽃놀이의 재료가 될 거야.”

나는 아이에게 하나의 이름을 주었다.

“너는 쓰는 사람이야. 이게 너의 이름이었어.” 아이는 품에서 몸을 빼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은 젖어있었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우리는 말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정체성을 찾았어.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독한 안도감을 느껴." 아이의 목소리도 나의 목소리도 심하게 떨렸다.

칠십이 다 되어서야 드디어 정체성을 찾았다는 지독한 안도감은 잔잔한 평안보다는 오히려 심한 떨림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나는 평생 길 위의 다리를 찾아 헤맸다.

내가 찾던 다리 밑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수용되는 곳, 바로 이 ‘하얀 종이 위’였다는 것을 쓰면서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있을 곳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다리 밑’이 아니라 ‘쓰는 자리’였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이 자리에서 아이도 나도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글을 쓰며 아이를 가르치거나 달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머물렀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했다.


글쓰기는 내 안의 상처를 없애주지는 않았다.

대신 그 상처를 품고도 살 수 있는 지독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혀 있던 나만의 다이너마이트는 이제 더 이상 안에서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 제어할 수 있는 불꽃으로 바꾸어 놓는다.

모두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불꽃놀이처럼.

나는 글을 통해 그 자리를 찾았지만, 당신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리에 도착할 수 있다.

부디 당신의 내면에서 방황하는 아이와

함께 그 자리에서 쉼을 얻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그 아이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글을 쓴다.

이제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의 내면 아이가 아니라 ‘쓰는 사람’이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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