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 같은 인생에서도 꿈틀거리는 삶의 의지
+인스타그램(@yellow_mellow_page)과 Notion을 통해 연재 했던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옮깁니다.
1월 첫 번째 영화, 절망 또는 희망 1
새해의 시작을 마음이 뻑적지근해지는 영화로 하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며칠간 계속 이 영화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알지 못했고 알 기회조차 없었던 세상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불편하지만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저에게 '삶의 무게'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내 삶의 고통에만 집중되어 있던 관심을 타인의 고통으로 잠시 돌릴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요.
고통스럽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것이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아요.(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 감독은 원래 다큐멘터리 작업을 주로 하던 분이라고 합니다.)
카메라는 아이카를 계속해서 쫓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시선과 내 시선이 하나로 맞춰지면서, 저 또한 어느새 숨 가쁘게 아이카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로요.
아이카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카는 황급히 산부인과에서 도망을 칩니다.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폭설이 내린 모스크바... 아이카는 성치 않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창문을 열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닭 공장. 그녀는 아이를 낳은 다음날에도 일을 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물에 닭을 넣어 닭 털을 벗기고 안에서 내장을 꺼냅니다.
닭 공장의 묘사, 여배우의 연기가 너무 생생해서 저도 같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언젠가 내가 너무 아팠지만 일했어야 하는 상황이 겹쳐지며 아이카가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닭 공장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튀어 돈도 받지 못한 채 만원 지하철에 끼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카는 이주 노동자인 듯합니다.
취업 허가가 1년 전에 만료된 것으로 보아, 러시아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앙아시아계 노동자들이 창문도 없이 몰래 살아가는 곳에서 아이카는 삽니다.
겨우 누울 곳 정도만 있는 곳에서 추방당할 위험을 안고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아이카 역시 가난이 싫고 고향에서의 따분한 삶이 싫어 꿈을 안고 모스크바로 왔던 것 같습니다.
재봉사업을 하려고 돈을 모으다가 사기를 당했을까요.
빚을 져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빚쟁이는 돈을 갚지 않으면 고향에 있는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합니다.
일자리를 알아보다 동물 병원 청소 일을 대타로 잠시 하게 된 아이카는 그제야 처음으로 웃음을 보입니다. 잠깐이지만 자신만의 공간도 생겼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어 잠시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갚으려고 하지만 취업 허가가 만료되어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빚쟁이들의 독촉도 계속되고, 하혈에 이어 젖은 계속 뭉쳐 수시로 짜 주어야 합니다.
결국 아이카는 자신의 아이를 빚쟁이들에게 넘기려고 마음을 먹고 다시 산부인과를 찾아갑니다.
5일 만에 아이를 다시 받아 들고 빚쟁이들에게 아이를 넘기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립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젖을 무는 순간, 아이카는 단단히 부여잡고 있던 자신을 잠시 놓습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카는 그 후 어떻게 했을까요? 아이카가 아이를 빚쟁이들에게 넘겨줬든 아이를 안고 다시 도망을 쳤든 둘 다 아이카에게 쉬운 삶은 아닐 겁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아이카의 삶을 보면 그녀에게 삶은 너무 심하게 고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아이카는 자신의 삶을 있는 힘껏 살 거라는 이상한 기대가 생깁니다.
단 한순간의 결말로 아이카의 인생을 추측하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목격한 아이카의 행동과 눈빛을 통해 아이카가 앞으로 고단하지만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책임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감독은 아이카의 삶을 마무리지어 보여주기보다는 '아이카'로 대변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구 소련 연방국가들에서 희망을 찾아 모스크바로 온 고단한 삶들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세상에 신이란 게 있을까 싶습니다.
신이 있다면 부디 아이카를 도와달라고 빌고 싶었습니다.
영화와 책에서 주인공이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꼭 누군가가 나타나서 도와주듯, 아이카에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 주길 바랐지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카의 삶이 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저는 이 영화를 새해 첫 영화로 소개하고 싶었을까요. 이 영화는 분명 어둡고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데 말이죠.
이 영화가 가진 힘과 에너지가 좋아서 절망적이지만 그 속에서 한줄기 희망이 느껴졌어요.
저마다 삶에서 겪는 고통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통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어쨌든 내게 주어진 삶을 껴안고 힘겹게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희망에 차는 새해, 이루고 싶은 것 목록에 운동하기, 영어 공부 하기, 건강하게 먹기 등을 쓰는 것에 앞서 삶에 대한 의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고통받는 존재들의 삶에 대한 의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