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자고 공부하는 딸과 자꾸 싸우는 엄마

아는 문제를 틀리게 만드는 비효율에 대하여

by 공재

이제 고3이 되는 딸과 나는

시험 때마다 싸운다.


잠을 줄이고 공부하는 딸의 모습이

못마땅해서다.


기특할 일 아니냐고,

자랑하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동·청소년 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 대부분의 결론은 학습으로 귀결된다.


정서 문제든,

일상관리 문제든,

관계 문제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의 일정 부분...

아이의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은 학습인 경우가 많다.


자의든 타의든

학습과 발달 단계의 과업을 오래 공부해 온 임상가로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잠을 줄이는 공부를

차마 좋게 볼 수가 없다.


우리 딸은

공부를 못 하는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잘하는데

더 잘하려고

스스로 잠을 줄이고 노력하는 아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노력하면 한 만큼의 성과가 나타나길 바라지만

자주 아는 문제에서 엉뚱한 실수를 한다.


몰라서 틀리는 게 아니다.

잠이 부족해

집중력이 흐려져서 틀리는 것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몰라서 틀리는 건

억울하지 않다.

필요하면 배우면 된다.

하지만

아는데 집중이 무너져서 틀리는 건

아깝고 속상하고 허무해지는 일이다.


화면 캡처 2026-01-04 100802.jpg


그래서 나는

시험 기간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냥 시간 되면 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한 문제 더 맞히려고 하지 말고

일단 컨디션부터 챙겨.”


잠이 부족하면

뇌의 주의집중 기능과 작업기억이

가장 먼저 흐트러진다.

그래서

아는 문제를 읽고도

실수가 늘어난다.


더 중요한 건 잠을 자는 동안에야

그날 공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장기기억으로 옮겨지는 과정,

이른바 기억 공고화가 일어난다.


잠을 줄인 공부는 더 많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저장되지 않는 공부에 가깝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이다.




항공대에 있을 때도 그랬다.

시험 기간만 되면

아이들이 2주 가까이

잠도 못 자고

좀비처럼 다닌다.


입술이 다 터지고

쓰러지기 직전의

퀭한 얼굴로 찾아오는 학생을 보면

나는 진심으로 말한다.


“이 상태면

시험 보면서 멍해지지 않냐.

아는 문제도 틀리겠다.”


의외로 수긍하는 아이들 많다.


"맞아요, 선생님

망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잠이라도 잘 걸."


화면 캡처 2026-01-04 100916.jpg


그래서

시험 기간에

스터디카페에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딸을 보면

불쑥 말이 거칠어진다.


잘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 남짓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새벽 세 시, 네 시가 넘어가도록

딸아이 방의 불이 안 꺼지면

버럭 화를 낸다.


“빨리 자라고.

오늘만 살고 말 거야?

넌 내일이 없어?”


특히

다음 날 학교를 가야 할 때는

더 그렇다.


“아니,

밤새 공부하고

학교 가서 잘 거면

왜 밤에 공부를 하는 거야?”


너무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그래도 새벽까지 공부하네.

기특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효율을 미덕으로 착각하는 문화,

잠을 자는 것보다

버티는 걸 더 값지게 여기는 분위기,

잠을 자면 불안해지도록 몰아가는 구조.


시험 기간마다

아이들을 좀비처럼 만드는 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아이의 인생 첫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