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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민 바리스타 Mar 24. 2020

일을 잘했다는 것, 그것은

일을 잘했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일을 잘했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만화 [바텐더]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물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카페에서도 물려줄 수 있는 물건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물려줄 수는 있겠지만 그 전에 노후가 심해져서 고장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로 작동하는 물건들을 제외하면 물려줄 수 있는 물건들이 몇 개 남지 않더군요. 그 중에는 역시 만화처럼 바스푼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는 바스푼을 크기별로 4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푼들은 카페를 오픈한 2012년도부터 제가 쓰고 있는 것들이죠. 바스푼 같은 경우 많이 쓰면 끝부분이 벗겨져서 약간 노란 색이 띄곤 하는데 그게 또 살짝 멋스럽습니다. 시간이 담겨 있달까요.


이런 물건들을 물려주기에 앞서 카페에서 ‘일을 잘했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물건을 물려줄만큼 카페를 오래 운영하려면 결국 운영을 잘해야 될테니까요. 운영을 잘한다는 것을 쉽게 말하면 일을 잘한다는 것이 될테니 말이죠.


저는 직원이 새로 오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카페에서 일을 잘했다는 것은 네가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정확히 알 수 있다. 만약 너를 찾는 고객들이 많다면 너는 고객들에게 일을 잘한 것이다. 만약 너를 그리워하는 직원이 많았다면 너는 바 안에서 일을 잘한 것이다. 반대로 네가 그만두고 나서 너를 찾는 고객이 아무도 없다면 너는 고객에게 일을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그만두고 나서 너를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없다면 너는 바에서 일을 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 운영하는 카페도 일을 잘했다고 평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카페가 영원히 문을 닫은 이후에야 정확히 알게 될껍니다.


지금의 카페를 그리워하는 손님들이 많이 있다면 저희 카페는 일을 잘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카페가 없어졌는데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일을 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요.


손때 묻은 물건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긴 시간 동안 존재했다는 것의 증표이기 때문이죠. 긴 시간 존재하려면 결국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니까요. 두 번째는 물건 안에 깃든 정신을 받아줄 후계가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과연 그 둘이 카페를 하려고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다만 오늘도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과연 지금 운영하고 있는 카페가 언젠가 문을 닫았을 때 그리워할 사람들이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_20.03.24.화. 허밍에서 바리스타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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