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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민 바리스타 Mar 23. 2020

바리스타의 명상법

생각의 여백, 행동의 여백, 말의 여백 나아가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

바리스타의 일상은 반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출근하고,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동작도 반복의 연속입니다. 포터필터에 커피를 담고, 템핑을 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립니다. 모든 동작이 끝나고 나면 행주로 머신을 닦고 바를 닦습니다. 처음 커피를 배웠을 때는 모든 동작이 새로워서 하나하나 긴장하며 주의를 기울이죠. 하지만 그렇게 일 년, 이 년, 삼 년이 지나가면 익숙해집니다. 익숙함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지루함은 권태에 빠지게 합니다.

    

권태는 모든 것이 똑같다고 느낄 때 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방금 내린 커피와 다음에 내리는 커피는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카페에 출근하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른 자세로 나가고 있습니다. 카페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즉 수행자라는 옷을 입고 카페에 출근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달라 보입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이죠.



명상이라는 것이 배우고 싶어서 담마코리아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12일 동안 완전한 침묵을 하면서 아나빠나(호흡 관찰 명상)와 위빠사나(감각 관찰 명상)를 배웠지요.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 모든 시간을 명상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 가운데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 배울 수 있었지요. 호흡을 관찰하는 명상을 하면 그동안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나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다 똑같아 보이던 호흡은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형태로 나의 몸속에 들어오고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느 호흡은 길고, 어느 호흡은 얕습니다. 어느 것은 따뜻하고, 어떤 것은 차갑습니다. 모든 것이 똑같다고 느꼈던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면 하나하나가 다르듯 모든 것이 동일해보이는 카페에서의 일들도 가만히 지켜보면 하나하나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감각을 관찰하는 명상을 하면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감각을 관찰할 때 중요한 한 가지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머리나 얼굴 쪽에 가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긁었을 텐데 감각을 관찰하는 명상에서는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그냥 허용하는 것이죠. 그러면 가려움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모든 세상이 가려움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혹 그렇게 되더라도 거기에 휩싸이지 않고 자신의 속도와 순서로 다른 신체 부위들을 관찰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이죠. 이런 식으로 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에 가서 그 가려움이 아직도 있는지 보는 것이죠. 영원할 것 같았던 가려움이 어느 정점에 도달하면 어느새 ‘뿅’하고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기한 경험이었죠.


그러한 감각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나의 몸, 혹은 나의 감각이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조차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시작된 통찰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정하든 혹 인정하지 않든 말이죠. 모든 열심과 힘을 다해서 카페를 창업합니다.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하고, 말 그대로 인생을 갈아서 만들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창업을 합니다. 창업한다는 것, 그리고 자영업자로 산다는 것은 멀리서 보면 꽃길이지만 막상 걸어보면 가시밭길이죠. 그렇게 애정으로 만든 카페일지라도 때와 연이 되면 사라질 것입니다. 카페에서 만나는 많은 인연도 그렇겠죠. 새로운 바리스타가 들어오고, 친해지고, 일을 가르치고, 일하기 시작합니다. 한 명의 바리스타가 자신의 몫을 하려면 최소 3개월은 필요합니다. 그렇게 일을 잘하기 시작하면 ‘이 바리스타가 그만두면 어쩌지….’라는 집착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평생 함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그러니 있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잘 다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리스타가 창업을 하든 혹 다른 카페로 이직을 하며 떠날 때는 잘 보내주어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도구였습니다.


명상은 외부로만 향해있는 나의 시선을 거두어 나의 내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죠. 완벽한 여백의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꽉꽉 차 있는 내 생각, 행동, 말을 잠시 내려놓고 말이죠. 생각의 여백, 행동의 여백, 말의 여백 나아가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죠. 여백이 없는 그림은 답답해 보이고, 여백이 없는 공간에서는 쉴 수가 없는 법이니까요.


카페를 운영 하다 보면 외부에서 많은 일이 발생합니다. 가까운 곳에 경쟁 업체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죠. 동네에 좋은 소문이 날 때도 있고, 그리 좋지 않은 소문이 날 때도 있습니다. 고객의 평가는 매일매일 다른 법이지요. 바리스타들과의 관계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질 때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너무 외부에만 신경 쓴다면 스텝이 꼬여서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카페를 운영하는 오너바리스타라면 더욱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카페 측면에서는 우리 카페의 내부를 바라보는 것이죠.


우리 카페의 내부를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고객 한 명에게 집중하고 충실하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바리스타에게 잘하겠다는 것이지요. 가끔은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을 할지라도 조금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뭐 아무리 잘못한들 지구가 망하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바라봐주는 것이죠.

   

명상을 하며 훈련하는 것 중 마지막은 ‘반응’이 아닌 ‘대응’하는 연습입니다. 반응과 대응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그 속은 완전히 다릅니다. 반응은 어떤 일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대응은 그 일을 가만히 관찰한 후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머리가 가려울 때 무의식적으로 긁었다면 그것은 반응입니다. 반면 대응은 머리가 가려울 때 그 가려움을 먼저 ‘인식’한 후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죠. 즉 머리가 가려우니 1)긁는다. 2)톡톡 손가락으로 친다. 3)가만히 놔둔다. 4)머리를 감는다. 같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이 있는 것입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우리는 ‘반응’이 아니라 ‘대응’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죠. 대응하는 연습을 해보면 막상 화낼 일도 짜증 낼 일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번은 단체 손님이 온 날이었습니다. 11명 정도 되는 손님들이었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오신 분들이었죠. 그래서일까요. 한 손님이 바닐라 라떼는 책상에 그대로 쏟았습니다. 그때는 대응이 필요할 때이죠. 웃는 얼굴로 치워드리고 다시 만들어드렸습니다. 그렇게 10분 뒤 또 다른 손님이 이번에는 딸기 스무디를 쏟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반응이 아니라 대응입니다.

쏟은 음료야 치우면 되는 것이죠. 웃으며 딸기 스무디도 서비스로 한 잔 다시 만들고 있으니 이번에는 너무 미안해서 꼭 결제를 다시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해도 꼭 결제한다는 손님의 말에 결제를 받았지요.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할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분은 좋은 편에 속합니다. 관찰자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죠.


처음 말씀드렸듯 바리스타의 일상은 반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출근하고,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동작도 반복의 연속이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다 제각각 다릅니다. 명상을 하며 늘 새로운 일상을 만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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