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미국 도서관에서 빌린 첫 한국 책은 최영은 작가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였다.
최영은, 「쇼코의 미소」 , 문학동네, 2016
씬짜오, 씬짜오 / 한지와 영주 / 먼 곳에서 온 노래
- 최영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
두 번째 이야기 : 씬짜오, 씬짜오
주인공의 엄마는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 응웬 아줌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이었던 엄마는 주인공이 한 말 때문에 그 소중한 인연을 잃어버렸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
한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주인공에게 투이는 말했다.
“한국 군인이 죽였다고 했어.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 다 죽였다고 했어. 할머니도, 아기였던 이모까지도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우리의 역사에 슬픔과 상처를 남긴 나라에게 철저한 반성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다른 나라에 준 슬픔과 상처는 너무 쉽게 잊는 모양이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정당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용서했거나 그런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는 늘 침략과 약탈을 당했던 불쌍한 민족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살았던 나의 편향된 역사 지식과 무지에 대해 주인공처럼 부끄러웠다. 작가는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 한국도 다른 나라에게 상처를 주고 반성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과거가 있다는 것을 대변하며 응웬 아줌마의 가족에게 사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네 번째 이야기 : 한지와 영주
프랑스 시골 마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스물일곱 살의 한국 여자와 케냐에서 온 한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해피앤딩을 기대했는지 흐지부지 끝나버린 결말에 허탈함을 느꼈다. 수도원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한지에게 기우는 마음을 접으려 애쓰는 영주. 영주 자신도 찾지 못한 어떤 이유로 인한 오해로 말없이 떠난 한지와 그 떠남을 받아들인 영주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상처나 실망을 회피하기 위해 돌아서지만 그 돌아선 발걸음 때문에 결국에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상처를 받게 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끝까지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놓쳐버렸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깊은 마음은 알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는다. 손을 내밀면 아플 것 같아서 내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내밀어 보지 않아서 결국은 후회의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쩌면 그냥 손을 내밀어 보고 상처 입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지나 영주처럼 나는 여전히 손을 내미는 일에 머뭇거리며 살고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먼 곳에서 온 노래
이 이야기를 읽은 후 나는 작가가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최영은 작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아니, 마음을 제대로 다 못 주었기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대학 문화 변화의 기로에 서있던 시절 대학 노래패에서 만난 선배에게 받은 마음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 결국은 선배가 세상을 떠난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에 대한 선배의 끝없는 관심과 조언이 고마웠지만 그 고마움만큼이나 불쾌감도 커졌다. 선배가 ‘나’의 테두리를 짓밟고, ‘나’라는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하는 것 같았다. 선배는 멀리 있으면서도 내게 너무 가까웠다. 나는 나의 가장 추한 얼굴까지도 거부하지 않는 선배의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애초부터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이었으리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랑받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지만 사랑하던 이에게 버림받아 본 이는 언젠가 그 사랑이 떠날 거라는 생각에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을 주는 사람이 부담스럽고 그 관심이 불편하다. 그 마음이 언제든 나를 떠날 것을 알기에.
마음 받는 것에 대한 묘한 두려움과 마음을 줘야 할 거 같지만 주는 것이 겁이 났던 주인공 나이인 내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났다. 그 후 스무 해를 더 살았지만 솔직히 마흔이 넘은 지금은 누군가 덜컥 나의 공간에 들어와 마음을 주고 마음을 달라고 할까 봐 그때보다 더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