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다시 책 읽기에 도전하면서 제일 처음 읽은 책은 2013년 작가세계의 중편소설 부문 신인상과 제5회 젊은 작가상에 당선된 ‘쇼코의 미소’라는 중편 소설의 제목으로 엮어진 최영은 작가의 소설집이었다.
최영은, 「쇼코의 미소」 , 문학동네, 2016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미카엘라 / 비밀
- 최영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
세 번째 이야기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쇼코의 미소’에 담긴 세 번째 이야기는 민주주의라는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독재정치가 이루어지던 시절, 시민들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 피로 물들던 시대를 살던 외로운 순애 언니와 엄마의 이야기이다.
외롭고 가난한 작은 소녀였던 친척 언니가 고문으로 불구가 된 남편의 뒷바라지에 마음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마음의 불편함을 덜어내려고 결국은 좋아했던 그 언니에게서 멀어져 간 엄마는 그 언니를 보지 않는 동안 마음은 덜 아팠고 그 불편함에서 자유로와진 것 같았지만 마지막까지 애틋함은 놓지 못했다.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헸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끔은 너무 깊은 속내를 알면 그 아픔이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불편한 그 느낌이 싫어서 몰랐던 적, 듣지 못한 척 살았던 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불편해서 제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아픈 사연을 다시 되새김질하는 느낌이 들었다.
‘쇼코의 미소’의 세 번째 이야기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읽고 난 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시대의 문제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사람들의 아픔을 찾아내어 글을 쓰는 사람인가 보다.’
일면식도 없는, 우연히 미국 도서관에서 한 소녀의 옆도 아닌 뒤도 아닌 모습이 찍힌 보랏빛 표지와 제목이 궁금해서 집어 든 책의 작가였고 그 작가의 중편 소설 세 편을 읽고 작가의 세계나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쇼코의 미소' 소설집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더 확신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최영은이라는 작가는 본인이 작가의 말에 적은 것처럼 사람들이 모른 척 넘어가고 싶거나 슬그머니 잊어버리고 싶은 상황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 작가일 거라고.
그녀의 책 한 권 읽은 주제에 나는 내 입맛대로 그녀의 작가 성격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나니 그녀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그 마음이 궁금해졌다.
여섯 번째 이야기 : 미카엘라 / 일곱 번째 이야기 : 비밀
이 두 이야기는 아마도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에게 떠오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도 온 국민이 슬픔과 분노에 잠겨있는 동안 작가는 그 슬픔과 분노를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나 보다.
“내 딸을 잊지 마세요, 잊음 안 돼요.”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그 목소리는 분명 엄마의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미카엘라>
힘든 일도 있겠지만 너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네 몫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때, 말자는 그렇게 믿었었다. 맑게 웃고 있는 지민의 투명한 얼굴을 보며 말자는, 정말 그렇게 믿었었다.
집배원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그곳으로, 어떤 편지도 배달되지 않는다는 그곳으로 말자는 지민에게 직접 전할 그 편지를 접어 가슴에 품었다. <비밀>
'미카엘라'는 미용실을 하며 힘들게 키운 딸이 서울에서 자리 잡고 잘 사는 모습이 대견한 엄마가 서울에 왔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로 세월호로 인해 고등학생 딸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와 맞물려 이어진다.
'비밀'은 세월호 사고로 기간제 교사였던 딸이 죽었으나 암에 걸린 할머니의 건강 때문에 연락하기도 힘든 중국의 시골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부모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나 어쩌면 딸과 사위의 말을 믿고 싶은 손녀를 잃은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이 두 중편 소설을 읽으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어쩌면 드러나면 안 되는 더 무서운 진실 때문에 숨겨지고 있는 세월호의 진상규명에 대한 기사들을 떠올렸다.
기가 막히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날의 상황,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픈 상처가 절대 아물지 않을 부모들과 가족들의 사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고 밤에 자다가 악몽을 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분노와 슬픔은 조금씩 남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두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무뎌진 나의 마음이 미안해졌다.
여전히 같은 무게와 깊이의 슬픔과 아픔에 진실이라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살고 있을 세월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점점 흐려져가는 나의 하찮은 슬픔이 부끄러웠고 옅어져 가는 그들의 아픔에 대한 안타까움이 미안했다.
숨기고 싶어 하는 자들이 숨기는 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일지 나조차 두려운데 딸과 아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이들에게는 얼마나 아픈 진실일지 겁이 난다. 하지만 진실을 알지 않고는 잠조차 잘 수 없는 이들과 그들의 상처를 같이 아파하는 국민들을 위해 왜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밝혀지기를 소망할 뿐이다. 최영은 작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두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독자의 한 사람으로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 두 소설이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기원한다.
내가 '쇼코의 미소' 소설집의 마지막 두 이야기 ‘ 미카엘라’와 ‘비밀’을 읽고 책을 덮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인터넷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상업영화 ‘생일’에 대한 기사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전도연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 영화관에서 ‘생일’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과 영화 포스터만 봐도 가슴에 무엇인가 먹먹한 것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책은 읽은 느낌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사이 한국 날짜는 4월 16일 세월호 5주기가 되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2016년 7월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결정된 2017년 3월 10일, 이 소설집 1판 13쇄가 나왔으니 최영은 작가가 세월호의 이야기를 담은 '미카엘라'와 '비밀'을 글로 썼을 때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마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최영은 작가의 말을 꼭 닮은 이 두 소설이 세월호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는 이유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소중한 이들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