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Sep 06. 2019

미국 학교 아침은 "척"하는 인사로 시작한다

어설픈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은 "척"하기의 달인이다.

돌아서면 바로 언제 그랬냐 싶게 싸늘하거나 사무적인 얼굴이 되지만 내가 말을 걸거나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리 준비한 듯한 미소와 경쾌한 말투로 아는 체를 한다.

물론 그들 중에도 가끔 무표정한 얼굴로 불친절하게 대꾸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가 싶을 정도로 급격하게 친밀한 태도로 응대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 학교의 아침도 "척"하는 미국인들의 한 톤 높은 목소리와 다정함이 가득한 인사로 시작된다. 

분주한 등교시간임에도 서로 안면이 있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친밀함이 묻어나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상냥함과 친절함이 줄줄 흐르는 목소리로 "Good~~ Morning~, how~ are~ you~~"라는 인사를 나눈다.

물론 안면이 없는 학부모나 학생들을 만나도 교사와 학교 직원들은 반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와 어조로, 때로는 손동작까지 넣어서 "Good morning~!" "Hi, how are you?"라는 인사를 한다.


어제 만나고 오늘 아침 만나는데도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살갑게 나누는 그들의 인사가 처음 미국 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고 얼마간은 소란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반가움에 환하게 빛나는 미국인들의 아침 공간에 나는 진공 상태로 포장된 외딴 공간에 서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한동안 지켜본 결과, 아침마다 정말 친한 사이인가 보다 싶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은 인사 후 바로 언제 그랬냐 싶게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길을 갔다. 

가끔은 어떤 교사나 직원 또는 어떤 학부모들은 방금 세상없이 반갑게 인사하던 그 학부모나 그들의 아이 또는 교사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기도 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 앞에서 우리 반 학생들을 기다리는 동안 가끔씩 그런 소곤거림이 영어도 서투른 내 귓속에 쏙쏙 들어오곤 했다. 

미국 학교에서의 내공이 일 년이 넘고 보니 어떤 경우에는 서로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도 가지고 있거나 서로 반가운 사이가 아님에도, 마주칠 때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뿐더러 가벼운 허그와 볼을 마주대기까지도 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관습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가끔 속내를 알면서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미국인들의 가식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매너나 에티켓이라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인사하는 모습과 진심이 같든 다르든 미국인들의 호들갑스럽고 반가움 가득한 인사에 전염된 탓인지, 아니면 그 속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지,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그들처럼 과장된 친근함을 드러내며 동료들과 다른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에 애교와는 거리를 두며 살았던 무덤덤한 나였지만 호들갑과 과장스러운 친밀함이 넘쳐나는 미국 학교의 아침을 매일 맞이하다 보니 학교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내 목소리도 한 톤 끌어올려지고 내 얼굴에도 내 것이 아닌 미소가 자리 잡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주쳐도 언제든 반가운 목소리와 얼굴로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는 미국인 비스름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마음에 내키지 않는 날에도 학교에 들어서면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인사를 하는 미국인들에게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치이즈~"라 발음하듯이 입꼬리를 당기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사실 미국인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웬 호들갑이야!" 싶게 과장됨이 느껴진다. 

한국에 있을 때, 이곳에서 만난 미국인들처럼 인사를 하는 사람을 간혹 상점에서나 텔레비전에서 보면 "조금 재수 없게 느껴진다."라고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 정도로 미국인들의 인사는 우리에게 다소 불편하고, 그들의 어조와 목소리 톤 그리고 제스처가 약간, 아니 매우 과장되고 오두방정을 떠는 것처럼 보이거나 심지어 가식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학교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지나치는 것보다는 진심은 아니어도 웃으며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미국 학교에 떨어진 도토리 같던 내가 제일 먼저 그들의 일원으로 느껴졌던 것이 바로 아침마다 학교 직원들이 나에게 건네 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갑고 친밀한 인사 때문이었으니까.


서툴고 어설픈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아침마다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입꼬리를 바짝 당긴 채, 내 서툴고 어설픈 발음이나 억양이 들키지 않을 수 있는 매우 익숙한 그 인사말을 나눈다.

" Hi~, Ms. 아무개,  Good~~ Morning~, how~ are~ you~~"


그렇게 아침을 시작한 오늘 하루도 나는 미국 학교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미국인들 속에 뛰어들어야 되거나 그 속에 섞여야 되는 상황이라면, 친하지 않아도 다소 과하고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기를 권한다.

아마도 그들은 더 친밀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받아주며 마치 십 년지기 친구라도 된 듯이 말을 건넬 것이다. 

한국 사람 스타일이 아니어서 불편하고 닭살이 돋는 것 같더라도 가끔은 그 인사 한마디가 미국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와 같은 어눌한 한국 아줌마를 그 속에서의 버티게 해 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과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은 신기하게도 나 자신이 그들 안에 속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 03화 드디어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고용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