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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14. 2018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 것,
이상하게 불편하다.

미국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미국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1

사람들이 밖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집에 들어가 그 신발로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는 미국에 산다.

하지만 나는 늘 현관문 앞에 신발을 벗어 놓고 맨발로 집안에 들어선다.  




어려서부터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침대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그들이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집 안을 돌아다니거나 소파나 침대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온 식구가 바닥에 상을 놓고 방바닥에 앉아 밥을 먹기도 하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거나 바닥에서 뒹굴면서 책도 읽는, 우리 엄마는 쓸고 닦는 바닥 위를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학교나 회사에서 화장실에도 다녀온 신발을 신은 채 마구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갔다.

물론 그네들은 바닥에 앉는 일이 없이 침대나 의자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신발을 신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소파나 침대에도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그들의 삶이 내 눈에는 딴 세상 사람들 모습 같이만 보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말려도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심지어 바닥을 쓸고 다닐 텐데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신발을 현관에서 벗어 놓고 집안에서는 맨발이나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늘 집 바닥을 물걸레질하는 한국 문화에서 자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그 문화가 형성된 배경도 다르니 그저 그럴 수도 있는 남의 나라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궁금하면서도 이상하고 신기했던 그들의 문화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내 삶에 들어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미국인들의 신발 문화가 불편하다. 


미국에 살지만 우리 가족은 현관에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이나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생활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가족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집안에서 맨발로 생활을 한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 중에도 집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처음 미국인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원피스에 긴 부츠를 신은 친구가 현관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현관에서 머뭇거렸다. 친구의 들어오라는 손짓에 신발을 신은 채  친구를 따라 그녀의 집안에 발을 들여놓을 때 느꼈던 묘한 죄책감과 어색했던 기분이 지금도 기억난다. 함께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면서도 깨끗한 카펫이 깔린 집 안을 밖에서 신던 구두를 신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웃고 있는 내 얼굴과 달리 내 마음은 그 집에 있는 내내 불편했다. 친구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틈틈이 내 신발이 지난 자리에 신발 자국이 남지 않았나 힐끗거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발걸음을 뗄 떼마다 느껴지던 묘한 죄책감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신발을 신고 남의 집을 돌아다니는 상황이 될 때마다 내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워진다. 


반대로 미국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던 날, 현관에서 반갑게 인사를 한 뒤 구두를 신은 채 집안에 들어서는 친구들에게 신발을 벗어줄 것을 요청하면서 실내용 슬리퍼를 꺼내 주었을 때, 당황하던 그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잠깐의 어색한 표정이 사라진 뒤, 실내에서 신발을 안 신는 아시안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내 말을 따라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주었지만, 부츠와 구두를 벗느라 애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민망하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 후로 그 친구들은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양말을 따로 챙겨 와서 신을 벗고 양말을 신기도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는 분들, 환영합니다.


미국에 와서 ESL Class에서 수업을 들을 때, 우리는 집안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다닌다는 이야기에 선생님은  발바닥에서 나온 지방 성분으로 카펫이 더러워진다면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물론 그분은 자신도 신을 신고 집안을 활보하는 것은 싫어서 실내용 신발(우리가 흔히 신는 실내용 슬리퍼가 아닌 납작한 단화나 털신 같은)을 따로 구비해서 그것을 신고 다니지만 집안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는 우리 문화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신발이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 나는 발바닥의 지방 성분이 카펫을 더럽힌다는 선생님의 그 생각이 어이없게 느껴졌지만 짧은 영어로 괜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 나라마다 다른 문화가 재미있다고 웃으며 넘겼다.

 

카펫의 먼지와 알레르기 부작용 때문에 요즘은 미국 사람들도 카펫 대신 마루를 집안에 까는 경우도 많지만 마루를 깐 집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신발은 신고 다닌다. 일부 신발이 답답한 가족 구성원들은 집 안 여기저기에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니 집안 바닥은 신발을 신은 사람에게서 온 먼지와 오염물이 여기저기 묻을 테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 발에도 붙여 소파와 침대 위에도 올라갈 것 같다. 


얼마 전, 가족들이 바닥을 더럽히는 것 때문에 힘들어서 신발을 벗으라고 가족들에게 부탁했다는 동료직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동료직원은 카펫이랑 소파가 너무 더러워져서 가족들에게 현관에서 신을 벗고 슬리퍼를 신으라고 했는데 가족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돌아다니다가 소파 아래에 신발을 벗어놓는다며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문화인 미국이지만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매일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집안 바닥이 엉망이 될 테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한 나라의 삶의 모습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각 나라마다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삶의 모습 또한 제각각이다. 

그런 다른 점이 가끔은 이상하고 불편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물 안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내가 만난 미국인들이나 미국에 사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나처럼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었다. 물론 그 과정 중에 더러 마찰이 일기도 하지만 인정하지는 못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감사하다.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것, 불편하다. 발이 답답해서 불편할 뿐 아니라 마음도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 이들의 문화에 들어갈 때는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다.

아마 그들도 벗은 발로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편할 것이다. 어쩌면 얼른 다시 자신의 신발 안에 두 발을 넣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이해의 시작이라 믿는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 들어설 때는 신발을 벗으며 살아왔고 그것이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이다. 

그러나 집안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좋은 것인지 신발을 신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집 안에서 신발을 신는 친구네 집에 갈 때는 나도 신을 신고 들어가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 집에 올 때는 신발을 벗는 수고를 감당해주는 그 너그러움이 좋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그것이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으로는 충분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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